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자유기고가·<논객시대> 저자) : 별 시답잖은 것에 '부심'을 좀 부려보자. 혼자 사는 남자가 애완동물을, 그것도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을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던 10년 전, 본인은 선구적으로 그 길에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애묘 문화가 지금처럼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건도 덜 까다로웠고, 덕분에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고 소득도 없는 남자 대학생이었던 내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새끼고양이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2004년 어느 가을날 나는 새끼고양이를 한 마리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지금도 나와 살고 있는 첫째의 이름은 그리하여 가을이다.
한편 둘째의 이름은 입동이인데, 이쯤 되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시피, 입동이는 입동 무렵에 나를 만났다. 둘째는 분양받은 게 아니라 새끼고양이 시절 구조한 것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구조했다기보다는 자기를 데려가라고 내게 다가왔다. 안 데려가려고 했는데 가까이 와서 비비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입동이 역시 나와 7년째 함께 살고 있다.
가을이와 입동이의 관계는 그리 친하거나 살갑지 않다. 첫째의 성격이 '지랄맞은' 탓인데, 그래도 두 마리는 그럭저럭 장난도 치고 한 뼘 가량 떨어져서 잠도 자는 등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헌데 최근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고 나는 크게 당황했다. 지나가던 길고양이를 본 입동이가 흥분하여 가을이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7년가량 유지되던 두 마리의 평형 상태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뻔한 듯하지만 신선한 내용이 많다. 왜 어떤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에 비해 공격적인가? 그것은 공격적이어서가 아니라 겁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왜 고양이는 좋다고 골골거리다가 쓰다듬어주는 주인의 손을 무는가? 목으로는 골골거리지만 이미 꼬리로는 불만을 표하고 있는데, 사람이 그걸 못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한 낭만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확인된 사실만을 토대로 이런 저런 정보를 전해주는 책이다.
두 마리의 관계는 상당히 회복되었다. 주인의 헌신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그간 쌓아온 세월의 힘도 있었을 것이다. 10년을 키웠지만 아직도 나는 고양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류가 고양이와 함께 지내온 것은 4000년쯤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키울 작정을 하고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주인이 전체 주인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고 저자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나머지는 고양이가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주인집의 네살박이 아들이 개에게 공격당하자, 용감하게 뛰어들어 맞서 싸워 아기를 지켜낸 영웅 고양이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역곡역에는 '다행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역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점점 많은 이들이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른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들께, 호감을 가지고 계신 이들께, 이 책을 권한다.
안은별(<프레시안> 기자) : 요즘 읽고 있는 책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한한 지음, 최재용 옮김, 문학동네 펴냄). 원제 <청춘>, 1부 청춘, 첫 번째 글 '청춘'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친구가) 지난주에 내게 말하기를, 아버지가 어쩌면 해외로 나가 미장 일을 하실지도 모른다고 했다. 3년이면 20만 위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 그의 어머니는 전등 수리하는 일을 해서 한 달에 800위안을 번다. 상하이 교외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 가족을 보자면, 스무 살 남짓한 아들에겐 쉰 살이 된 자기 모습이 뻔히 보인다."
"당신은 스스로가 기계 취급당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가 똥덩어리 같다고 느낀다. 반경 수백 킬로미터 이내의 현실에서는 기운을 북돋아줄 만한 이야깃거리조차 찾을 수 없는 것, 이것이 수많은 중국 젊은이들의 생활이다."
2010년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투신자살에 부친 자못 진지한 이 글은 한국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글쓴이에 대해서도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 바링허우(80後)의 기수"라는 소개나 블로그에 쓴 글을 묶었다는 기획 등에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도 익숙한 '젊고 비판적인 인터넷 논자'들을 연상했다. (기나긴 저자 소개에 뛰어난 카레이서라는 얘기가 있기는 했지만 무한도전 카레이싱 특집 따위를 떠올리고 지나친 모양이다.)
그런데 저자와의 인터뷰를 엮은 4장 '인터뷰'를 보면.
"나 정도로 책이 잘 팔리면, 다른 문화 대국 어디서든 책을 한 권 내서 페라리 열 대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국내의 상황은, 더 잘 팔린다 해도 페라리 반 대밖에 사지 못한다. (…) 최고 수준의 문화계 인사인 나도 200만 위안의 인세밖에 받지 못한다."
"까놓고 말씀드리면, 만약 제가 (광고 출연을) 자제하지 않는다면 1년에 1억 위안도 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년에 200~300만 위안만 벌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하나의 문학잡지로서 우리가 작가들에게 지불하는 원고료가 1000만 위안이라는 것이다. 국내의 어떤 잡지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다. 나는 이 시장을 깨부수러 왔다."
"한한에게 2009년은 바쁜 해였다. 어찌나 바빴는지 시간이 없어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대화 요청을 수락하지 못할 정도였다."
"시대에 영웅이 없으니 나 같은 보잘것없는 인물이 이름을 날리는구나 싶어요. 연말이니 특별히 좀 겸손해져볼까요. 이러면 다들 듣기에 좀 편안하겠죠."
"전혀 없어요. 전혀 없어요. 사회적 책임감이니, 젊은이를 대표한다느니 어쨌느니, 소위 의견의 지도자라느니,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한한은 록스타인 것이다. 단번에 거머쥔 부와 명예, 한없이 가벼워지려고 하는 태도 등에서 일본 버블경제 시대의 다나카 야스오(<어쩐지 크리스털> 지은이)가 연상되는데, 여기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도 나오고… 하여튼 스케일이 다르다. 미국의 세계 전략과 동아시아 경제 흥망 역사에다가 시대별 출판 시장·뉴 미디어의 등장 등 매체적 조건까지 곁들여 록 스타-작가의 발생 조건과 그 수용에 대한 비교를 해보고 싶은데 이건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영원한) 다음 기회에.
마지막으로 그를 록스타로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 중국 정부의 검열 때문에 블로그가 폐쇄되어버린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난두저우칸>의 질문에 그가 한 대답이 귀여워서 옮겨 본다.
"그럼 전 블로그와 함께 사진이나 한 장 찍지요. 뭐, 블로그는 친구와 비슷해서, 친구가 죽어버린다면 저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같이 사진이나 찍는 수밖에."
이명현(천문학자) : "호킹은 우주론을 공부한다고 말했는데, 제인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내가 반백 년 동안 파티에서 만났던 여자들 중 십중팔구는 내가 천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다음 날 날씨가 어떨 것인지 물어보거나 자신의 별자리를 이야기 하면서 별점을 봐달라고 해서 나를 좌절시켰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아 그 별 보는 사람" 하고 반응했던 같은 반 소녀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는 지금의 나의 아내가 되어 있다.
호킹은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제인과 결혼했다. 천재와 범인의 차이다.
좋은 소설을 읽고나면, 어째 든든한 적금을 붓는 기분이다. 세상이 무너져 내려 동굴 안에 갇히는 날이 온다면, 컴컴한 절망 속에서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를 챙겨둔 것 같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민음사 펴냄)를 읽으며 딱 그런 기분이었다. 파키스탄 청년 찬게즈는 고향에서 손꼽히는 엘리트였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한 뒤 금융회사에 취업해서 승승장구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는 고향과 아주 다른 세계,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구성원이 됐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뉴스와 함께, 그가 그동안 만들어 온 세계도 무너진다. 내가 만들어 온 세계가 무너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다.
김용언(<프레시안> 기자) : 어릴 땐 모퉁이만 봐도 설렜다. 구름다리 아래편 으슥한 공간, 커다란 나무 뒤쪽, 책상 밑, 옷장 속, 모두가 나의 '비밀기지'가 될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단독주택에 살 때에는 딱 내 키에 알맞은 다락방에 내 인형들을 위한 공간을 꾸몄고, 이중창의 내창과 외창 사이 공간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고(엄마랑 싸운 뒤 그곳에 세 시간을 숨어서 혼자 훌쩍거릴 땐 다른 가족들은 내가 가출한 줄 알고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개 방울이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가장 구석진 굴뚝 옆에 앉아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도 좋았다. 등나무꽃이 가득한 학교 교정 벤치 구석자리도 내 단골 지정석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눈을 피해 그렇게 구석지고 후미진 곳을 기가 막히게 알아서 찾아들어간다. <비밀기지 만들기>(오가타 다카히로 지음, 노리타케 그림, 임윤정·한누리 옮김, 프로파간다 펴냄)는 일차적으로는 그런 아이들을 위한, 그러나 여전히 아이의 마음을 잊지 않은 어른들에게도 상당히 유용한 지침서다. 우리 모두 가족에게서, 회사에서, 그리고 사회로부터 숨어야만 하는 순간이 닥쳐오니까.
그리고 역시 왠지는 모르겠지만, <비밀기지 만들기>의 이 구절이 무척 다정하고도 슬펐다.
용도 폐기된 용기만큼 비밀기지 재료에 어울리는 것은 없다. 비밀기지는 버려진 공간, 즉 사회의 틈새에 만드는 구조물이므로 쓰레기는 비밀기지를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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