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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조금의 기대마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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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조금의 기대마저 무너졌다"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朴 정부, 여전한 '소통 부재'

T. S. 엘리엇은 대서사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뿌리를 일깨운다"고 노래했다. 4월이 되자 메마른 한반도에도 며칠 째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리 집 마당에 심은 몇 그루의 라일락 나무 가지에도 새순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향긋한 내음을 풍기며 탐스런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사람들은 새싹이 돋고 꽃 피는 봄을 기다리며 그 혹독한 겨울을 참고 견뎌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그렇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여기는 것은 시인만이 아닐 터이다. 1년 전 우리는 잔인함의 끝을 보았다. 죄 없는 영혼들이 허망하게 진도 앞 바다에서 스러져갔다. 4월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잔인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4월 그 사건 이후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져야 한다고 외쳤던 목소리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메아리로 돌아왔다.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지 못하는 박근혜 정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1년 내내 안으로 안으로만 향하던 울분이 다시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저 큰 교통사고일 뿐이라는 생각에 가득 찬 사람들이 유가족들을 또 다시 분노케 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걸었던 조금의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

지난 달 2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모든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만든 간접적 원인을 제공했으며 사고 후 구조 과정에서 무능함의 극치를 보인 당사자인 정부 관료들이 사실상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를 좌지우지하도록 만든 법령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가진 이라면 분노하게 돼있다.

▲ 3월 30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했다. ⓒ프레시안(서어리)


정부가 고시한 시행령을 보면 인원 축소는 논외로 하더라도 세월호 특별위원회 사무처를 사실상 공무원들이 쥐락펴락하며 진상규명부터 안전사회 건설, 피해자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도맡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피의자 신분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수사 책임자가 되겠다는 격이다. 이런 시행령을 만들어 사회를 시끄럽게 만든 뒤 시간을 끌어보자는 심산이 아니라면 그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시행령이 그대로 통과되면 진상규명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자는 주장은 사실상 물거품이 돼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는 진상규명을 할 뜻도, 안전사회를 만들 의지도 없다는 방증이다.

유가족들의 반발뿐만 아니라 사회각계 각층에서 반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이 다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고 안전사회를 가꾸어나가기 위한 소통의 광장으로 변할 것이다. 1년 전에 이어 대한민국이 다시 세월호의 격랑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통의 정신과 정의를 완전 무시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시행령 내용과 정부가 이를 고시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소통의 정의(Definition)와 그 정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모든 법령이 다 그렇겠지만 세월호 특별법과 같은 것은 특히 이해관계자들과 처음부터 머리를 맞대고 법령에 담길 내용을 논의해야 한다.

시행령에는 소통의 정의와 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 문구가 없다. 소통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이 시행령을 내놓은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 같다. 책상물림으로 공무원들의 처지에서 만든 시행령임이 분명하다.

이 시행령은 문구나 내용 일부를 고쳐서 해결할 성격이 전혀 아니다. 하루빨리 백지화하고 제대로 된 시행령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시행령은 대통령령이니까 공무원들, 즉 박근혜 정부가 책임지고 만든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시행령 실무 작업만 공무원들이 하고 그 안에 담을 내용은 세월호 유가족 대표와 각계각층 대표들이 참여해 만드는 것이 맞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대한민국의 문제다. 그것이 소통의 정신이다.

이와 함께 시행령을 이렇게 졸속으로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내용이나 절차의 잘못에 대해 책임 있는 정부 최고 당사자가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여야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유가족들과 국민 앞에 약속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위험 소통의 중요 원칙 가운데 하나다.

이번 시행령 논란은 정부가 둔 명백한 '덜컥 수'다. 법은 국회가 만들지만 시행령은 대통령(정부)이 만든다는 오만함이 짙게 배여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좌우를 두루 살피고 전후를 멀리 보지 못한 채 눈가리개를 한, 출발선의 경주마처럼 내달린 것이 아닌가싶다.

안전혁신마스트플랜 108과제 가운데 소통 관련 전혀 없어

정부가 위험 또는 위기와 관련해 소통의 중요성을 얼마나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는 최근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안전혁신마스터플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위험·위기소통에서 말하는 소통은 일이 터지고 난 뒤 이해관계자나 공중과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결코 아니다. 소통은 사전예방과 위험위기 조기탐지 및 해소, 그리고 위기 발생 뒤 효과적 수습 모두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위험·위기관리의 핵이다.

안전혁신마스트플랜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각종 재난과 그 대처 방식에 대해 '재난·안전컨트롤 타워 기능 미약', '현장의 재난 대응 역량 및 표준 미흡', '생활 속 안전 문화 미정착', '재난 안전 인프라 취약' 등으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부과제를 30개 유형별로 108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위험·위기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언급이나 과제는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화여대 김영욱 교수는 <위험, 위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란 책에서 "현대 위험사회에서 위험·위기관리의 핵심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느냐"이라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소통이 빠진 위기·재난 관리는 팥소가 빠진 찐빵이다. 무려 108개나 되는 세부과제가 108번의 오랜 '번뇌'와 고민 끝에 만든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른 시일 안에 커뮤니케이션 관련 내용을 보완해 진정한 마스트플랜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위험이나 재난 그 어떤 것도 미리 예방할 수 있고 조기에 위험을 드러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그 어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부든, 국가든, 사회든 소통을 홀대하면 그만큼 돌려받게 된다.

4월을 맞아 이 글과 함께 당시 써두었던 자작시 '마지막 바람'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싶다.

"한 마리 솔개 되어/ 바람이 된 아이들과 함께/ 저 푸른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리라/ 아이들아! 너희들은 우리를 용서치 마라/ 우리도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리라/ 생명이 먼저인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 그날이 오면 용서를 구하리라/ 그날이 오면 나는 날갯짓을 멈추리라/ 마침내 마지막 바람 되어/ 한라에서 백두까지/ 저 푸른 들판 위 마음껏 내달리리라/ 마음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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