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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폐지? 지방자치 강화해도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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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폐지? 지방자치 강화해도 모자라 [복지국가SOCIETY] 시민의 손에 닿는 지방자치
한국의 지방자치가 흔들리고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은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중앙 정부의 복지 사업을 충당하느라 만성 적자에 시달리면서 지난달 28일 전국의 시·도지사들이 '지방자치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8일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은 그간 선거를 통해 주민들이 직접 선출했던 서울 및 광역시의 기초의회 폐지, 광역시의 구청장 임명제 등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안을 담고 있어 지방자치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방자치의 필요성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는 더디게 발전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중앙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에 기인한다.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발표한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의 근거는 행정비용의 절감인데, 이는 지방의회의 운영이나 구청장을 뽑는 선거 등을 불필요한 '낭비'로 보는 중앙집권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지방정부가 계속 재정난을 겪는 것은 지방정부를 자율적인 조세권을 가질 수 있는 대등한 주체로 보지 않고, 중앙에 종속된 하위 기관으로 간주하여 사업의 집행 권한만 부여하려는 중앙정부의 편협한 시각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중앙에 집중된 정치권력을 분산시키고 시민의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인 알렉산더 토크빌은 기초자치정부의 운영이 시민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자유를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활용하는 지를 가르쳐준다고 했으며, 이를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제도로 보았다. 즉, 지방자치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방자치를 '낭비'로 보는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필수 과정'으로 여기는 시각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의 불완전한 지방자치

한국의 지방자치는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지방의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중단되었다가 1991년 기초와 광역 지방의회선거를 계기로 부활하여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했다. 이처럼 20여 년에 이르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즉,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고 지방의회의 입법권이 제약되어 있으며, 중앙집권적 지방행정체제로 인해 사사건건 중앙정부의 지휘와 감독을 받고 있다.

① 재정: 중앙정부에 대한 높은 재정의존도

▲ 이용환 외. 2013. <한국 지방자치의 활성화 방안>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수입과 지출은 중앙정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먼저 지방정부의 세입은 스스로 조달하는 자체재원(지방세와 세외수입)과 의존재원(교부금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중앙정부가 국세의 일부를 지방에 지원)으로 구성된다. 지자체의 예산 총액에서 자체재원의 비중을 나타내는 '재정자립도'는 2013년 약 51.1%로 지방재정의 절반 정도가 지자체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에 의해 충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림1>에서는 재정자립도가 1992년 69.6%에서 꾸준히 하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낳게 한다.

지방정부의 지출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방정부가 운영비를 제외하고 정책의 집행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2013년 기준으로 125.6조 원인데, 이 중 52%인 65.2조 원이 국고보조사업, 즉 중앙정부가 이미 결정해놓은 사업을 해당 지역에서 집행만 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특히 2005년 이후 복지사업 60여 개가 지방으로 이양되었는데, 이를 집행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제공한 분권교부세는 2006년~2011년 5년간 연평균 8.7% 증가한 반편, 실제 지출은 18% 증가하여 지방재정 파탄의 주범이 되고 있다. 그나마 이 분권교부세조차 내년부터는 폐지될 예정이라 지방정부의 재정난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② 정치: 지방의회의 역할 제약

지방의회의 구성원은 주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다. 그러나 이와 같이 주민 대표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방의회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헌법 제117조 1항과 지방자치법 제22조에서는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되 '법령의 범위 안에서', 특정한 경우에는 '법률의 위임'이라는 제약을 두고 있다. 이런 법적 제약은 지방의회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입법 능력을 위축시킨다.

뿐만 아니라 국가보조금이 들어가는 기관위임사무에 대해서는 지방의회가 의견을 제시할 권리만 가질 뿐 처리 과정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없으며, 조사 및 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영․유아 무상보육 사업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방정부도 일정 부문 재정을 부담하고 있음에도 지방의회가 관여하기 어려운 현 구조는 지방의회의 감독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③ 행정: 중앙과 지방 간 권한의 불평등성

현재 전체 행정과 사무기능의 70%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 역시 지방자치를 가로막는 주된 문제이다. 그간 지방분권이라는 명목으로 중앙행정권한의 지방 이양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지만, 지방 이양에 대한 중앙정부의 소극적․ 비협조적 태도와 행정적․재정적 지원 없는 형식적인 사무 이양으로 인해 실질적인 권한 배분의 정도는 여전히 낮다. 지방자치가 발전한 일본, 미국, 프랑스의 지역자치사무 비중이 각각 60%, 50%, 40%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중앙행정 권한 또한 지방으로 대폭 이양되어 지역밀착형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지방정부의 사무 및 자치조직의 운영에 관해서도 중앙정부의 통제가 심하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하여 중앙정부가 조언, 권고, 지도를 수행할 수 있으며, 위임받아 처리하는 국가사무의 경우 중앙정부의 지도 및 감독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행정기구 및 정원 관리는 행정자치부 장관이 산정한 총액인건비 내에서만 충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지방정부의 사무 및 조직운영조차 중앙정부의 관리 하에 놓임으로써 지역의 정책 수요에 걸 맞는 탄력적 운용이 불가능하다.

▲ 노현송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강서구청장) 등 자치구 구청장들이 지난 8월 12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정부의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복지정책 시행에 따른 재정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는 '지방행정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개선 과제

이같이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제약된 결과, 지방은 중앙과 수직적 상하관계로 묶여 중앙정부의 기능을 대리하는 '일선 기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재정, 정치, 행정 분야에서 지방분권이 이루어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가 '수직적' 이 아닌 '상호 병립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어야 실질적 지방자치가 실현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재정 분야에서는 지방정부의 자율적 조세권을 인정하여 세목의 신설 및 세율 조정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출 측면에서도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이 수반되는 사업의 경우에는, 결정 과정에서 지방정부도 하나의 주체로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지출의 결정 책임과 재정의 부담 주체를 동일하게 설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방 재정의 계획 및 운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

또한 지방의회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여 감시 및 감독이라는 본래의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특히, 의회의 본질적 역할인 자치입법권을 제약하고 있는 헌법 제117조와 지방자치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지방의회의 행정에 대한 의결권과 정보권을 강화시켜야 한다.

행정 분권 또한 필요하다. 중앙행정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과정에서 행정․재정․인력 지원이 결부되어야 실질적인 분권이 될 수 있다. 또한 지방정부의 조직권, 인사권, 재정권은 지방정부에게 맡겨 더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케 해야 한다. 물론 이에 따르는 책임 또한 지방정부가 명백히 부담해야 한다.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에도 중앙의 권한 및 사무를 지방으로 이양하여 지방사무 비율 40%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를 위한 관계 법률인 지방일괄이양법의 단계적 추진, 지방재정 확충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집권적 사고의 틀에 갇혀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즉, 지방조세권의 지방정부 이양과 같이 권한 자체를 지방정부에 부여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또한 대부분이 이미 과거 정권에서부터 추진되었다가 슬그머니 중단된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번 계획에서도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설정하지 않는 한,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지방정부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방간의 격차를 조정하는 중앙의 역할이 방기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자치와 분권을 최대한 허용하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거 지역에 따라 사회서비스의 제공이나 삶의 여건에서 격차가 존재하거나 차별을 받는 일이 없도록 조정하는 일에 더 높은 책임성과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지방의 더 나은 자치와 분권 시대를 제대로 여는 중앙의 태도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민들의 '참여'이다. 그리고 이는 주민들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정부인 지방정부가 실질적인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주민들이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복지국가에서 지방자치가 잘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방자치의 제도적인 토양이 마련되어야만, 그 위에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꽃피울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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