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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잊지 않겠단 약속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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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잊지 않겠단 약속은 틀렸다 [주간 프레시안 뷰]기억 투쟁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틀렸다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안타깝고 허망해서 일주일 이상을 공황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눈뜨고 뻔히 보며 아이들을 수장시켰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향해 몇십 년을 뛰어 선진국 문턱에 도달했다고 떠들어댔는데, 우리는 고작 가장 원시적인 '구조' 활동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움의 이면에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분노의 대상은 사회구조 전체였습니다.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끝까지 함께 나누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의 말이 "잊지 않겠습니다"였는데요, 하지만 틀린 말입니다. 세월호는 왜곡된 사회구조와의 한 판 승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조가 잊기를 강요하는 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위약하기 짝이 없죠.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바로 눈앞에는 해경과 청해진 해운이 있고, 또 조금만 눈을 돌리면 권력·정부·정치·자본주의 그리고 돈만 아는 천박한 문화까지 모두가 대척점에 존재합니다. 그들이 톱니바퀴 물리듯 착착 돌아가며 잊기를 강요하는데, "잊지 않겠습니다"라고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지킬 방도가 없습니다.

'기억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하고, 망각을 강요하는 어떤 공작과도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기억 투쟁'만이 우리를 세월호 이후의 공황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처참하지만, 선명한 기억이 미친 파시즘으로 인한 공황상태에서 인류를 구했듯이 말이죠.

ⓒ프레시안(최형락)

공격은 처음부터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진도체육관에 가족을 가뒀습니다.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에 가족들은 팽목항에서 30분이나 떨어진 진도체육관에서 그저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안산에 '정부합동분향소'를 순식간에 지은 것을 봐서는 팽목항 주차장이나 그 반대쪽 어느 공간에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대형 시설 역시 순식간에 지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도 실종자 가족들은 30분이나 걸리는 길을 셔틀버스에 의지한 채 매일 오가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체육관에 갇혀 해경의 공식 발표를 들었습니다. 매일같이 찢긴 가슴을 칼날로 후벼 파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정부는 해경을 위시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온갖 장비를 동원해 '구조'에 전력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가족들 앞에서 버젓이 낭독했고, 앵무새 언론은 이를 전 국민에게 유포했죠. 기억을 호도하려는 공격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진도 VTS는 결국 제대로 된 항적 데이터를 내놓지 않았는데요, 뒤늦게 알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일부 누락된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침몰의 원인을 논할 때 기준점이 되는 것이 항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에 의해 공개된 데이터가 진실인지 아닌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기억이 사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사실을 숨김으로써 제대로 된 사회적 기억의 형성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나열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정상인가를 의심할 수준입니다. 유병언의 죽음에서 대통령의 7시간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을 밝히고 그에 입각한 기억을 형성할 때에만 미래를 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의심과 혼돈만 존재합니다. 이 상황은 목적을 지닌 집단에 의해 자행된 공격의 결과입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에 대한 의도된 왜곡은 공격의 끝을 보여줍니다. 천진한 둘째 딸의 방어가 너무나도 슬프지 않은지요. 덕분에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들의 공격은 우리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만큼 강렬하고 잔인합니다.

홀로코스트 부정을 죄악시한 유럽

사회적 기억 형성을 막으려는 공격이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역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려는 의도적 공격에 직면한 적이 있죠. 유럽 국가가 내린 답은 홀로코스트 부정을 법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 17개국은 "특정한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법규를 제정했습니다. 이로써 유럽 사회는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기억을 왜곡하려는 공격으로부터 인간주의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상황은 전혀 딴판입니다. 유럽 사회가 홀로코스트의 진실을 폭로하고 처참한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채 사회적 기억을 형성했다면, 우리 사회는 진실을 감추고 혼돈과 불신을 조장해 사회적 기억 형성을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습니다. 권력과 정치와 자본이 보이지 않는 동맹을 맺고 그 일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죠. 권력과 정치가 나서서 시간을 끌고, 자본이 나서서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유럽과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면, 우리는 인간주의와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워야할까요?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서도, 의사상자(義死傷子)로 지정받기 위해서도, 대학 특례입학를 따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특별법 싸움은 권력과 자본의 잘못된 길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 사실을 은폐하려는 모든 기도로부터 진실을 지켜내려는 노력일 뿐입니다. 유럽 사회가 국가의 공식적 제도를 통해 진실을 지키고 그것을 토대로 미래 방향을 형성해 갔다면, 슬프게도 우리는 세월호 가족들의 처절한 싸움과 시민 사회의 궐기로 이를 이루려 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이 특별하지 않은 이유

가족들이 주장하는 특별법은 '진상규명'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되는데요. 사실을 드러내고, 사실에 입각해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고, 그 힘으로 왜곡된 사회 구조를 하나씩 고쳐가 보겠다는 절규입니다. 자본뿐만 아니라 정부 역시 가해자이니, 이 일을 기존의 정부기관에 맡기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죠. 해서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민간 전문가들에 더하여 현직 관료나 검경을 파견받아 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로 하여금 진상규명을 철저히 파헤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특별하단 말입니까.

'기존 정부기관에 맡기지 않으니 특별하다?' 이미 신설 위원회를 통해 일을 풀어간 사례가 허다하니, 특별하지 않습니다. 거버넌스 시대에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일은 오히려 상식에 속하니 더더욱 특별하지 않습니다. 법에 의해 위원회를 만드는 순간 그 위원회는 바로 공식적인 정부기관이 되니 특별하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유럽의 예를 볼 때 이 법이 특별하려면 기억을 왜곡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엄벌에 처하는 조항이 명확하게 있어야 합니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 이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조작적 기억을 유포하여 제대로 된 사회적 기억의 형성을 왜곡하는 행위 모두를 엄벌에 처하는 수준이라면 이 법은 특별할 수 있죠. 하지만 가족들이 바라는 법의 내용은 위원회가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 단 하나입니다. 구조적 참사의 본질을 부정하는 행위, 정부의 온갖 은폐 행위,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봉사단'과 같은 민간을 동원한 각종 왜곡 행위에 대해 그 어떤 특별한 조치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치졸한 인터넷 공격에도 그저 의연해지려 애쓰는 가족들의 노력을 우리는 매일같이 보고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특별법은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요구를 특별하다고 왜곡하고, 권력의 힘으로 무참히 압살하는 행위야말로 보편 가치의 기준에서 볼 때 참으로 특별합니다.

법보다 강한 '기억 투쟁'

공격자들이 있는 한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은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요, 스스로 의혹 덩어리인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는 한 특검에 의한 조사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여 특검 추천권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상황이 크게 호전되기 어렵다는 것이 가족들의 생각입니다. 그간의 특검을 경험해온 터라 이런 생각은 상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원회의 조사권능을 핵심 이슈로 하여 권력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족들의 행위는 정당합니다.

특별법 싸움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기억 투쟁'은 여전히 핵심과제입니다. 지금의 사회구조, 지금의 권력, 정치구조 아래서 위원회는 고작 고립무원의 별동대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에 힘을 보태고, 대척점에 있는 온갖 보수적 기도를 막아내는 일은 바로 시민 주체의 기억 투쟁이 지속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유럽처럼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홀로코스트 부정을 규제하는 법제를 시행하지 않는 한, 시민 주체의 '기억 투쟁'이 이를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 사학은 실재성(reality)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이 이 실재성에 기초한다는 믿음 때문이죠. '기억 투쟁'이 실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과 구조적 원인, 침몰 이후의 정부의 잘못된 대응과 그 잘못의 구조적 원인 모두를 사실대로 드러내는 일, 이를 위해 관련된 공공 기록과 민간 기록을 강제의 수단을 통해 온전히 수집하여 공개하는 일, 이를 방해하기 위해 기록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위·변조하는 행위를 철저하게 처벌하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왜곡돼 곪아 터지기 시작한 실재를 분석을 통해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기억 투쟁'의 핵심 과제입니다. 기록위원회의 효과적인 활동, 그리고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기억 투쟁'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역사의 변곡점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꿈의 기록, 가족들과 시민사회의 투쟁의 기록, 자원봉사자들의 기록, 시민들의 분노와 사랑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기록들이 기억 투쟁의 또 다른 소재입니다. 잊도록 강제하려는 저들의 의도를 막아낼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기억 투쟁의 수비대'이기도 합니다. 실재성에 입각하여 왜곡된 구조를 드러내고 이를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하는 일, 이 기억을 토대로 미래사회를 새로이 그려가는 일 등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시민들의 사랑의 마음과 실천과 미래를 향한 희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기억저장소'의 의미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네트워크의 노력으로, 지난 21일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30평 남짓한 크기의 세월호 기억저장소 1호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10월이면 60평 규모의 2호관도 완공됩니다. 이 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발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일찌감치 정부의 지원 등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시민의 힘으로 시민이 주체가 돼 세월호 기억저장소를 만들고 끌어가겠다고 선언했죠. 시민이 스스로 운영하는 세월호 기억저장소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기록, 희생자의 기록, 가족의 기록, 투쟁의 기록, 시민의 기록 모두를 수집하고 널리 공유하는 기능을 자처하고 나선 것입니다.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질 위원회와 협력해 오래도록 '기억 투쟁의 발원'으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입니다.

희생자 가족이 집중되어 있는 고잔동·와동·선부동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운동을 벌여가는 마당으로서의 역할도 하려 합니다. 그동안의 우리 사회의 경험은 왜곡된 구조를 전 사회적 차원에서 일거에 고쳐나가는 일이 옳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해서 세월호 기억저장소의 역할은 '기억 투쟁'과 함께 작지만 큰 공동체 운동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삶의 터전에서 사람 중심의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 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왜곡된 구조와의 대결, 그 교훈을 우리 사회 모두가 공감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로 맞게 된 역사의 변곡점에서 우리가 힘을 쏟아야 할 과제입니다.

앞으로 '세월호 이야기'를 통해 이런 소식을 나누려고 합니다. 위로부터의 담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담론을 형성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자 우리 사회의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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