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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방한, 한국 외교의 철저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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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바마 방한, 한국 외교의 철저한 패배 [한반도 브리핑] 한미일 군사동맹에 한발짝 더 끌려들어가
이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은, 작년 10월의 동남아 방문계획이 연방정부의 기능정지(shutdown)로 인해 취소되었던 것을 부활시킨 것이다.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의 유약한 모습과 함께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의 불안정성도 드러냈기에 미국은 서둘러 이를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2011년 이래로 강조해오던 아시아로의 재균형전략에서 말하는 아시아 중시정책이 허울뿐인 외교수사에 불과하다는 대내외 비판에 대한 반응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한국은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순방국이 아니었으나 막차를 탔다. 당초 계획에 있었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두 국가 외에 일본이 18년 만의 국빈방문을 요청했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자, 정부는 우리만 빠질 경우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와 맞물려 미국이 일본을 지지한 모양새가 될 것을 우려해 방한을 적극 요청했다. 미국 내 지한파들의 촉구가 더해지면서 불과 두 달 전인 2월에 와서야 한국이 순방국으로 추가되었다. 한마디로 ‘끼어들기’라고 할 수 있고, 방일에 상당한 공을 들여온 일본으로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끼어들기를 외교적 승리로 선전하고 있다.

▲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청와대

방문결과에 대한 평가에서도 의미 부풀리기와 성과 띄우기는 멈출 줄 모른다.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확인하였고 미국은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전작권 환수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합의한 부분을 강조한다. 또한 4차 핵실험을 포함해 새로운 형태의 도발 가능성을 흘리던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나 흔들림 없는 비핵화 원칙 고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끼어들기의 최대 명분이었던 한일 외교전에서도 오바마가 일본에서 아베의 신사참배에 대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고, 한국에서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엄청나게 지독한 인권침해”라는 표현을 받아냈기에 판정승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로 양국 간 친밀도를 높인 부분도 플러스 성과로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관점에서 그리고 국내의 한미동맹지상주의자들은 그렇게 여길 수 있겠지만 이번 방문의 승자는 오히려 미국과 일본이며 한국은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처지가 되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심각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합의들이 큰 저항 없이 기정사실화되어버리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져야 할 부채가 소리 없이 커져 버렸다.

먼저 작년 내내 많은 논란을 빚었던 전시작전권 환수 시기가 사실상 재연기되었다. 이를 두고 정부와 보수진영에서는 오바마 방한의 최대선물이자 외교성과로 내세우지만 세계 10위권의 국가적 자존심 문제나 국내 정치용 외교라는 비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때문에 미국에 반대급부로 제공해야 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이는 곧바로 등장한 미사일 방어(MD)의 ‘상호운용성’ 합의라는 것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 측에서만 나오던 언급이었고, 이것이 한국의 MD참여를 의미한다는 의혹을 초래했는데 마침내 한국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는 계속되는 한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조기경보 지원이나, 관련 무기구입, 지휘체계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MD 체제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상호운용’라는 포장지다. 국내의 반대여론과 중국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독자 개발이며 미국 MD 참여는 아니라고 포장하고, 미국에는 상호운용성을 향상시키면 결국 미국의 MD 참여와 동일하다고 포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전작권 환수가 같은 패키지로 돌아간다면 KAMD의 완성 시기로 못 박은 2020년이 환수 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포장기술이 한미일 정보공유 합의에서도 발견된다. 3국 간 군사정보교류는 눈속임의 우회전술이다. 한미 그리고 미일협정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3국간이라는 말은 결국 한일의 정보교류협정의 신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재균형전략을 위해 필수적인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을 절실하게 원하는 미국의 입장이 빠른 속도로 반영되고 있는 증거이며, 이번 합의로 지난 2012년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시도를 저지한 국민적 저항이 맥없이 풀려버린 것이다.

이미 헤이그에서의 3자회담 이후 차관보급 안보토의(DTT)에서 한미일 군사정보교류 MOU를 체결하는 방안이 본격 거론되고 있다. 현재 24개국과 협정을 맺고 있고, 대북정보수집에 있어 일본의 정보수집능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이유가 있지만, 일본의 우경화와 미국의 대중봉쇄 전략의 일부로 추진된다는 것이 문제다.

대일외교에서도 우리가 이겼다(?)고 주장하는 것도 희망적 사고로 인해 객관성을 잃은 평가다. 오바마가 일본의 역사인식에 일침을 놓았다고 하지만 보다 면밀하게 분석하면 다른 여지가 있다. 미국은 위안부 문제와 역사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인권문제로 보고 비판의 강도를 높이지만, 후자는 매우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국에 미래지향적 자세를 주문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중립자세가 내용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부분도 주시해야 한다. 과거에는 당사자들이 해결하라는 식의 ‘불개입적 중립’이었으나 지금은 확실하게 ‘훈수’를 두고 있다. 즉 명분상 한국의 편을 드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으로 기울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이 원하는 3각 군사협력이라는 최우선순위를 위해 한국을 너무 자극하지 말라는 선에서만 일본을 비판하고, 한국에는 그만 종결짓고 넘어가자고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오바마의 이번 순방은 아시아재균형전략의 확인의 의미가 가장 크고, 그중에서 방한의 최대 목표는 한미일 3각 군사협력의 구축이다. 오바마는 이것이 대중봉쇄가 아니라고 반복해서 주장하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오바마의 순방은 계속 중국을 향해 곁눈질하는 여정이었고, 연설들의 청중은 항상 두 갈래였다. 한쪽은 방문하는 국가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중국이었다.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공개지지하고 영토분쟁에서도 매우 강한 어조로 일본 편을 들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역시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이용해 대중견제의 중심 역할로 끌어들이고 있다. 마지막 방문국 필리핀에서 22년 만에 방위협정을 다시 맺은 것은 이번 순방 성격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한국의 끼어들기는 외교적 승리가 아니라 잘못된 줄서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이 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모르고 했어도, 알고 했어도 문제는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 줄은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모두 미국의 대중봉쇄라인의 성격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아웃소싱전략으로 미국 자신은 뒤로 빠져있다. 미국은 아직 중국과 섣불리 한판을 벌일 생각은 없다. 중국의 의도를 확실히 알 때까지 아시아 국가들을 미국의 아바타로 삼아 대중 견제의 대역을 맡기는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재균형전략은 어떤 식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기저에 냉전적 동맹체제를 깔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을 강화하되, 정치·군사적으로는 중국의 부상을 봉쇄한다는 이중 포석이지만, 전자의 강화를 통해 후자의 약화를 끌어내려는 노력은 거의 없고, 후자의 강화를 통해 전자에서의 중국을 길들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최근 미국 상원의 외교위원회의 평가보고서도 본 전략이 대부분 군사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점을 지적했다. 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조차 상호의존의 확대라는 방향보다 아시아국가들의 대중 경제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아시아재균형전략은 미국의 재정상황과 글로벌 전략의 관점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아웃소싱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아베정권은 이런 미국의 의도를 전적으로 수용했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난처해하면서도 한미동맹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은 미국의 대북강경책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면서 대화재개의 어떤 유연한 모멘텀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북핵 위기를 빌미로 중국견제를 위한 한미일 삼각동맹네트워크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지난 25일 오바마가 한 국내 일간지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한국이 중국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심화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한국의 안전과 번영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으로 하여금 줄을 이탈하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

‘한국호’의 선장은 과연 닥쳐오는 위험을 알고 있는가? 평형수를 빼고 달리다 균형을 잃은 세월호처럼 한국호도 계속 복원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현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우리 외교의 평형수는 남북관계의 회복이다. 동북아 역내 강국들은 목적은 다르지만 모두 북한 문제를 빌미로 자신의 노선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이용하고 있다. 오바마가 이번 순방 직전 백악관 회의에서 현 대북정책의 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이유이다.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나서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호의 선장은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지속함으로써 안 그래도 모자란 평형수를 도리어 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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