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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애인은 매일 '세월호'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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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애인은 매일 '세월호'를 탄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장애인 대형 사고 대책 마련할 후보 없나?
하루가 멀다고 사고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저녁 뉴스 말미에 '오늘의 사건·사고'로 한데 묶어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인 지금은 주요 뉴스로 연일 크고 작은 사고소식이 다뤄지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사고의 원인과 사고 현장, 피해의 규모를 접할 때마다 내 머리 속엔 늘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거기, 장애인은 없었을까?'

'거기, 장애인은 없었을까?'

사무엘 잭슨과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 2000년)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모두가 사망한 각종 대형 재난에서도 번번이 홀로 살아남는 것에 대한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쪽지를 보낸 엘리야라는 사람을 찾아가고, 사소한 충격에도 항상 몸에 상처를 입는 그가 단지 자신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불사조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그 모든 대형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엘리야가 가지고 있는 질환은 실제 현실에도 존재하는 '골형성부전증'이란 질환이다. '골형성부전증'은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질 수 있는 희귀난치성 질환인데,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겉보기에 비장애인과 전혀 차이를 못 느끼는 정도의 보편적 체구를 가진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정도가 심한 경우엔 성인이 되어도 키가 1미터를 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내가 그렇다.

영화 속 엘리야처럼 뼈가 약한 나는 유년시절 30회 이상의 골절을 경험하면서 늘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목발에서 수동휠체어로, 수동휠체어에서 다시 전동휠체어로 보장구를 바꾼 탓도 있지만,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부상 빈도가 줄어드는 질환의 특성상 다치는 일이 뜸해지자 외출에 따른 제약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을 나설 때부터의 어려움은 매일 <정글의 법칙>의 난이도를 뛰어넘는 듯하다.

장애인의 일상은 정글의 법칙

울퉁불퉁한 인도와 가파른 경사로,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오래된 건물, 휠체어 이용자를 배려하지 않은 화장실 등은 비교적 작은 문제에 속한다. 아직도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지하철역이 더러 있고, 수많은 사상자를 낸 휠체어리프트를 운영 중인 곳도 있다.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 노선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또 전동휠체어를 타고 고속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열차의 이용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나처럼 넉살 좋고 여기저기 용기 내어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몰라도 언어장애를 갖고 있어 소통이 힘들거나 도움을 청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분들에겐, 누구나 하는 일상적인 일인 이 '외출'이 그야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일상생활 자체가 위험의 연속이고 불안함 천지인 장애인들을 사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다.

▲ 세월호 추모 집회에 등장한 손팻말. ⓒ프레시안(김윤나영)

대중교통, '교통'이 아닌 '고통'

급증하는 대중교통, 공공시설 안전사고를 마주하며 우리 사회가 내놓은 대안은 주로 정책 개선과 관리 감독 강화다. 하지만 늘 반복되는 이러한 대책이 장애인들에겐 그저 닭갈비(계륵) 같은 소리로 들릴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얼마 전 일어난 지하철 방화 사건을 예로 들어 한번 생각해보자. 지하철에서 화재가 날 경우 객차 출입문은 승객이 직접 손으로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안전문(스크린도어) 역시 힘으로 밀면 승강장 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만일 객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힘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하면 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때 기관사가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열쇠를 빼서 빠져나가고, 갇혀 있던 승객들이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화를 더 키웠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 때문에 승객들이 비상시 탈출요령을 쉽게 숙지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보완하는 일은 대형 참사를 막는 데에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사고에서 당신이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보자. 출입문을 수동으로 열려면 의자 아래에 있는 레버를 당겨야 하지만, 이 손잡이는 휠체어를 탄 상태에선 거의 손에 닿지 않는다. 따라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휠체어를 탄 당신은 화마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지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사실 재난으로부터의 탈출이 문제가 아니다.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다. 언젠가부터 지하철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객차 한편의 좌석 3개를 없애 '휠체어 지정석'으로 정해두었다. 하지만 막상 지하철에 탑승하면 많은 이들이 그곳에 기대어 서서 양보할 기미도 없이 스마트폰을 응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있어도 차내에 승객이 많으면 휠체어를 회전할 공간이 여의치 않아 창문을 등지고 바르게 휠체어를 세워두기 어렵다. 또 휠체어 좌석은 열차 1편에 2곳, 6석이 전부여서 사람이 많아 지정된 출입문으로 탑승하지 못하면 이용할 수가 없다.

지하철은 그나마 전동휠체어 장애인들이 비교적 빈번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중 하나이지만, 기차는 아직 쉽지 않은 교통수단이다. 전동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좌석은 열차 1편에 2석이 최대이기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일행이 많으면 여러 편에 나누어 탑승해야 한다. 만약 행선지가 멀다면 불편한 차내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식사를 거르거나 물 마시는 걸 참는 고통쯤은 예삿일이다. 또 기차에 오르내리는 데 필요한 위험천만한 경사로가 수직형 리프트로 개선된 것도 최근에야 가까스로 이루어진 변화이다.

다음으로 버스를 살펴보자. 저상버스가 꽤 늘었다고는 하지만 저상버스가 아닌 마을버스, 지선버스, 간선버스, 직행버스, 시외버스가 대부분이고, 고속버스는 아예 이용할 꿈도 꾸지 못한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금의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먼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좌석까지 착석하는 것부터가 관건이다.

도움을 받아 어렵게 사람이 먼저 탔다 해도 전동휠체어를 온전히 실을 수가 없다. 고속버스 화물칸의 높이는 1미터 내외여서 가로 1미터 이내, 세로 1미터 이상인 전동휠체어는 눕혀서 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게도 무게지만 진동이 심한 화물칸에 실을 경우 극히 민감한 조이스틱은 파손되기에 십상이다. 또 가속과 제동을 반복하는 버스의 특성상 고정되지 않아 움직이는 전동휠체어엔 여기저기 크고 작은 흠집이 발생한다. 새 구두, 명품가방, 심지어 주차장에 세워 둔 자기 차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노발대발할 거면서, 화물칸에 실었으니 그깟 휠체어 조금 긁히는 건 별일도 아니라는 버스 기사들과 다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세월호와 같은 여객선과 멀리 외국을 드나들 수 있는 비행기의 경우는 어떨까? 여객선의 내부는 온통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어, 휠체어를 타고 무난히 탑승하더라도 객실로 이동하기는 전혀 불가능하다. 따라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거의 없다. 또 비행기의 경우엔 전동휠체어의 배터리를 분리해야 겨우 수하물로 인정해주는 항공사도 있어서, 타고 내리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경부선에서 경찰이 고속버스 탑승을 시도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을 막고 있다. 이들은 이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부산·대구·세종시행 버스에 총 200좌석을 예매했다. ⓒ연합뉴스

재난이 발생하면 '감금시설'이 되는 '공공시설'

이처럼 각고의 고생 끝에 대중교통을 힘겹게 이용하는 중이라도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시설은 장애인들에게 공공시설이 아닌 감금시설이 되고야 만다.

앞서 예로 든 지하철 사고에서 다른 승객들의 활약으로 출입문이 열려 다행히 승강장으로 빠져나왔다고 가정해보자. 전동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할 텐데, 연기의 통로가 되는 엘리베이터는 화재 사고 시 이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사고 중 전원이 차단되어 갇힐 수도 있고, 연기로 질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은 연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어렵게 비상계단 앞에 당도한 당신이 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최소 4인 이상의 남성이 힘으로 휠체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거나 휠체어를 버려두고 당신 혼자만 둘러업고 뛰어야 한다. 휠체어를 오르내리기 위한 리프트는 역무원이 열쇠를 꽂아야만 작동하고, 그마저도 이용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모두가 서로 살기 위해 대피하는 와중에 그게 가능할까?

얼마 전 요양병원 화재 사고는 단 6분 만에 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인한 질식 때문에 21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때 당신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면 생존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대형 마트나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연기의 굴뚝이 되는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 없고, 다행히 화재 사고 당시 지상 1층, 출구 근처에 있지 않은 한 당신이 생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른 각도로 불이 아닌 홍수나 폭우에 인한 침수시설에 갇힌 경우라면, 그 또한 전기로 움직이는 휠체어가 물에 잠겨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에 당신의 생명을 보장하기 어렵다. 아무리 불조심을 한다고 화재가 멈추지는 않듯이, 예방과 대비 못지않게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국민의 안전을 유지하는 데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슴 아프게도 최근 몇몇 장애인들은 이와 같은 참담한 사고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다. 장애인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하던 중 장애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거절당한 고(故) 송국현 씨도 거동이 불편한 까닭에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또 얼마 전엔 전북 전주에서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과 치매를 앓고 있던 노모가 화재 사고로 사망한 사고도 있었다. 전남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 사고의 피해자분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거동이 불편한 장애를 갖고 계신 셈이었다. (☞ 관련 기사 : 세월호 참사 다음날, 국가가 또 한 사람을 죽였다)

▲ 고 송국현 씨 추모 분향소. 국가에서 활동보조를 거절당한 지 3일만에 화마에 휩싸여 지난 4월 17일 숨졌다.ⓒ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처럼 장애인들이 사고에 극히 취약하다는 것은 장애인 인권활동가로 열심히 활약하던 고(故) 김주영 씨가 2012년 10월 불의의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장애계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사실 국내 장애인 인권운동의 시발점도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고에서부터 시작한 셈이니,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같은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매년 쏟아지는 대책과 대안에 장애인들이 쓴웃음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장애인, 우리는 매일 세월호를 탄다

선거가 다가오자 늘 그래 왔듯이 정치인들은 저마다 웃는 낯으로 장애인 복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영혼 없는 약속을 한다. 안대로 눈을 가린 채 시각장애인 체험을 한다거나 휠체어를 타고 비지땀을 흘리는 등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통해 사진 찍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듯하다.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을 강화하겠다,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하지만, 정책이 개선된 이후 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고가 일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생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피해자와 실종자 현황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잠정적 사망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것이, 매일 세월호를 타는 심정으로 외출에 나서는 장애인들의 오늘이다.

먼 과거엔 장애인 정책에 관심이 많은 비장애인에게 표를 줬지만, 그들은 약속을 금세 어기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 답답한 마음에 장애인 단체의 대표들에게 표를 주기도 했지만, 그들은 '정치를 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그저 '장애를 가진 정치인'으로 쉽게 오염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 선거에선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를 딛고 우뚝 선 사람들에게 표를 주기로 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책개발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그들이 얼마나 기대에 부응하게 될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안타까워하는 내게 누군가 두 가지 질문을 해왔다. "그렇다면 지하철역 화재 사고 시 어떻게 해야 휠체어 장애인들이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누구에게 장애인 복지 정책을 맡겨야 할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보통 2개 이상 되는 비상계단 중 하나를 경사로로 만들면 되고, 실제 장애인 복지 정책을 고민하고 공부해온 정치적으로 훈련된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계단 하나를 바꾸는 일, 정치인 하나를 바꾸는 일이 어쩌면 쉽게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계단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자리 하나를 빼앗기는 일이 되기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변화의 방향을 볼 줄 모르고,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의 욕심 때문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도 장애인들은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네 바퀴의 작은 세월호, 실로 모든 대한민국 장애인들은 매일 현관 앞에서 입술을 굳게 다물고 길을 나서는 셈이다.

그저 속으로 이런 작은 기도를 되뇌며 문을 나서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까닭에.

(지난 1일 장애인 한 분이 영면하셨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후 사용 중이던 호흡보조기가 빠지는 바람에 의식불명 상태로 47일간 병상에 계셨던 지체 1급의 근육병 장애인이십니다. 고인은 사고 당일에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4·20 장애인대회'에 참석하시어, 활동보조인 서비스 지원확대 및 부양의무제 폐지 등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정책 개선에 대해 발표를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 장애인 복지발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시다, 안타까운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하신 고(故) 오지석(32) 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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