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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전기', 놔두면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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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욕망의 전기', 놔두면 다 죽는다 [함께 사는 길]핵‧③ 송전선 관련 법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밀양, 청도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운동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눈물에도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은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주민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밀양과 청도 주민들이 받은 고통의 원인이 된 법 제도는 여전히 그대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전원개발촉진법을 비롯한 송전선 건설 관련 법률들이다.

비민주적인 전원개발촉진법

전원개발촉진법은 1978년 한전 등 전원개발사업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던 법이다. 한마디로 발전소, 송전탑, 변전소 등을 쉽게 지을 수 있도록 만든 특별법이다. 이 법에 근거해 정부와 공기업들은 원전도 짓고, 초고압송전탑도 건설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없었다.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해도, 결국에는 정부 공권력의 위협과 집요한 회유 앞에 손을 들었다. 이런 법률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제2, 제3의 밀양과 청도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전원개발촉진법의 핵심적인 문제는 인‧허가의제 조항과 토지강제수용 조항에 있다. 현행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실시계획 승인이라는 것만 받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본래 이런 개발사업을 하려면, 여러 법률에 따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르면, 실시계획 승인을 받는 순간 '국토의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농지법', '산지관리법' 등 20개 법률에 따른 인허가 절차가 끝나는 것으로 간주(의제)된다. 각각 법률이 존재하는 의미는 무시된다.

▲ 밀양과 청도 주민들은 하루 아침에 땅을 빼앗겼다. 전원개발촉진법과 전기사업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제2의 밀양, 청도는 어느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함께사는길(이성수)

이처럼 여러 법률이 정해놓은 규제들을 뛰어넘어 추진되는 것이 발전소, 송전선 건설이다. 그리고 지역주민이 반발하면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법 조항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평생 농사지어온 땅을 한순간에 뺏기는 경우가 나올 수밖에 없다. 2012년 1월 경남 밀양에서 분신자살한 농민은 결국 이 전원개발촉진법이 만든 희생자다.

전원개발촉진법은 한마디로 한국전력(주)(이하 한전)같은 사업자를 밀어주기 위한 법이다. 절차도 간소화하고, 강제수용권이라는 막강한 권한까지 준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전의 사업추진방식은 매우 비민주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실시계획 승인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늉만 해 왔다.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알리고 설득하기보다는 형식적이고 졸속 주민설명회를 거쳐 사업을 강행하기에 바빴다.

밀양, 청도 등의 지역에서도 형식적인 주민공청회를 거쳐 일방적인 정부의 실시계획 승인과 토지수용이 이어졌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2009년에 전원개발촉진법이 개정되어 '사업시행계획의 열람 및 설명회를 통하여 대상사업의 시행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의 주민 및 관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청취한 주민 등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실시계획에 반영하도록 했지만('전원개발촉진법' 제5조의2), 이 정도 내용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의견을 듣는 것에 불과하고, 의견 반영여부도 사업자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부실계획을 양산하는 전기사업법

ⓒ함께 사는 길(이성수)
전원개발촉진법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 관련 법률 전체가 부실하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장기송배전설비계획 등 중요한 계획을 수립하는 근거법률은 전기사업법이다. 그런데 이 전기사업법을 뜯어보면, 관료, 업계, 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계획을 짜도록 되어 있다. 발전소 건설이 정말 필요한지, 초고압송전선이 꼭 필요한지 등을 검증하는 장치는 없다.

대한민국이 원전밀집도 세계1위 국가가 되고, 끊임없이 바닷가에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대는 국가가 된 것도 전기사업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밀양, 청도 송전탑도 그 필요성에 지금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졌다. 그 시작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수립하게 되어 있는 계획이 부실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전소와 송전선을 건설하는 과정의 시작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다. 2년마다 갱신하게 되어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만드는 과정은 폐쇄적이다. 최근에 시민단체 인사 몇 명이 그 과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으로 '시민참여'가 이뤄진다고 할 수는 없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력정책심의회 같은 심의기구의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으나, 전력정책심의회는 전혀 독립성이 없는 기구다. 30명 이내 위원은 관련 부처 공무원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위촉권을 가진 민간위원으로 구성된다. 결국, 정부 입맛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기구이다.

이런 기구의 심의를 거쳐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만들어지면 그에 맞춰 장기송배전설비계획이 수립된다. 이 계획은 초고압송전선이나 변전소를 어디에 건설할지에 관한 계획이다. 이 계획에서 '신고리-북경남' 송전선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정되면, 그다음부터는 막무가내식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문제는 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는 이뤄지지 않고, 지역주민의 의견수렴절차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말 송전선이 필요한지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장치도 없다.

외국은 이런 식으로 송전선 건설계획이 수립되지 않는다.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 및 주 정부별 공공사업규제위원회(PUC 또는 PSC)가 신규 송전선로를 건설할 때 신규송전선로 건설이 아닌 다른 대안(대안선로 및 비송전선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대안을 검토한다. '비송전선로 대안'에는 지역 분산형 발전, 수요관리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주 정부 차원의 규제기관인 버지니아주 기업규제위원회(Virginia State Corporation Commission)는 버지니아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준사법기관으로 송전선 사업 허가권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약 지역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이 위원회는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른 분쟁조정을 보장하며, 분쟁해결에 대한 지원역할을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76만5000볼트 초고압 송전선이 추진되다가, 이런 규제기관에 의해 제동이 걸려 사업이 백지화된 사례도 있다.

우리도 독립적인 기구를 두고, 각종 계획의 수립과 사업인‧허가, 분쟁조정 등을 담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송전선 건설사업이 과연 필요하고 타당한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송전선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 예방할 수 있고, 지역주민들의 억울함도 풀 수 있다.

▲ 주민들 동의 없는 토지 강제수용으로 송전탑 건설로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함께 사는 길(이성수)

손댈 곳이 한두 개가 아냐

지금까지 얘기한 것 외에도 우리나라의 송전선 관련 법률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송전선을 지중화할 경우에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문제가 있다. 사실 초고압송전선은 지역 분산형 발전을 하는 경우에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지역에서 필요한 전기를 자기 지역에서 발전한다면 장거리 송전선이 필요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바닷가에 대규모 발전소를 짓고, 그것을 대공장이나 대도시로 송전하는 시스템에 있다. 이 과정에서 송전선이 필요하고, 그 송전선 때문에 지역주민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전비용은 이 시스템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대공장이나 대도시가 부담하는 것이 옳다. 주거지역에 인접해 있거나 피해가 커서 지중화가 필요한 경우에, 지중화 비용도 수혜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기사업법은 지중화 비용을 '요청자 부담' 원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중화를 요청하는 주민들이나 해당지역 지자체에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법 조항도 고쳐야 한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당장에라도 법을 고쳐야 하는 부분들이다. 그래서 ‘전국 송전탑반대 네트워크’ 등이 전원개발촉진법, 전기사업법 등의 법률을 뜯어고치기 위한 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명) ‘밀양‧청도법’이다. 법 초안이 마련되면 소송, 서명운동 등을 통해 전국적으로 힘을 모아나갈 예정이다. 밀양과 청도의 고통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양심 있는 시민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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