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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으로 치닫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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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착역으로 치닫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한반도 브리핑] 전단의 정치학, 정녕 모르고 하는 이야기인가
정녕 전단의 국제정치학을 모르는가. 대북전단 살포가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라고 우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단은 심리전의 '무기'이고, 전단 살포는 전쟁행위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희망적 사고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한반도에서, 또 동북아시아에서 불신에 불신을 낳아 '불신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신뢰프로세스'의 본질은 이것인가.

통상 '삐라'라고 불리는 전단을 적진에 살포하여 적군과 주민의 항전 의지를 꺾거나 투항하도록 유도하는 심리전은 오래전부터 많은 국가들이 사용하던 전쟁수단이다. 한국전쟁 3년 동안 10만 장 이상의 전단이 뿌려진 바 있고, 근래에 와서도 걸프전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전단이 사용됐다.

이미 1806년 영국군이 연을 이용해서 프랑스군에 전단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고, 풍선을 이용해서 전단을 적진에 뿌리는 방법은 1870년 프랑코-프러시아 전쟁에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는 공군이 전투기를 몰고 상공에서 직접 살포하기도 했다. 이런 방법이 대공포의 위협에 노출되자 이후 다양한 살포방법이 개발됐다.

영국군과 미군은 폭탄을 개량하여 전단 살포용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독일군은 V1 미사일에 전단 살포용 상자를 부착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공군의 제임스 몬로 대위는 '몬로 폭탄'이라고 불리는 전단 살포용 폭탄을 개발해서 B-17폭격기에서 투하하도록 했다. 이후 이 폭탄은 더욱 개량되어 전단살포 전용 M129가 등장했다.

▲ 지난 10월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소속 회원들이 대북 전단을 띄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수소 가스를 주입한 풍선을 적진에 날려 보내 전단을 살포하는 방법이 정교하게 개발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A. 플레밍이라는 영국인이 특수처리된 종이에 수소를 넣은 풍선을 만들어 사흘까지 공중에 떠 있도록 하는데 성공하면서, 이 종이풍선을 이용해 전단을 살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7년 영국 폭발물개발국이 종이풍선 개발에 시작하여 1918년 2월에 개발을 완성했다. 그해 3월부터는 영국 공병대가 종이풍선 제조와 전단 살포를 전담, 정전이 될 때까지 풍선 3만 5000개를 이용해 전단 2000만 장을 살포했다.

이후 고무와 플라스틱을 이용한 풍선이 등장하고, 수소 등 다양한 주입가스가 사용되는 등 풍선 전단은 발전을 거듭했다. 물론 새로운 통신수단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이메일과 핸드폰, 소셜미디어 등이 심리전의 도구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전단이 심리전의 도구라는 본질적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정전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전단을 상대편에 살포하는 행위는 위험한 전쟁행위이다. 북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북의 군인과 민간인을 상대로 체제전복이나 이탈을 유도하려는 심리전 활동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총이나 대포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단 살포도 엄연한 전쟁행위이다. 심리전도 전쟁이다. 전단을 살포하는 측도 그런 의도를 공개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현실적으로 전쟁행위가 엄연한 활동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최고 책임자들이 이를 '표현의 자유'라고 엉뚱한 프레임을 갖다 대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정전상태에 길들여진 시민사회도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전쟁행위인 대북전단 살포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더더욱 위험하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 2월 고위급 접촉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하지 않았는가. 대북전단 살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유일하게 합의된 사항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북의 태도도 유의할 만하다. 북은 현재 제2차 고위급접촉 이전에 1차 고위급접촉의 합의사항을 이행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즉 이전 정부에서 이뤄진 정상회담 선언 준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5.24조치나 경제제재의 해제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 정부가 합의한 사항만이라도 이행하라는 최소한의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는 북의 이러한 태도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북이 내부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 또는 경제 재건을 위해 다급하기 때문에 소위 '평화공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반대하는 외교활동을 펼치면 이것도 북이 아파하는 증거라고 해석한다. 러시아와 관계가 긴밀해지면 세계에서 고립된 '불량국가들'의 야합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굳이 북과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북이 올해 초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을 총적과제로 내세운 것을 애써 보지 않는 것이다. 북은 협상의 결과는 협상장에 가기 전에 이미 결정된다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관을 가지고 있다. 양국 간의 상대적 힘의 차이가 협상의 결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북이 대화와 협상에 적극적인 이유는 일부의 자의적 해석과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이미 그런 조짐들이 보이지 않는가. 북의 핵시설들은 계속 돌아가고 있고, 미사일 개발과 시험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서 들어가는 원유는 없다는데 평양에 돌아다니는 택시는 늘어나고 지방도시에까지 택시가 등장하고 있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밤에 전깃불이 들어온다. 백년만의 대가뭄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에서 쌀값은 떨어지고 있고, 생산활동이 과수원과 축산, 해산으로 확장되고 있다.

'핵-경제 병진노선'이 실패할 것이라고 되뇌는 사람이 있기는 있으나, 그것이 현실에 기초한 객관적 분석인가, 희망을 담은 주문인가. 일부 민간의 전쟁 행위를 손 놓고 보고 있으면서, 결과적으로 불신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북의 핵 미사일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일본 혼슈의 거의 북단인 사리키 및 교탄고 기지에 엑스밴드레이더를 배치하고도 불안하다.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지상요격미사일이 배치되어 있지만 남극 궤도는 뚫려있기 때문이다. 괌에 배치한 사드로 괌 미군기지를 보호할 수는 있을지언정 대기권 밖을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이유이다. 북의 핵무기 능력 개발을 지연 내지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외교적 수단을 사용하려고도 한다.

한국 국방부와 외교부는 사드의 배치와 관련한 합의와 논의가 없었다고 하는데,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이미 다 된 것 같이 얘기한다. 청와대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 문제제기를 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안심시킨다. 한중 FTA로 곳간을 열어주고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호의적인 환경이 창출되도록 중국과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고 중국의 손을 들어 준다.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놀라자 이번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안심시킨다. "북핵문제와 관련, 국제사회의 단합된 입장이 매우 중요"하고 "북 비핵화를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한미일 3국간 협력의 필요성도 재확인한다.

한미 당국 사이에 되풀이되고 있는 '북 비핵화'라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로 한 발 물러선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는 듯 시 주석만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등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조속한 6자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화했다던 중국은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데, 중국과는 조속한 6자회담에 동의하고 미국과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입장'에 합의한 한국은 어디에 서는 것인가. 한반도에서는 일부의 위험한 전쟁행위가 전쟁이냐 평화의 갈림길로 한반도를 밀어 넣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에서 불신이 불신을 낳는 '불신의 악순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바야흐로 '신뢰프로세스'는 그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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