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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파와 악어의 눈물, 담뱃값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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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막가파와 악어의 눈물, 담뱃값의 경제학 [주간 프레시안 뷰] '부채 주도 성장'의 위험성
막가파 대통령과 '부채 주도 성장'

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읽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새벽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팔뚝의 살갗이 오스스 솟아오릅니다. 저도 모르게 어깨를 오그리게 되죠. 하지만 우리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열받게'하는 건 다름 아닌 우리가 뽑은 대통령입니다.

혹시 "막가파"를 기억하시나요? 1996년 한 여성을 생매장해서 살해한 집단의 이름입니다. 이들은 살인 뿐 아니라 툭하면 "주유소 습격사건"까지 벌인 희대의 범죄조직입니다. 지난 5월 19일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눈물을 흘렸던 박근혜 대통령이, 9월 16일 "세월호 끝"을 선언하는 순간 저에겐 이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박 대통령 스스로는 5월에 약속한 '국가개조'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선언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월호'에 생뚱맞게 '민생'을 대립시켜 놓고 여론을 지켜보다가 이젠 이런 지루한 대치국면도 끝이라고 선언한 겁니다.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민생법안'은 굳이 표현하자면 '민사(民死)법안'입니다.

박 대통령의 대선 때 구호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경제민주화"와 "증세 없는 맞춤형 복지"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실현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조세감면과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 문제없다고 일축했죠. 세금 거둬서 복지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무슨 정책이냐고 까지 호언장담했죠.

경제의 막가파 정책은 기존의 규제완화라는 구조정책에 "부채 주도 성장"이라는 경기대책을 더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반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경제는 겨우 0.7퍼센트(%)를 성장했을 뿐입니다. 한국의 1분기 수출증가율은 1.5%, 2분기는 1.7%에 머물렀고 민간소비는 -0.3%로 떨어졌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저도 이런 상황에서는 확대재정정책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부여당에 고루한 재정긴축론자(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며 침체기에 오히려 긴축정책을 쓰는 미국과 유럽의 보수주의자들로 한국에는 이한구 의원이 대표적이고 최근 김무성 대표도 이런 견해를 표명한 바 있죠)가 별로 없다는 게 다행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몇 번 해설해드린 대로, 최경환 부총리는 부자들의 감세(배당소득의 분리과세)를 단행했을 뿐, 오로지 부동산 투기에 목숨을 거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들의 위기를 초래한 "부채 주도 성장"이 막가파의 경제기조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던 중 눈물을 흘렸다. ⓒ연합뉴스

막가파판 '악어의 눈물'…담배값의 경제학

하지만 돈을 원 없이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 재정문제가 걱정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런 마당에 보건복지부가 뜬금없이 내년에 담뱃값을 4500원으로 80% 올리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연이어 안전행정부는 주민세, 자동차세를 100%씩 인상하는 입법 예고로 국민들의 얼을 뒤흔들었습니다. 증세는 없다더니 서민들이 주로 내는 세금을 올리겠다는 얘깁니다. 이젠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죠. 막가파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도대체 담뱃값은 왜 4500원일까요? 담뱃값을 올리면 한 갑 팔 때마다 2000원의 수입이 늘어나겠지만 흡연을 줄이거나 아예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다진다면 오히려 총수입은 줄어들지도 모릅니다. 경제학에서 가격 인상이 수입을 늘릴 것인지를 판단하는 개념이 '수요의 가격탄력성'이라는 겁니다.

술과 담배는 대표적 '비탄력적'인 상품입니다. 가격 인상폭에 비해 수요 감소폭이 적어서 세수가 늘어나는 겁니다. 바로 중독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1만 원으로 값을 더 올리면 보건복지부의 목표에 걸맞게 선진국 수준으로 흡연율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면 세수는 감소하겠죠. 즉 담뱃값을 계속 올리다 보면 수입이 늘어나다가(따라서 담뱃값에 포함되어 있는 세금의 수입도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감소로 돌아서는 지점이 있을 겁니다. 4500원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6월 조세재정연구원은 담배가격과 수요의 통계를 기초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4500원 부근일 때 세수가 극대화된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6000원을 넘어가면 수입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돌아선다는 겁니다.

▲ 담배조세의 효과와 재정 ⓒ조세재정연구원(최성은)
이 그림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4500원이라는 숫자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복지부는 국민 건강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담뱄값을 올린 거죠. 현재 국내 담배가격을 구성하는 항목별 비중은 ▲ 유통마진 및 제조원가 39%(950원) ▲ 담배소비세 25.6%(641원) ▲ 국민건강증진부담금 14.2%(354원) ▲ 지방교육세 12.8%(320원) ▲ 부가가치세 9.1%(227원) ▲ 폐기물 부담금 0.3%(7원) 등이다. 무려 61%가 세금이기 때문에 담뱃값을 올린다는 건 '담뱃세'를 올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담뱃값이 4500원일 때의 가격탄력성을 얼마로 추정하느냐에 따라 세수가 얼마나 증가될 것인지가 결정됩니다. 이 수치는 연구자의 가정에 따라 사뭇 달라질 수 있는데, 위 표처럼 세수 증가는 2조8000여 억 원에서 5조 6000억 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정부야 국책연구원의 발표를 믿어서 4500원으로 정했겠지만 예산정책처나 시민경제사회연구소의 추정처럼 세수가 더 늘어난다면 환호할 일이겠죠.

문제는 이런 정책이 이중으로 역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세금은 아무래도 돈 많은 사람이 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선 부자가 담배를 피건, 가난한 사람이 피건 똑같은 세금을 부담한다는 점에서 역진적입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일수록 흡연율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역진적입니다.

16일 한국납세자연맹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담뱃값이 정부의 원안대로 오를 경우 하루에 담배를 한 갑 피우는 흡연자의 연간 세금은 기존 56만5641원에서 2배 넘게 증가한 121만1070원에 이릅니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과 부담금이 기존 1550원에서 3318원으로 오르기 때문이죠. 시가 9억 원 상당의 주택에 대한 재산세와 유사해지는 겁니다(하루에 두 갑 피는 저는 무려 242만 원을 내게 되는군요). 또 이 수치는 연봉 4745만 원의 근로소득자가 연간 평균적으로 내는 근로소득세 124만9411원과도 맞먹습니다.

대통령은 막가파임을 선언한 그 자리에서 담뱃값 인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도 올해 금연의 날을 맞아서 각국의 담배세 50% 인상을 촉구하면서 모든 국가가 담배세를 50% 인상하면 3년 내에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110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략) 담뱃값 인상은 특히 청소년과 저소득층에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안다. 국민 여러분도 정부의 노력에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린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의 50% 인상 권유를 넘어서 80% 올리겠다는 얘긴가요? 아예 1만 원쯤으로 올리면(300% 인상) "청소년과 저소득층에 효과"는 말 그대로 만점일 텐데요. 하지만 정부는 절대로 그렇게 올리진 못할 겁니다. 그 정도 담뱃값을 인상하면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 테니까요.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상한 대통령이 저한텐 막가파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막가파가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장면이라고나 할까요?

막가파의 행동대장 격인 최경환 부총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담뱃세·주민세 인상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증세로 정책 전환을 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해"라며 "세수 목적이 아니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며, 들어오는 세수는 금연정책, 국민안전과 관련된 곳에 쓰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주민세는 "복지지출 때문에 재정이 말도 못할 정도로 어려워진 지방자치단체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정부가 주민세 인상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민세 역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돈을 내야 하니까(인두세) 역진적입니다.

오로지 국민건강과 주민복지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담배세에 포함되어 있는 국세를 전부 지방세로 전환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됩니다. 박원순 시장이 담뱃값 인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과 부총리가 진정으로 국민건강과 주민복지를 위한다면 담뱃값을 8000원 이상으로 더 올리든가, 담배에 포함되어 있는 국세 부분을 전부 건강기금과 지방세로 돌리면 된다는 얘깁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행동대장이 움직이니까 '똘마니'들도 한 수 거듭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교육비를 댈 때는 상속증여세에서 1억 원을 감면해주자는 법안이 제출됐고(새누리당 류성걸 의원), 기획재정부는 설립 30년이 넘는 중소·중견기업의 오너가 자녀에게 가업을 상속할 때 재산총액 중 1000억 원까지 세금을 공제해주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깎아 준 법인세만 원상 복구해도 매년 30조 원가량의 추가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데도 부자들 세금은 추가로 깎아줄 궁리를 하면서 서민들에게 세금을 떠넘기는 이 정권을 막가파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설마 이 글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은 예라고 판단하진 않겠죠? 말 그대로 유신시대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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