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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영웅,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비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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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영웅,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비웃지 마라! [취미는 독서] 열네 번째 날
이대희(<프레시안> 기자) : (사실은 당시 모든 강대국의 작동 원리는 같았으나) 나치와 공산주의라는 외부의 강한 적과 싸웠던 20세기 미국은, 스스로의 모습을 의인화한 현대판 신화를 히어로물이라는 콘텐츠로 만들어 갔다.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는 미국인이 창조해 낸 신화의 요체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이념인 자유 수호의 의지를 지니고 나치 '독재'에 맞서는 불굴의 전사이자, 코믹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미국 그 자체인 인물'이다.

▲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얼티밋 컬렉션>(에드 브루베이커 글, 스티브 엡팅․마이크 퍼킨스․마이클 라크․존 폴 레온 그림, 시공코믹스 펴냄). ⓒ시공코믹스
이런 구린내 풀풀 나는 캐릭터를 현대화하기 위해 중요한 조건은 두 가지다.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새 성격을 불어넣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 본질은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얼티밋 컬렉션>(에드 브루베이커 글, 스티브 엡팅․마이크 퍼킨스․마이클 라크․존 폴 레온 그림, 시공코믹스 펴냄)은 21세기 미국 대중문화가 어떻게 이 구식 영웅을 현대의 세계로 불러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여전히, 미국의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 대상이 변화할 뿐이다.

코믹스는 '미국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가 레드 스컬과 알렉산더 루킨이라는 미국의 적을 상대로 벌이는 21세기 판 냉전의 그늘에 집중한다.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저(버키) 사이에 일어난 비극은 현대 미국이 여전히 맞닥뜨린 전쟁이 낳은 희생이다. 캡틴 아메리카는 21세기에 부활해서도 고단한 '자유 수호의 파수꾼' 노릇을 하느라 정신없다.

따라서 미국인이 아니라면, 이 작품만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매력에 빠져들기란 쉽지 않다. '미국인이 바라는 이상적인 미국의 영웅'의 세계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다른 콘텐츠까지 아울러 살펴야 한다. 안내서는, 다행히도(?) 여럿 있다. 마블 코믹스 세계에 막 발을 들이려는 독자라면 현대 미국인이 바라보는 캡틴 아메리카 매력의 정수를 다룬 <시빌 워>-<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이라는 연작 시리즈(시공사 펴냄)에 집중할 만하다.

캡틴 아메리카를 보다 세련되게 21세기에 안착시킨 작품은 바로 이 코믹스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최근 개봉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다. <본 아이덴티티> 삼부작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이 영화는 원작이 미처 보여주지 못한 '자유 수호자' 캡틴 아메리카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초등학생일 때 귀가길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매번 등하교 길에 지나치던 어떤 집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깃발이 나부끼고 징 소리 장구 소리가 요란했다. 무당이나 굿은 불경한 미신이라고 배웠던 나는, 대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른 채 그 집 앞을 지나쳤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면, 호기심을 기어이 이겨냈던 그 가르침이 아쉽기만 하다.

▲ <만신 김금화>(김금화 지음, 궁리 펴냄). ⓒ궁리
얼마 전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을 보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 만신 김금화의 일생을, 김금화 본인과 세 명의 배우 김새론·류현경·문소리가 함께 연기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신내림을 받은 어린 넘세(김금화의 아명, '남동생이 어깨 너머에서 넘어다 보고 있다'라는 뜻으로, 아들을 간절히 바라던 가족이 부르던 이름이다)가 "쇠걸립 왔시다!"라고 외치며 마을 곳곳에서 쇠를 모으는 장면에 김금화가 등장하여 그 넘세를 연기하는 김새론에게 웃어 보이는 장면이다. 타인의 존경과 두려움과 숭배와 경멸을 일생 내내 겪어 왔던 파란만장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쉽게 짐작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긍지에 가득한 여인의 삶을 그 하나의 장면이 압축해 보여주는 듯했다.

<만신>의 원작이기도 한 김금화의 자서전 <만신 김금화>(궁리 펴냄)도 읽었다. 김금화는 1931년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안바꾸니의 눈물겹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신내림굿을 받았다. 일제 식민지 시절과 한국전쟁과 새마을운동과 군부독재정권을 모두 살아낸 그녀는, 한국의 가혹한 현대사뿐 아니라 여자-무당이라는 이중 마이너리티의 조건도 오로지 홀로 감당해내야 했다. 6, 70년 전의 기억이 마치 2014년에 이르러서는 외국 이야기처럼 신기하게 여겨진다는 기이한 시차를 의식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3년 후, 여든일곱 살이 되는 해 만수대탁굿을 크게 열겠다는 김금화의 말을 미리 수첩에 적어둔다. 초등학교 때 일부러 지나쳤던 굿을, 이번엔 꼭 보러 갈 것이다.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무인양품의 이념을 대변하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는 여러 책에서 디자인을 '욕망의 에듀케이션'이라고 정의해 왔다. <내일의 디자인>(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첫 쪽에도 나온다. "제품이나 환경은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토양에서 거둔 '수확물'이다. 좋은 제품이나 환경을 낳으려면 비옥한 토양, 즉 높은 수준의 욕망을 실현해야 한다." 즉, 원하는 것의 수준이 높아야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디자인은 수준 높은 욕망을 '길러낼' 수 있다. "'니즈'는 언제나 '루스'해지기 쉽다. 욕망은 루스한 니즈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거기에 절제를 주고 매듭을 지어주는 것이 문화이고 미의식이다. 디자인은 그 대목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늘 일본의 고도성장기·버블경제기로 대표되는 고삐 풀린 욕구, 함부로 발산되는 욕구에 대한 비판과 궤를 같이 했다. 마침 저출산 고령화, 소자녀화, 1인 가구화, 저성장 사회의 표본이 된 일본 사회는 그의 디자인 이념을 설파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공업국가로서 국토를 유린하며 급기야 록펠러 센터까지 사들이던 그 탐욕스러운 일본은 더 이상 없다(불가능하다). 이제 환경을 돌아보고 욕망을 관리하며 현명하게 살아야 한다.

▲ <내일의 디자인>(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안그라픽스
그런데 그는 여기에서 이 공업과 금전의 시대를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화의 연장선상에 놓으면서 묘한 구도로 가져간다. 진보라는 폭력적 신화가 지배했던 서구의 시대를 끝내고 '진짜 일본'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식으로. "메이지 시대에 일본을 망각해버렸고 공업화로 강산을 더렵혔다지만 그렇다고 그냥 체념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1천 년 넘게 품어온 문화는 그렇게 간단히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금전 대 행복, 소유하는 것 대 버리는 것, 과거의 과오 대 미래를 위한 설계 – 그리고 서구 대 일본이라는 대립 구도를 가져가면서 결국 그의 이야기는 내셔널리즘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이 책의 원제는 '일본의 디자인'이다.)

<내일의 디자인>은 재미있다. 솔깃한 정보와 인간의 삶-환경에 대한 강렬한 통찰, 감각적인 문장이 곳곳에서 빛난다. 확실히 이 디자이너의 글과 안목은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욕망에서 출발한 디자인처럼 말끔하고 감동적인 데가 있다. 그런데, 어차피 글이란 게 한 가지 주장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하느라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겨우 이 정도 이야기를 위해 이렇게나 관찰과 통찰을 갈고 닦았나 싶은 기분이 종종 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싱가포르에서 자란 인도네시아인인 에이드리언 제카의 아만 리조트 그룹을 다룬 '겹눈의 시점', 거기서 출발한 생각을 갈무리한 '아시아식 리조트를 생각한다', 두 개의 글은 정보로서도 휴양 산업에 대한 통찰로서도 흥미롭다. 그는 리조트라는 것이 식민지시대를 거치며 세계 각지로 진출한 서양인들의 "문명과 동떨어진 대자연이나 타문화의 풍경 속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문화를 재현해놓고 즐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서 출발했다며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의 욕망의 형태"였다고 말한다.

"파멸을 향해 가속페달을 힘껏 밟는 위험과 짝을 이루는 황홀 … 타향에서 꽃피운 리조트는 그런 서양인의 욕망의 흔적", 맞는 말이며 아름다운 문장이고 음미할 만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틀에 박힌 식민지풍 리조트를 벗어나 아시아식 리조트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제안에서 머리를 맞은 듯 깬다. 그가 말하는 아시아란 대체 어디인가. 디자인론에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걸까? 아니, 나의 '미의식'은 매끄러운 주장을 위해 결코 '퉁쳐서'는 안 될 것들을 퉁치고 있는 장면을 참지 못할 뿐이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동물원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번식 프로그램은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유용한 보존 방식이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대부분 동물원에 전시할 동물을 얻기 위해서 운영할 뿐이다. (…) 동물원의 번식 프로그램은 오히려 커다란 부작용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새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태어난 동물들이 남아돌고 있기 때문이다. (…) 1995년 40개가 넘은 미국 동물원에서 기린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러나 어느 공립 동물원도 기린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66~67쪽)

▲ <동물원 동물은 행복할까?>(로브 레이들로 지음, 박성실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책공장더불어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만큼 유명한 동물원은 없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 덕분이다. 이건 작년까지의 일이다. 올해 2월부터는 동물원 하면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이 떠오른다. 지난 2월 9일 코펜하겐 동물원은 두 살짜리 수컷 기린을 전기충격기로 죽인 뒤 뼈와 고기를 추려 사자들에게 먹이로 주었다.

코펜하겐 동물원은 동물원에 있는 암컷 두 마리가 모두 죽은 수컷과 친척관계라서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죽였다고 했다. 다른 동물원에 주지 그랬냐고 따지니 기린을 서커스단 같은 곳에 팔지도 모르는데 기린에게 그런 고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피임을 시키지 그랬냐고 하니 이번에는 교미와 번식은 동물은 가장 자연적인 행위인데 그걸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안락사란 것이다.

안락사라고? 안락사는 고통 속에 죽어가는 동물을 그 고통을 덜어주는 죽음을 안락사라고 하지 않던가?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기린을 죽여 놓고 안락사라고 주장하면 안 되지…….

코펜하겐 동물원은 3월 4일에 또 거대포유류를 도살했다. 이번에는 지난 2월 기린의 시체를 먹었을지도 모를 사자들이다. 늙은 사자 두 마리와 어린 사자 두 마리를 죽였다. 그리고는 모범적인 개체수 관리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젠 고민할 때가 되었다. 동물원, 아직도 필요한가?

하지현(건국대학교 교수·신경정신과 전문의) : 정신과의 성경이라 불리는 '진단과 통계를 위한 매뉴얼(DSM)'은 모호하고 주관적이기 쉬운 정신과의 진단을 체계화하고, 최대한 객관화하며, 근거에 입각하도록 만들어 현대의학의 주류에 포함할 수 있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시작은 1980년에 발표된 DSM-III 부터였다. 이 매뉴얼이 나온 이후 정신과적 진단은 법률적 판단, 장애진단, 군대복무 적합성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분명해진 면은 있으나, 진단 기준에서 증상의 개수의 절단점을 몇 개로 하느냐에 따라 순식간에 정상에서 정신질환자로 바뀔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전문가들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 평가를 해야만 하고, 진단 인플레이션에 대해 경계를 해야 한다.

▲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앨런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DSM-III부터 IV까지 깊숙이 참여를 했던 미국의 듀크 대학 정신과 학부장을 역임한 앨런 프랜시스는 2013년 발표된 DSM-5가 지나치게 정신질환의 문턱을 낮춰 정상이라고 충분히 평가할만한 생활의 어려움, 라이프스타일의 문제, 일시적인 정신적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정신질환으로 진단하게끔 만들었다고 통렬히 비판하는 책을 냈다. 앨런 프랜시스의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 한국어판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정신과 입장에서는 내부 고발자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도 같은 책이다.

사실 저자 역시 이 논란에서 자유로운 면죄부를 받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부자였기에 더욱 세세히 이런 진단체계의 변화 방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정확히 짚어내고, 제약산업적 측면과 미국의 민간보험체계의 어두운 측면까지도 넓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뿐 아니라, 평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을 해온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노정태(자유기고가·<논객시대> 저자) : 잠시 홍보를 하자.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본 필자는 4월 10일 어제부터, KBS1라디오(97.3MHz)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서 '인문으로 세상읽기'라는 코너를 맡게 되었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이 11시 10분에 시작하니 그 무렵부터 라디오를 켜놓으시면 아주 좋겠다. 많은 관심과 호응 그리고 애정어린 질책을 부탁드린다.

▲ <인문정신의 역사>(루돌프 파이퍼 지음, 정기문 옮김, 길 펴냄). ⓒ길
이젠 아주 책 얘기도 안 하는구나 싶으실텐데 그런 게 아니다. 원래 그 코너에 제일 먼저 가져가려고 했지만, '시사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서 포기했던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일종의 만능 반창고처럼 쓰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이래저래 개진해온 사람이기에 더더욱, '과연 그렇다면 인문학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놓고 그에 답변을 하면서 본인의 첫 공중파 라디오 고정 출연의 포문을 열고 싶었다는 뜻이다.

<인문정신의 역사>(루돌프 파이퍼 지음, 정기문 옮김, 길 펴냄)는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주는 몇 안 되는 책이다. 고전문헌학자 루돌프 파이퍼는, 인문학이란 과거의 책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냄으로써 현재의 '인간'을 갱신해내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 운동이라는 것은, 결국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읽어냄으로써, 중세의 인간과는 다른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문학 열풍에 신물이 나는 분들, 강신주를 비판하는 한병철을 비판하는 아무개를 비판하는 누군가의 이야기 등등에 이제 지쳐버린 분들께, 이 고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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