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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러시아 승전 기념행사 참석 가능성 높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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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러시아 승전 기념행사 참석 가능성 높지 않아 [이수훈의 동북아시대] 한반도 사드배치, 한중관계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
연초 정상회담까지 거론됐던 남북관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언급하면서 북·미 관계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동북아의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국방부 존 커비 대변인은 지난 10일 (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한미 간) 지속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꺼져가던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이수훈 경남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한중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대(對)중국 견제의 최첨단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들여오겠다는 뜻"이라며 "중국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이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 이후 의제에도 없던 사드 문제를 꺼냈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이 이 정도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면 한중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며 사드배치가 현실화되면 양국관계를 포함해 동북아 정세가 갈등 양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동북아 국가들이 갈등을 잠시 접어두고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5월 자국에서 열리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해 주변 국가 정상들을 모두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남북 정상 간 만남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교수는 남북 정상이 만나지 않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식민지 피해자로서 이를 극복한 것을 같이 기념하자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명분에도 맞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정책 이행을 위해서도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내세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더불어 3대 대외정책 구상"이라며 "이 정책들은 러시아의 긴밀한 협력과 협조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교수는 김 제1위원장의 행사 참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북·중 관계를 고려했을 때 김 제1위원장의 국제사회 데뷔 무대로 북한이 중국을 제치고 러시아를 택하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북·중 관계는 전통적인 파트너십이 공고하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통해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어서 현재 관계가 악화되긴 했지만 양국의 기본적인 파트너십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면서 북한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먼저 만나는 등 나름의 절충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연구실에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22일(현지시각)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와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그런 정권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수훈 : 미국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붕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데에는 한국에서 나온 담론이 입력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북한의 급변사태론이 유행했다.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쓰러지면서 북한 급변사태론은 한층 확산됐다. 주도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 대통령이든 고위관리든 전문가든 간에 워싱턴에 가서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북한에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는 식으로 인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국가 사이에 파트너십을 형성해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자기들의 생각을 마치 있는 그대로의 현실처럼 포장해서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파트너십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만일 당시 한국에 팽배했던 급변사태론이 미국에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라면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미국을 이간질시키는 행동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간 진정성 있는 양자 대화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저렇게 극단적인 발언을 해버리면 실제 일을 집행하는 장관이나 고위 관리, 참모들이 움직일 수 있는 운신 폭이 대단히 좁아진다. 이러면 대화나 관계개선을 해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

사드배치하면 한중관계 파국으로 치달을 것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중국 국방부장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런데 한미 간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많은 논의를 진행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중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 같은데?

이수훈 : 중국 창완취안(常萬全) 국방부장이 지난 4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 이후 의제에도 없던 사드 문제를 꺼냈다. 이는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작심하고 한 말이라는 것이다.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것에 대해 북한, 중국, 러시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가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대(對)중국 견제의 최첨단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들여오겠다는 뜻이다. 자국을 견제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들여오겠다는 이웃국가에게 어떤 반응을 할지는 뻔한 것 아닌가.

중국이 이 정도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면 한중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끊임없는 어려움에 부딪힐 것이다. 중국의 반발이 심해지고 외교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사드를 철수시킬 수 있을까? 무기체계든 인적자원이든 갖다 놓는 것은 쉬워도, 일단 한 번 배치되면 빼기가 어렵다. 우리가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가더라도 한 번 배치된 사드를 빼자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주한미군을 일부만 철수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 아닌가.

그런데 한미 양국 국방 당국은 사드 배치와 관련해 공식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물밑에서 대단히 많은 논의가 오갔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한국과 이미 논의가 많이 진행돼왔다"고 말할 수 있었겠나.

오히려 이는 국방 당국 간 어느 수준이 됐든 사드 배치에 대해 한미 양국 간 깊은 논의가 비공식적으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한 방식인데 실제 이렇게 진행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해 북핵 관련한 한미일 정보공유양해각서를 체결하려고 시도했을 때도 국방부에서 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기습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나.

군이 문민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오로지 군 논리로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된다. 현재 우리 군의 수뇌부가 이런 상황인 것 같다. 청와대의 컨트롤을 받는 문민통제가 아니라 한미 간 군사 논리에 따라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수훈 : 북한 핵과 미사일을 군사·기술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 자체가 낡은 발상이다. 그렇게 군사적으로만 접근하자면 우리도 핵을 보유하고 그에 상응하는 미사일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국방부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100%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100% 군사적인 억제는 실현 불가능한 미션이다.

기본적으로 국가 안보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위기를 해소하는 측면이 적어도 30% 정도는 존재한다. 첨단무기가 안보를 완벽히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는 정치적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런 상태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놓고 여기에 군사적인 문제가 따라가야지, 군사적으로 완벽한 억제만을 강조하고 평화구조를 만드는 것을 도외시한다면 이는 오히려 안보를 해치는 길이다.

한반도의 위태로운 평화, 가시밭길만 남았다

프레시안 : 오바마는 북한 붕괴를 언급하고 있고 북한은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남북관계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한반도 정세가 갈등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수훈 : 남북관계가 거의 질식 상태다. 연초 분위기로만 보면 지금쯤 이산가족 상봉을 준비하고 그걸 계기로 대화가 이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나빠지는 일들만 남아있는 상황이 됐다.

올해 봄에 예정된 일정을 보면 한반도 정세가 관리나 될까 싶다. 우선 한미연합훈련이 열릴 것이고 북한도 여기에 대한 대응 훈련을 할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적 협력을 강화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북·러 합동 군사훈련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불안하게 유지되던 안정과 평화가 깨질 수 있는 정황은 충분한 셈이다.

▲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11일 '특별성명'을 발표해 남한이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동조하면 '보복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이렇게 갈등국면이 심해지면 결국 북한이 4차 핵실험 카드를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수훈 : 일단 4차 핵실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고 본다. 그런데 전략적 카드로서의 핵실험보다는 과학기술적인 차원에서 감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3차 핵실험에서 이미 소량화와 경량화가 이뤄졌을 것이고, 만약에 다음에 핵실험을 하게 된다면 질적인 발전보다는 한 번 더 추가적인 실험을 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불행한 예측을 또다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도록 6자회담을 가동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대화와 협상을 진행했다면 전혀 다른 국면으로 핵 문제도 진전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 4차 핵실험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복원하고 일단 핵 시계를 멈춘 다음 협상을 통해 불능화로 가는 로드맵을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런데 동북아 국가들이 갈등을 잠시 접어두고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가 5월 자국이 주최하는 2차 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는데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도 초청장을 받았다. 미국이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정부가 참석 여부를 놓고 굉장히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행사에 참석하고 남북이 만나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이수훈 : 동북아에서 만들어진 외교적인 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식민지 피해자로서 이를 극복한 것을 같이 기념하자는 행사인데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명분에도 맞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정책 이행을 위해서도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 대통령이 내세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더불어 3대 대외정책 구상이다. 그런데 이 정책들은 러시아의 긴밀한 협력과 협조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다.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가야 한다는 것은 부차적인 이유다. 동북아의 긴장을 풀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밟기 위해 만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행사를 이러한 소통의 장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지 않나.

다만 남북정상회담을 러시아에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5월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돼서 양측 정상이 러시아에서 잠시 만나 사진 찍고 환담하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회담까지 열리긴 어렵다. 정상회담은 여건 조성도 필요하고 사전 준비 작업도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특히 남북 간 정상회담은 다른 국가와는 달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프레시안 : 국내에서는 박 대통령의 참석 못지않게 김정은 제1위원장의 참석 여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수훈 :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제1위원장이 참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 위원장이 5월 행사에 참석하면, 이것이 외교 데뷔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중국을 제쳐두고 첫 해외 방문지를 러시아로 잡는 것이 북한에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북·중 관계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전통적인 파트너십이 공고하다.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통해 중국을 난처하게 만들어서 현재 관계가 악화되긴 했지만 양국의 기본적인 파트너십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또 북·중 관계 악화는 중국의 '주변의 안정적 관리'라는 전략과도 어긋나기 때문에 양국 관계는 개선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룡해 당 비서가 중국을 방문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중 관계를 이대로 가져가서는 곤란하다는 양측의 합의와 그에 따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을 배제한 채 5월 행사를 참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중국과 만나 절충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 본다. 러시아로 가는 길에 중국을 경유한다든지, 중국에 가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먼저 간단한 회담을 하고 러시아를 가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이런 조율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2만킬로미터 광폭외교, 한국은?

프레시안 : 우크라이나 사태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혼신을 다한 외교로 해결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의 내전으로 미국과 러시아 간 대결 상황이 지속되면 자신들에게 정치적인 손해가 크다는 생각에 이렇게 움직인 것 같다.

이번 메르켈 총리의 행보를 보면서, 그동안 국제정치를 지배해왔던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독일이 독자성을 가져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박 대통령이 평소 메르켈 총리를 존경한다는데 이런 것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이수훈 : 과거에는 미국의 영향력과 주도력 아래 다뤄졌던 이슈들에 공백이 생기고, 이를 유럽연합(EU)이 메꿔주는 상황이다. 여기에 선두 국가가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주요 플레이어들이 바뀌는 국면이다.

▲ 지난 11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벨라루스 민스크에 모인 4국 정상.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메르켈 총리는 이 회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총 2만㎞ 거리를 비행하며 종횡무진 움직였다. ⓒAP=연합뉴스

이란 핵 협상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가 북·미 양자회담에서 6자회담으로 넘어갔듯이, 이란 핵 협상도 과거에는 미국과 이란 간 대립으로만 진행돼오다가 독일과 러시아 등이 들어가면서 중재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프레시안 : 최근 독일 시사 주간지인 <슈피겔>을 보니 독일이 경제적 강국이고 이에 맞춘 외교적, 정치적 역량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더라. 동북아에서는 한국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국가이고,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동북아 내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이수훈 : 어떻게 보면 북한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고, 또 우리가 자청해서 발목이 잡히면서 도약을 안 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독일이 현재 구현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접근과 구체적 액션은 시대에 맞는 선진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독일이 분단의 질곡을 벗어나서 여러 고통과 시행착오를 25년 정도 겪고 난 뒤에 저런 행보를 보이는 건데, 우리도 분단 문제만 해결하면 독일과 비슷하게 갈 수 있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20세기적 사고와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실용적 사고를 하고 실리적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너무나 이념적인 판단에 매몰돼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대로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반이 이념에 매몰돼있어서, 남북관계의 경색이 한반도 장래에 좋지 않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메르켈 총리처럼 절박하게 뛸 텐데 그런 것이 없으니까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아닐까? 이명박 정부 이래 남북관계 개선과 이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국을 뛰어넘어 뭔가를 해보겠다는 인식이 없어 보인다.

이수훈 : 남북관계를 너무 망가뜨려서 복원 불능의 상황으로 가고 있다. 남북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 2012년 대선 때 화두가 됐는데 당선 이후의 박근혜 정부 행보는 이명박 정부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남북관계는 더 악화되고 있고 북핵문제도 해결 수순을 밟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남북 모두가 피해를 입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적대하는 두 세력이 그런 관계를 해소하는 데에는 교섭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 붕괴 발언과 맞물려서 북한을 계속 압박하고 제재하고 봉쇄해서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흐름도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해결 방식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북한 뒤에 중국이 있고 북한의 지형 자체도 일종의 요새와 같아서 무력으로 없애는 것은 쉬운 방법이 아니다.

프레시안 : 결국엔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북한 위협론을 빌미로 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일본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편으로는 납치자 석방 문제로 북한과 물꼬를 트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북일 간 납치자 문제가 해결돼서 수교 협상까지 진전된다면 6자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이수훈 :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납치자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한데, 실제 특위를 만들고 보고서를 내고 일본이 평가하는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진 않은 것 같다. 일본 내에서의 여론도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고리로 북·일 관계가 좋아지고 이를 계기로 6자회담 동력이 생겨야 '북핵 문제가 해결되는가보다'라는 인식이 일본 사람들 사이에 퍼질 수 있다. 그래야 일본 내의 우호적 환경이 만들어지는 건데,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긴 어렵다.

또 아베 총리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지난해 아베 총리가 납치자 문제를 강하게 추진했을 때는 내부에서 지지를 얻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움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선거를 통해 아베 총리가 다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이런 열의가 떨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남북관계를 풀면서 6자회담의 동력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동북아의 얼어붙은 정세가 풀리기는 힘들다. 어느 누구도 주도하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나설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

물론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이 우리 정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대인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현실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북한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남북관계에서 모든 것을 상호주의적인 접근으로만 풀어가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북한에 대한 개입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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