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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인가, 보험업계 로비스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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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회의원인가, 보험업계 로비스트인가? [기고]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 논란, 새누리당의 민낯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방식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애초 이 법은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새누리당 법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던 내용을 제도화하기 위한 것으로 사실상 정부도 지지하는 법안이다. 그래서 당연히 국회를 통과하겠거니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법이므로 야당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 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각종 노동법의 보호와 시회보장 제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간 이에 대한 당사자들의 문제 제기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그나마 산재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기 시작한 것이 2010년부터다. 하지만 이때부터 적용 방식에 문제가 많았다.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라는 자격으로 산재보험을 적용하다 보니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산재보험은 직업과 관련된 사고나 질병에 인한 노동자의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사회안전망이자 사회보장제도의 일종이다. 일하다 다치거나 병들면 치료비도 문제지만, 일을 못 하면서 오는 경제적 손실이 크기에 이에 대한 위험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보험 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과는 약간 다른 특성이 있다. 사회보험 가입과 재정적 부담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지웠다. 건강보험 가입과 보험료 부담의 책임은 노동자이더라도 개인에게 있다. 단지 보험료 중 50%를 사업주가 분담할 뿐이다. 그런데 산재보험은 가입과 보험료 부담의 책임이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있다. 노동자가 가입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보험료도 안 내도 된다. 노동자가 회사에 입사하면, 산재보험 가입 신청도 사업주가 해야 하고, 산재보험료도 그 전액을 사업주가 내야 한다. 이러한 제도이기에 개별 노동자가, "나는 산재보험 적용받고 싶지 않다"고 해도 빠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 이른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에게는 이와는 사뭇 다르게 제도를 적용했다.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다르게 산재보험료의 50%를 본인이 부담하게 했고, 본인이 원하면 산재보험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적용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제도는 시행되었으나, 실제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이들은 해당 직종 노동자의 10%도 채 안 된다. 형식적으로는 본인들이 적용 제외 신청을 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사업주의 압력에 의해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쓴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우체국 택배 기사는 대표적인 특수고용직이다. '우체국 택배'라고 적힌 차량 도색도 자비를 들여서 한다. 일하다 다쳐도 자비로 해결할 때가 많다. ⓒ프레시안(김윤나영)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가입, 대통령 공약이었지만…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산재보험료는 100% 사업주가 부담하게 하고, 적용제외 신청 제도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수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에 동감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3년 5월 31일 최봉홍 의원이 대표 발의하여 관련 법안이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은 노동계가 보기에 반쪽짜리였다. 현 제도의 문제점인 산재보험료 50% 부담 문제와 적용 제외 신청 제도 문제 중 적용 제외 신청 제도만 없애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계는 법안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이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이 법안 통과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나마 한정적인 의미를 가진 이 법안마저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 76페이지. 산재보험법 개정하여 특수고용직 근로자 적용대상 포함, 특수고용직 근로자 현실에 맞는 고용보험제도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 해당 법안은 이러저러한 곡절을 거치기는 했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를 마치고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그런데 법사위는 4월 임시국회 때 이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법사위는 지난 4월 2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 때문에 법안 처리가 보류됐다. 법안 처리를 사보타주한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을 포함한 환노위 의원들이 지난 4월 23일 '법사위 월권 금지 촉구 결의안'을 냈다. "법사위는 산재법 개정안의 체계와 자구에 하자가 없을 경우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한 원안대로 법률안을 즉각 의결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다.

건보료 오른다고 기업이 구조조정하고 임금 깎나?

왜 이와 같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가? 환노위와 법사위의 일부 새누리당 의원은 해당 노동자의 피해를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말도 안 된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주는 꼴이다.

일부 의원은 적용 제외 신청 제도가 없어지면 해당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지고 임금이 줄어들 것처럼 얘기한다. 해당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부담하면 비용 부담 때문에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거나 고용 인원을 줄이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액수만큼 임금도 줄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현실적이다. 비슷한 사회보장 제도인 건강보험료가 매년 오르고 있는데, 건강보험료 부담이 올랐다고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거나 임금을 깎는 사업주가 있는가?

사회보험료 부담은 특정 사업주에게만 지우는 의무가 아니다. 동일 업종 모든 사업주에게 지우는 의무이다. 그러므로 해당 업종 사업장에 동일하게 부과되는 비용 부담이다.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 산재보험료 부담이 삼성화재에만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해상, 동부화재 등에 모두 부과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업체도 동일하게 내고 있는 산재보험료를 낸다고 해서 이 때문에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려는 사업주가 있다면 그 사업주가 오버하는 것이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제도 변화는 그간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 특혜를 누리고 있던 업종에 대해, 업종 간 산재보험료 부담 불형평성 문제를 개선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험업 등은 노동자를 사용하면서도 그간 산재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음으로써 금융업 등에 비해 비용 절감의 특혜를 누렸던 것인데 이를 없애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국회의원인가, 보험업계 로비스트인가?

일부 의원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조항을 없애 모든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노동자들의 보험급여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들이 민간 상해보험에 들어있는데,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민간 보험을 해지해 피해가 간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한 말인지 보험업계 로비스트가 한 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이다. (☞ 관련 기사 : '산재보험 민영화' 물꼬, 국회가 터주나)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에 비해 민간 상해보험의 보장성은 당연히 낮다. 민간 상해보험은 가입자도 가려서 받는다. 민간 상해보험은 그걸로 수익을 내려는 업자들이 운영하는 보험이니만큼 운영비도 많이 들고, 이윤을 내야 하므로 당연히 사회보험인 산재보험보다 보장성이 낮다. 위험한 직종은 아예 보험 가입도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인데도 노동자의 직업상 사고와 질병의 위험에 대한 보장을 민간보험사에 계속 맡기자는 주장을 펴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게 한심할 따름이다.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 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 서비스 기사 등이 사업주가 100% 보험료를 부담하는 민간 상해보험에 이미 들어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퀵서비스 기사 등은 위험 업종이라고 해서 민간 보험사에서는 아예 상해보험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아무런 보호도 없는 업종에 그나마 사회보험 형태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겠다는 데도 이를 막는 이들의 저의는 무엇인가?

산재보험료에 50% 대한 본인부담을 국가가 개별 노동자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이런 말을 한 국회의원은 은연중에 사회보험제도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의원은 건강보험에 대해서도 건강보험료의 노동자 본인 부담이 50%여서 이에 대한 개별 노동자 부담이 크므로, 노동자 개인에게 건강보험에서 탈퇴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고자 하는 사회보험 자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이런 주장을 하기 힘들다.

ⓒ프레시안

새누리당은 보험업계 영향력에서 자유롭나?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논란을 보며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사회보험의 적용 확대와 기업의 보험료 부담 인상을 위한 투쟁은 자본과 노동의 피 튀기는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사회보험은 재분배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 증가는 자본의 이윤 몫 감소와 노동자의 임금 몫 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본은 사회보험료 부담에서 기업 몫을 증가시키려는 사회적 압력에 극렬하게 저항한다.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제도를 철폐에 따른 기업의 보험료 부담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그리고 일부 업종 외에는 비용 부담도 없는 사안일뿐더러 다른 업종 사업장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형평성을 증가시키는 제도 변화다. 그런데도 여기에 사활을 걸고 제도 개선을 막으려는 자본이 있고, 다른 자본들도 이를 방임하고 있다. 사회보험 제도를 개선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동자 투쟁이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에서도 기업 부담을 늘리려 할 때, 자본이 어떤 논리로 이에 대해 반대할지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자본은 사회보험 재정에 대한 기업 부담 증가가 한사코 노동자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라 우긴다. 사실 이는 새로운 논리도 아니다. 유럽 등에서 사회보장이 확대될 때 자본이 폈다가 판판이 깨졌던 논리다. 한국에서도 이 논리를 깨고 자본이 이러한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어야 사회보험 재정에 있어 기업 부담 몫을 늘릴 수 있다.

셋째, 이 나라의 지배 권력이 얼마나 자기 기만적이며 분열적인지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공약하고, 새누리당 환경노동위원회 다수 의원과 정부가 추진하는 제도 변경인데도, 지배 권력 내부에서 일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개인 혹은 집단 때문에 그 과정이 좌초될 위험에 처했다. 이는 새누리당으로 상징되는 지배 권력이 얼마나 개별 자본의 이해에 좌지우지되는가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 나라의 지배 권력이 자본 내부의 경쟁과 쟁투를 보다 큰 사회적 가치를 위해 조정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관련 기사 : 허울뿐인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보험사 로비 탓?)

이 법안 처리는 6월 국회로 넘어갔다. 이러저러한 사회적 비판과 압력이 가해졌는데도 6월 국회에서 원안대로 법사위를 통과하고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본과 노동의 싸움에서 쉬운 전투란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험 전면 적용과 관련된 싸움이 이루어지는 국회도 자본과 노동의 전면전이 이루어지는 전쟁터다. 노동이 이 싸움의 의미를 인식하고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조항만 없애는 게 아니라,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료 100% 사업주 부담, 업종 차별 없이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전면 적용을 내걸고 부단히 싸워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이 법안도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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