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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의 원조? 내일부터 지옥을 맞을 커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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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의 원조? 내일부터 지옥을 맞을 커플이여! [금정연의 '요설'] 플로베르의<부바르와 페퀴셰>②

☞금정연의 '요설' 이전 이야기 바로 가기 :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 ① '로또' 맞았으면, 책을 버렸어야지!

<제25장>
6 * 18 = 108 번뇌

귀농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들은 맞춤한 곳을 찾아 무려 18개월 동안이나 이곳저곳을 돌아보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진정한 시골'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알다시피 모든 '진정한' 것들은 오직 SNS 속에만 있는 법이다. 불행하게도 부바르와 페퀴셰의 시대에는 SNS가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18개월이 걸릴 수밖에. 다들 눈치 챘겠지만, 플로베르는 거장의 솜씨로 디테일 속에 악마를 숨겨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은 물을지 모른다. "지금 플로베르가 '18'이라는 한국어 욕을 알았다는 거야?" 좋은 질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플로베르 전공자들이 풀어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다행히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그래서 한국어에서 '18'이 욕으로 쓰인다는 걸 비전공자보다 잘 알고 있으며, 불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Non, je ne regrette rien").

▲ <부바르와 페퀴셰>(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그들을 구원한 것은 바르브루다. 바르부르가 누구인가? "전직 외무사원인 바르브루는 지금은 회계원으로 일하는 아주 선량한 사람으로, 애국자이고 부인네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변두리 말씨를 쓰는"('18'쪽) 인물이다. 한때 부바르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나, 페퀴셰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탓에 조금 소원해진 상황. 그가 샤비놀에 자리한 "성 모양의 집과 정원이 딸린 수확이 좋은 삼십팔 헥타르의 농장"('28'쪽)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뛸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 한국어 독자들은 여기서 무언가 석연찮음을, 차라리 불길함을 읽는다. 굴러들어 온 페퀴셰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얼마나 혹은 어떻게 친했는지는 신만이 아시리라)를 잃은 바르브루의 호의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플로베르가 직접 밝히고 있듯, 그는 선량한 사람이 맞을 것이다. 다만 농장의 면적이 마음에 걸린다. 삼십팔이라니, 그건 십팔이 세 번이라는 말이 아닌가? 바르부르가 처음 등장한 게 18쪽이고, 농장을 소개한 것은 28(이십팔)쪽이니, 어쩌면 십팔이 다섯 번, 아니 여섯 번이라는 뜻은 아닐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식을 세울 수 있다. "6 * 18 = 108번뇌"라는 등식이다. 어떤 수학전공자라도 저 등식이 참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플로베르는 한국어 욕설뿐 아니라 수학과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단 말인가? 전공자들의 조속한 연구를 기대한다. 과연 계약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는다. 주인은 농장과 집을 합해 십사만 삼천 프랑을 요구했지만 부바르는 십이만 프랑밖에 낼 수 없다고 버틴다. 그가 물려받은 유산은 이십오만 프랑이나 되었는데도 말이다! 페퀴셰는 부바르를 어르고 달래다 결국 포기하고 초과액은 자기가 보태겠다고 선언한다. 어머니의 유산과 저축을 모은 전 재산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덧붙이기를 잊지 않는다.

"그는 중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그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 1>(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 29쪽)

여기서 우리는 플로베르가 그들의 포지션을 어떻게 설장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누가 공(攻)이고 누가 수(守)인가? 이어지는 문단은 더욱 노골적이다. 먼저 귀농을 앞둔 부바르의 모습을 보라.

"부바르는 더 이상 필경을 하지 않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을 계속했지만, 상속이 확실해지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는 자주 데캉보 상회에 들렀으며, 시골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사무실의 모든 직원들에게 펀치를 한 잔씩 대접했다." (29쪽)

이번에는 페퀴셰의 경우.

"그와 반대로 페퀴셰는 동료들에게 무뚝뚝한 태도를 보였고, 마지막 날 문을 거칠게 꽝 닫고 나와버렸다.
그는 짐 꾸린 것도 점검해야 하고 쇼핑할 것도 아주 많았으며, 뒤무셸과 작별인사도 나눠야 했다!" (같은 쪽)

한 마디로 부바르가 공이고 페퀴셰가 수다. '눈 밝은' 독자라면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반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독자들은 플로베르의 서술에서 드러나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PC'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로베르가 19세기 사람인 게 내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건 플로베르의 잘못도 아니다. 그때는 PC도 스마트폰도 SNS도 없었고, 수많은 이들에게 RT로 '조리돌림'을 당하며 자신의 실수를 뼈아프게 깨닫고 교정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 닉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충고했듯,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우리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다시 플로베르의 소설로 돌아가자. 그가 곳곳에 숨겨놓은 작은 악마들에게로. 이번에 주목할 것은 느낌표다. 플로베르는 19세기의 작가답게 느낌표를 조금 과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뒤무셸과 작별인사도 나눠야 했다!"에 붙은 느낌표는 조금 이상하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대화에 사용해서 그들의 복받치는 감정을 표현한 것도 아니고, "얼마나 저주스러운 상황인가!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도, 희망도 전혀 없었다!"(22쪽)에서처럼 강조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플로베르는 왜? 뒤무셸이라는 인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바르에게 바르브루가 있었다면 페퀴셰에게는 뒤무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 역시 '18'쪽에 처음 이름이 등장하며, 한때 페퀴셰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조금 멀어진 상황이다. "부바르의 눈에는 뒤무셸이 지루한 사람으로 보였"(19쪽)기 때문이다. 문제는 뒤무셸이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기억법에 대한 소책자를 출판했고, '청소년 기숙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심지어 전통적인 의견과 진지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찌 느낌표를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도망쳐, 페퀴셰, 도망쳐! 작별인사를 받아들이는 바르브루와 뒤무셸의 태도에서 회계원과 작가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르브루는 부바르와 작별을 하면서 더욱 섭섭해 했다. 그는 일부러 도미노 게임도 져주고, 시골로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도 했다. 그리고 아니스 술을 두 잔 시키고 부바르를 껴안았다."(29쪽) 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건전한 작별인가? 반면 뒤무셸은 페퀴셰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편지로 문학에 대한 소식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서 서신 왕래를 하자고"(같은 쪽) 한 것이다!(이건 강조의 느낌표다!) 이제 우리는 플로베르가 사용한 느낌표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건 단순히 해야 할 일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꾸린 짐 점검과 쇼핑, 그리고 뒤무셸과의 작별인사가 남아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차라리 어떤 회한을, 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과거의 행위에 대한 뼈아픈 후회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차라리 "아, 페퀴셰! 너는 그때 뒤무셸과 작별인사를 나눠야만 했다! 영원히 빠이빠이 해야 했단 말이다!"에 더욱 가까운 문장인 것이다. 느낌표 하나로 저런 감정을 표현하다니, 과연 거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페퀴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페퀴셰가 거부하지 못한 게 뒤무셸인지 문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그걸 따지는 건 부질없는 짓이 될 것이다. 플로베르가 쓴 것이 BL(Boys Love)이건, 또 다른 BL(Book Lover)이건 상관없다는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회의 마지막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봐, 우리에겐 아마 장서가 필요 없을 거야."(27쪽)라는 부바르의 호언장담이 지켜졌더라면, 페퀴셰가 뒤무셸에게 철저한 작별을 고했더라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떤 운명이 그렇듯,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108번뇌였고, 그 뒤에는 물론 파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파국 이후에도 그들이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이르다. 우리는 아직도 30여 쪽까지밖에 읽지 못했고(참고로 지난 회에서 우리는 27쪽까지 읽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아직 샤비놀에 닿지도 않았다(물론 그 여정 또한 갖은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긴 하지만 우리의 갈 길을 위해 사소한 고난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니 일단은 멈춰서 그들이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곧 무너져 내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느낌표로 점철된 어느 밤의 시간을.

""우리가 드디어 도착했어! 이 행복!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밤이 깊어 자정이 되었는데도 페퀴셰는 정원을 둘러보자고 했다. 부바르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촛불을 들고 신문으로 바람을 막으면서, 화단을 따라 걸어갔다.

두 사람은 큰 소리로 채소의 이름을 말하며 즐거워했다.

"저런, 홍당무다! 아! 배추다!"

그리고 과수장을 살펴보았다. 페퀴셰는 싹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이따금씩 벽 위에서는 거미 한 마리가 갑자기 달아나곤 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몸짓을 반복하며 벽 위에 크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풀잎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한없는 고요와 평온함 속에 모든 것이 잠들어 있었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두 개의 침실 사이에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벽지로 가려져 있었다. 서랍장이 그 문에 부딪혀서 못을 뽑아내자, 문이 열리는 바람에 부바르와 페퀴셰는 깜짝 놀랐다. (* 플로베르가 그들을 자연스럽게 한 방에서 잠들게 만드는 신묘한 솜씨에 나 역시 깜짝 놀랐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그들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부바르는 맨머리에 입을 벌리고 반듯이 누워서 자고 있었으며, 페퀴셰는 면으로 된 모자를 쓰고 무릎을 구부려 배에 대고는 오른쪽으로 돌아누워서 자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아래에서 둘 다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34쪽)

친애하는 부바르와 페퀴셰여, 부디 오늘 밤은 편안히 잠들기를. 내일 아침에는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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