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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제대로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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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담뱃값, 제대로 올려라" [안종주의 건강사회] "담뱃값 인상분 전액,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써야"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짜증나는 일만 계속 생기는 한국 사회에서 담뱃값 인상이 흡연자, 특히 저소득층 흡연자를 '왕짜증'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담뱃값 인상을 놓고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서민을 봉으로 보고 세금수입을 늘리기 위한 꼼수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다'라는 양쪽 진영의 논리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담뱃값 인상을 놓고 찬반 논쟁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담뱃값에는 담배회사의 제조 원가나 판매 이익, 그리고 건강증진부담금보다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월등하게 높다. 또 이번 2000원 추가 인상에 따라 세금 액수가 가장 크게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담뱃값 인상이 세수 확대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증진과 흡연율 감소에 있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삼척동자도 뻔히 아는 일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국민건강 때문이라고 부르대는 청와대와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필자는 그동안 이 칼럼난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간지 등 여러 매체와 강연 등을 통해 담뱃값 대폭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담배 판촉 규제, 담뱃갑 혐오 사진 게재 따위를 주창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이런 요구에 줄기차게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니 외려 이런 정책을 추진하려는 참여 정부의 발목잡기에 골몰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 정부가 금연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만약 이번 담뱃값 인상이 증세를 통한 세수 확대가 목적이 아니고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몇 가지 점을 먼저 실행하거나 그 실행을 약속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담뱃갑에 혐오스런 흡연 피해 환자의 혐오스런 피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실어야 한다. 또 그동안 담뱃값 인상을 추진할 때마다 발목을 잡았던 일을 고백하고 사죄해야 한다.

▲ 세계 각국의 담뱃갑 경고 그림. ⓒ보건복지부

담뱃값 인상분 전액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서민 금연 정책에 써야

이와 함께 세수 확대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번 담뱃값 인상 때 담배에 세수 항목을 새로 늘리거나 기존 세수 항목의 절대 액수를 그대로 두고(이렇게 하려면 담뱃값에 포함된 지방세와 국세의 비중을 낮추어야 함) 인상금액은 전액 건강증진부담금으로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 증진부담금은 전액 흡연 예방과 건강 증진, 저소득층 흡연 질환 치료비를 비롯한 의료비 지원 등에 국한해 사용해야 한다.

이런 것이 이루어진다면 2000원 인상해 담뱃값을 4500원으로 하지 않고 4000~5000원 더 인상해 6000~7000원 해도 나는 대환영을 할 것이다. 담뱃값 대폭 인상은 분명 흡연율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은 서민층의 흡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 안대로 담뱃값이 오를 경우 하루 한 갑 피우는 사람은 연간 73만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그리고 이 흡연자는 앞으로 연간 164만 원을 담배 구입에 사용해야만 한다. 연간 소득이 1640만 원이라면 그 10분의 1을 담배 구입에 써야 하는 것이다. 실로 엄청난 부담이다. 따라서 이 정도 또는 이보다 약간 많은 소득의 저소득층이라면 계속 흡연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담배를 끊는 서민이 늘어난다면 그들은 돈 벌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담배를 끊지 못하고 계속 피우는 서민들에게 급격한 담뱃값 인상은 울화통 터지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지금 흡연자들이 담뱃값 인상에 격렬히 저항하는 말을 쏟아내고,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이 이들의 처지를 옹호하며 인상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담뱃값 인상이 저소득층의 살림살이에 주름이 더 깊게 패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담뱃값 인상은 해야 한다. 사실 너무 늦었다. 담뱃값은 5~6년 전에 5000원 수준이었어야 했다. 물론 담뱃값 인상은 담배를 계속 피우는 저소득층에게는 꾹 참고 지나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이른 시일 안에 담배를 효과적으로 끊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여기에 담뱃값 인상분을 대량 투입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직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하지 않고 있는 흡연 보조 치료제 처방 투약을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연 교육 등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적극 실시해야 한다.

중소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등 저소득층 위한 획기적 금연프로그램 필요

우리 사회의 금연 운동은 너무나 미미하다. 민간 차원의 금연운동협의회가 있지만 조직이나 예산 면에서 구멍가게 수준이다. 사내 금연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하는 곳도 있지만 삼성, 포스코,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극히 일부 대기업에 그치고 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날품을 파는 노동자들은 금연 프로그램에서 소외돼 있다. 앞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금연 프로그램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종합대책을 내놓고 실행 가능한 것은 실행하고, 예산을 더 투입하고, 관련 제도 개선을 서둘러 하고, 그리고 새로 인상되는 담뱃값 부분에 대해서는 서민 건강과 금연 예방치료에 전액 투입하겠다고 선언하면 담뱃값 인상에 대해 저항하는 흡연자들과 이런 저항을 지지하는 논리는 펴는 사람들도 더는 강력한 반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합뉴스

담배는 어찌 보면 지구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상품이다. 흡연의 역사를 살펴보면 마야인들의 주술사나 사제가 향을 피우던 의식에서 흡연이 비롯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점차 전 마야인들의 생활습관으로 정착됐고, 15세기 서구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과 정복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서구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결함투성이의 제조물이 급속히 전 세계로 퍼져나가 오늘날 지구촌은 담배의 노예가 된 사람들로 들끓고 있고, 아직도 그 대부분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치명적 위험에 놓여 있다.

담배는 한때 남성의 전유물로, 그리고 아직까지 어른들의 전유물로 여겼다. 하지만 그 금기가 깨진 것은 이미 오래다.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흡연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성인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이며 청소년들의 경우 아직 사회적으로 용인은 하지 않지만 이들의 흡연율은 이제 백약처방이 소용이 없을 정도로 높다.

흡연이 지닌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는 점이다. 자신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가족이나 친구, 동료 등 주변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에 노출돼 해마다 죽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만 수천 명 수준이고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저소득층 자녀가 간접 흡연에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을 전문가들이 하고 있다.

만약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 저소득층이 담배를 끊는다면 돈 벌고,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덤으로 자녀의 건강까지 챙기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담뱃값 인상을 둘러싼 논쟁을 서민 부담 증가나 꼼수 증세로만 몰아가서는 곤란하다. 좀 더 큰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먼 장래까지 내다본 논쟁과 시각이 필요하다.

담배는 건강사회의 적이다. 너무나 분명한 적이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을 하는 방식이나 그 밑에 깔린 정부의 의도는 건강하지 않다. 국민들에게 그 수가 빤히 읽히는 행마를 하면서 엉뚱한 변명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걱정된다면 카지노 확대, 화상 경마장 확대 등 국민의 도박 중독을 부추기는 정책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 들어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중독을 외려 확장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세수 확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목적이 올바르더라도 그 수단과 방법, 순서가 외려 더 중요

인류는 전쟁 때에도 적에게 화학무기나 생물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적을 죽일 때도 금도를 지켜야 한다. 마찬가지다. 담배가 아무리 나쁜 중독물질이고 위험물질이라고 할지라도 흡연자가 담배를 끊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수단과 방법을 건강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단과 방법의 사용도 그 순서가 있다. 박근혜 정권의 금연 정책은 분명 그 순서가 잘못됐다.

수순이 제대로 되어야만 바둑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먼저 공군의 폭격 등으로 지상군이 효과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담뱃값 인상도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당장 정부는 획기적인 금연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담뱃갑에 혐오 사진 등을 넣을 것인지, 거리 흡연 금지 확대 정책은 어떻게 펼 것인지 등을 제시해야 한다. 저소득층 금연 정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진할 것인지가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팥소 없는 진빵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담배 인상분을 대부분 건강증진부담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담뱃값 인상이 국민 건강 때문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고 국민 건강 운운은 말장난이요, 속임수에 불과하다. 담배 없는 사회가 건강사회임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금연정책을 건강하게 펴는 것도 건강사회가 지켜야 할 핵심 요소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을 펴면서 시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이다. 나라 살림살이에 세수 확대가 절실한 형편이라면 돈이 있는 곳과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물려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모은 돈은 서민들의 복지와 일자리 확대, 임금 인상에 투입해야 한다. 그런 뒤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주름이 가더라도 미래를 위해 담뱃값 인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수순으로 정책을 편다면 담뱃값 인상을 막는, 그 어떤 걸림돌도 돌파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 건강도 챙길 수 있다. 건강사회를 향한 대도(大道)는 따로 있지 않다. 꼼수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꿋꿋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정도(正道)를 걷는 정권은 박수를 받을 것이고 사도(邪道)를 걷는 정권은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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