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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안전을 '낭비'로 보는 시각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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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월호 참사, 안전을 '낭비'로 보는 시각이 문제였다 [복지국가SOCIETY] 허술한 규제가 부른 최악의 참사
여객선 '세월호' 침몰 참사는 누구의 잘못인가?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태운 배가 갑자기 침몰했다. 모든 방송도 정규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침몰 참사에 대해 보도했다. 많은 국민은 기존 행사를 취소하거나 화창한 날씨에도 주말 나들이조차 자제하였다. 참사의 희생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존하여 돌아오기를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그렇기에 우리 국민은 이번 참사가 참으로 어이없어 분노하는 것이다.

민생이 불안한 양극화 시대를 맞아 매일 힘들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국민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침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자녀를 잃은 엄마들의 애통함은 하늘을 찌르고, 자녀들이 수장되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아버지들은 무기력함으로 자신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가 없다. 누가 우리들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대형 참사가 연이어 터지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청해진해운, 무리한 증축·안전 점검 미비·비정규직 채용
일본에서 18년 된 노후 선박을 들여와 운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선사(船社)인 청해진해운의 처사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제대로 된 안전 진단 없이 승객을 더 실으려고 객실을 증축했고, 사고 당일 화물을 무리하게 실어 사고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안개 등 기상 악화로 운행이 어려운데도 운항을 강행했다.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통상 항로가 아닌 단축 항로를 택했던 것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안전이 뒤로 미루어진 것이다.
조타기의 고장이 지적되기도 했다. 지난 1일 사장이 수리 신청서에 결재했지만, 조타기가 제대로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항했을 가능성도 있다. 애초 보고한 것보다 화물을 500톤이나 더 싣고 차량도 32대 추가로 실었음에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선회 과정에서 한쪽으로 화물이 쏠려 배가 좌초되도록 한 것도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 16일 세월호의 모습. ⓒ연합뉴스

세월호 선장 이모(69) 씨부터 안전 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까지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인 것으로 밝혀졌다. 평상시 소방 훈련, 구명정 훈련 등을 지휘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선내에서 인명구조 상황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이 1년 계약직, 선장의 손발 역할을 하는 조타수 3명도 모두 6개월~1년 계약직이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게 신분이 불안하고 낮은 급여를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선장의 책임감'을 마지막 승객이 대피할 때까지 배를 지키며 승객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로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한지 며칠이 지나도록 승객 숫자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승객 관리가 허술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사고가 대형 참사로 이어진 중요한 원인은 사고 당시 비상용 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았고, 선박이 전복되었는데도 선실에 있으라고 방송하는 등 대피 명령을 적절하게 내리지 않아 '골든타임'을 낭비해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승무원들이 우왕좌왕한 것도 모두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운항 비용을 절감하려는 선사 측의 경영 합리화가 초래한 결과다.

또 청해진해운이 지난해 선원들의 안전교육 등 연수비로 지출한 액수는 총 54만 원에 불과했다. 항공사의 1인 평균 안전교육비보다 적었다. 대신 접대비로는 6060만 원, 광고 선전비로는 2억3000만 원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 실종자 가족 10여 명이 21일 진도 팽목항에서 해경 경비정을 타고 구조 현장을 참관했다. ⓒ프레시안(손문상)


아직도 규제 완화?

세월호뿐인가. 최근에는 태안 바닷가에서 해병대 훈련을 받다가 고등학생들이 집단 익사한 사고도 났고, 경주 코오롱 마우나 리조트의 천장이 붕괴되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대학생들이 깔려 사망한 사고도 났다.
이들 대형 참사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인재의 대부분은 수익 극대화라는 경제적 이유로 규제를 완화하면서 발생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더라도, 안전을 위한 투자인 '규제와 감독'이 거의 해제 상태였다. 전체 승객을 모두 태울 만큼 구비하도록 규정된 구명뗏목이 사고가 났을 때는 42개 중 1~2개 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1994년 배가 건조되면서 탑재된 이래로 한 번도 실제 작동하는지를 검사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선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가 검사를 위탁한 한국선급도 업체가 제출한 서류만으로 '안전' 판정을 내줬다.
선박안전법상의 규제와 감독이 허술하여 당사자인 해운조합, 한국선급 등이 안전 점검을 하도록 규제를 완화한 법률상의 미비도 일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 부처 간의 협력이 되지 않아 정보가 공유되지 않은 것이나, 제대로 된 재난 관리 체계가 부실하여 적절한 구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또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래로 대형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지적된 사안이다. 이 또한 반복되는 인재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과 달리, 연일 규제 완화를 주창하고 있다. 최근에는 줄·푸·세 노선에 따라 앞장서서 사회적 규제 완화를 이끌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그룹과 정부·여당은 규제와 감독에 드는 재원을 마치 낭비인양, 단순한 '비용'으로만 생각한다. 이러한 시장만능, 경쟁만능의 경제 사회에서는 안전이 온전하게 실현되기 어렵다.
이제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 핵심은 '사회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다. 안전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성'이 높아져야 한다. 안전을 위한 규제를 깐깐하게 하고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비용'이 든다. 우리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원리에 따라 이러한 비용을 절감하느라 규제와 감독을 계속 완화해왔다. 이것이 본질적 문제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복지국가의 철학과 사고 방식이다.
국민을 위한 '안전' 비용은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
나는 참여정부 시기 대통령 직속으로 '어린이 안전 점검단'을 만들고, 주무 행정관으로 일한 바 있다. 여기에는 해당 부처의 장관들뿐 아니라, 어린이 안전과 관련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아버지, 학교 앞에서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조카를 잃은 분 등 '어린이 안전'에 한을 가진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했다. 이들과 함께 부모와 국민의 입장에서 우리 사회 곳곳의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매년 두 차례 대통령이 직접 주제하는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도록 제도화했다.
문제는 그때 추진하던 정책들이 이해 당사자들의 반대나 정부 부처의 이기주의, 그리고 재정 투입의 미비로 아직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툼한 책으로 묶을 정도의 보고서를 매년 발간했고, 영부인이 직접 학부모와 함께 현장을 점검하는 등의 노력을 했음에도, 10여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같은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회한(悔恨)을 느끼며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고민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우리 사회에 구석구석으로 파고든 끝에 '안전을 위한 투자'를 단지 '비용'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반복적인 인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대형 참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안전'에 대한 개념을 잃고, 안전을 위한 투자를 단순히 비용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전은 곧 예방이다. 대형 사고는 엄청난 인명과 재화의 손실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예방조치는 이런 손실을 막기 위한 '투자'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비용과 투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저열한 수준에 묶여있다. 안전을 위한 규제와 감독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선제적으로 보호하는 투자이며, 이는 곧 국민의 안전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복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기본적인 복지인 '안전'의 증진을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규제와 함께 철저한 감독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선진 복지국가와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규제와 감독 기능을 우리는 다른 말로 '사회 공공성' 증진을 위한 조치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규제와 감독을 더 깐깐히 제도화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투자를 강화할 때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성'에 적절한 투자를 해야 한다. 결국, 예산 투쟁은 결국 정치권의 진검 승부일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해 투자하는 정치 세력이 바로 '복지국가 세력'이다. 이것이 시민사회의 더 큰 성숙과 함께 용기와 실력을 겸비한 복지국가 정치 세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다시 한 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힘들더라도 우리 모두 서로를 격려하면서 슬픔을 이겨내자. 그리고 분노를 가볍게 표출하지 말고 거룩한 분노로 깊이 침잠시키고 승화시키자. 그리고 이런 여객선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근본 대책은 안전에 대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것임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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