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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복지태도는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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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복지태도는 다른가? [김윤태 칼럼] 노동시장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중화 딜레마에 대응하기
한국의 비정규직은 경제활동인구의 50퍼센트 수준에 달한다.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화가 심화되면서 상이한 복지 급여와 서비스를 받는 노동자 집단이 등장한다. 고용 안정이 보장된 ‘내부자’와 고용이 불안한 ‘외부자’의 자격은 더 이상 동일하지 않으며, 차등적 처우에 따라 이중적 제도화가 강화된다. 이중화(dualization)는 미국 등 자유주의 국가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고용 보호가 강한 유럽 국가,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1950년대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머스는 제도적 복지의 이중 구조를 지적하였다. 티트머스는 시장을 통한 사회정책, 즉 사용자가 제공하는 기업 차원의 사회정책이 복지의 이원화 또는 분절화를 만들 가능성을 경고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티트머스가 말한 “사회의 분열”(division of society)을 촉진한다. 동등한 자격을 강조하는 보편적 시민권이 위축되는 한편, 상이한 자격을 가진 인구집단이 증가하면서 복지국가에 대한 대중의 태도도 분화된다. 

정치적 분열과 유럽 진보정당의 위기

노동시장 이중화에 따른 정책 선호의 차이와 균열은 정당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유럽 사회민주당은 실업자와 빈곤층을 위한 사회정책을 축소하는 한편, 개인 소득세와 기업의 조세 부담을 낮추었다. 동시에 보수 정당이 주장하는 임금 억제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수용했다. 전반적인 복지지출 수준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의 복지국가는 시장 중심적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사회민주당의 변화는 노동조합과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에 부딪혔다. 스웨덴 사민당(SAP)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고용 보호를 선거 공약으로 수용한 반면, 비정규직과 실업자에 대한 공약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아 지지층이 축소되었다. 특히 노동시장의 외부자인 비정규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청년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사회민주당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독일 사민당(SPD)은 복지개혁을 둘러싼 논쟁으로 분열되어 좌파당(Die Linke)이 창당되었으며, 사민당의 지지율은 25퍼센트 수준으로 하락했다. 

반대로 외부자를 향한 정치적 강조도 내부자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2006년 스웨덴 총선에서 사민당이 외부자 보호를 중시하자 사민당의 이미지가 이민자 등 외부자와 동일시되었다. 중산층 이상의 유권자들이 복지국가를 유지하면서도, 소득세를 인하하고, 실업급여를 축소하겠다는 중도우파 온건당의 공약에 호응하면서 사민당은 정권을 잃었다. 2014년 총선에서 집권 온건당 주도 연정이 붕괴했지만, 사민당은 취약한 소수정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사민당이 직면한 외부자와 내부자의 딜레마는 해결되지 않았다. 13퍼센트 넘게 득표하고 제3당이 된 극우 스웨덴 민주당의 약진은 외부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여준다.  

한국 진보정당의 전략적 한계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노동시장 유연화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화가 심화되면서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상이한 정책 선호에 직면하였다. 진보정당은 상대적으로 정규직의 고용 보호를 강조한 반면, 비정규직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고용 사유를 제한하는 제안 외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도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소극적인 중재자 역할에 머물렀다. 고용 안정성, 작업 환경, 노동권의 분절화 현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더욱 증가했다. 최근 임금 격차는 거의 100 대 50 수준에 달한다. 특히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과 여성 노동자의 실업과 빈곤 위험이 커졌다. 최저임금 이하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이들 가운데 진보 성향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과 투표 포기 비율은 더욱 증가했다. 자신을 대표하는 정당을 발견할 수 없는 청년층의 낮은 투표율과 보수화는 진보 정치의 새로운 위기를 초래한다. 

한국의 정치권은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한국 정당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재생산하였기 때문이다. 선거 공약에서도 고용과 복지보다 지역구의 개발 공약이 우선시되었다. 2014년 재보선에서는 ‘예산 폭탄’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다른 한편, 노동운동은 기업별 노동조합 체제를 통해 경제적 조합주의에 머무르고 있다.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철저히 배제된다. 이러한 제도적 제약성은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를 확대하고 재분배적 사회정책을 정치적 의제로 부각할 기회를 줄인다. 계급정치와 복지정치는 지역주의 정치에 억눌린다. 동시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치적 분열이 가중된다.

이중화와 노동계급의 분열

선진 산업국가의 사례에서도 노동시장의 이중화에 따라 고용 조건이 다른 노동자들이 상이한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2012년 미국 정치학자 필립 렘, 제이콥 해커, 마크 슐레징거의 연구는 미국과 호주 및 영국,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스페인 등 11개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가구의 소득 수준과 개인의 고용 안정성이 실업 급여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그들의 연구를 보면, 소득 수준이 낮고 실업의 위험이 높을수록 관대한 실업 급여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다. 

2013년 독일 정치학자 실자 하우저만, 토마 큐러, 하나 슈완더의 논문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 그리스 등 13개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실업 위험이 복지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실업 또는 비정규직 근로의 위험에 취약한 외부자일수록 소득과 연동된 사회보험 대신 소득수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재분배 정책과 정부의 완전고용 정책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비정규직 노동자일수록 복지 확대 지지

2014년 김윤태와 서재욱이 <한국사회복지정책>에 출간한 ‘이중화와 복지태도’ 제하 논문을 보면, 정규직, 비정규직의 고용 지위에 따라 노동계급의 복지태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이 논문은 2010년 한국복지패널 5차조사의 부가조사인 <복지인식조사>를 활용했는데, 근로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복지 확대를 지지할 확률이 높았다. 노동연구원 이병희 연구위원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생계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은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에 가입했어도 충분한 급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대 안상훈 교수도 한 학술논문에서 노동시장의 외부자일수록, 그리고 사회보험의 내부자일수록 연금 지출의 확대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윤태와 서재욱의 논문을 자세히 보면, 근로소득의 수준과 고용 안정성에 따라 각 제도별 복지태도에도 다양한 차이가 나타났다. 저임금 노동자는 중상 수준 이상 노동자에 비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주거, 아동, 노인 지원의 확대에 더 지지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국민연금, 고용보험, 주거 지원에 대해 더 지지했다.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중 전략의 중요성

과거의 복지태도에 관한 연구는 소득 수준과 복지태도가 명확한 관련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윤태와 서재욱의 분석을 보면 소득 수준에 따라 복지태도의 차이가 나타났다. 중간 소득 이상을 받는 노동자가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와 기간제 노동자가 전반적인 복지의 확대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았다. 2007년 복지패널자료에 비해 2010년 조사에서 전체 노동자 가운데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응답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증세 정책과 다를 수 있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납세 능력이 높은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의 지지도 필요하며, 모든 노동자의 지지도가 높은 교육, 아동, 노인을 위한 사회투자와 사회서비스 분야의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동시에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확대와 급여 수준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노동자, 실업자, 중산층을 광범한 복지연합으로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서 노동시장의 이중화에 대응하여 노동자 내부의 이해관계의 충돌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지국가의 보편주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줄이는 동시에,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사회투자와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친복지 세력은 대중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서 보편적 복지국가와 사회투자를 동시에 추진하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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