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에 대통령 기록물을 불법 열람하면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집필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이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2013년 2월24일 사저에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27일 밝혔다. 국가기록원은 "2010년 1월1일~2015년 2월23일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요구에 따라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10조의 3에 의거하여 온라인 열람 장비 등을 설치한 현황을 공개하라"는 센터의 요구에 "설치일 2013년 2월24일, 요청한 대통령명 이명박 대통령, 설치장소 사저"라고 답변했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날 사저에 열람 장비를 설치했다는 얘기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온라인 열람은 대통령 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당시 1000만여 건의 기록 가운데 비밀기록은 남기지 않았고, 24만여 건의 지정기록물을 남겼다. 지정기록물은 대통령이 퇴임 시점에 자신과 대리인 외에는 15~30년간 볼 수 없도록 한 것으로, 국회의원 재적 인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나 고등법원장의 열람 발부가 있을 때에만 타인이 볼 수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국가기록원이 이 전 대통령 측의 대통령기록 열람과 관련한 정황을 설명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 열람시설을 통해 지정기록 등이 함께 제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비공개 대상인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보고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한편, 회고록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언론을 통해 "추리하는 것에까지 다 답할 이유는 없지 않으냐"고 답변을 회피했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명박 정부 초기 불거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물 유출 사건과 유사하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직후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기록물을 고향인 봉하마을로 불법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노 전 대통령 측은 퇴임 전 이명박 정부와 충분히 상의 후 사본을 가져온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자료 삭제 의혹을 제기했고, 국가기록원도 외부의 무단 접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원상반환을 요구했다. 당시 국가기록원은 노 전 대통령 비서진 10명을, 뉴라이트전국연합과 국민의병단은 직접 노 전 대통령을 고발했다. 이같은 고발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중단됐다.
야당은 당장 노 전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국가기록원은 물론이고 사법당국이 나서서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불법열람'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희경 새정치민주연합 부대변인은 28일 논평을 내고 "앞서 <대통령의 시간>은 국익을 저해하거나 국가안보에 직결된 내용을 공개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청와대도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며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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