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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거사 역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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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거사 역공에 나섰다 [정욱식 칼럼] 일본 "양국 모두 책임 있으니 한국도 노력해 달라"

일본이 과거사 역공에 나섰다. 4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회의에서 말이다. 한국의 조태용 외교부 차관, 미국의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 일본의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이 참석한 이 회의는 사상 최초로 열린 것이다. 이 회의 직후에는 한미일 3자 국방회의가 열렸다. 그만큼 한미일 삼각동맹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교차관 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이키 차관은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50년간의 역사를 주시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50년간의 역사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해서는 양국 모두의 책임이 있다"며 일본도 노력할 테니, "한국도 마찬가지로 노력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조태용(오른쪽) 외교부 제1차관과 토니 블링컨(가운데) 미 국무부 부장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16일 미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발언의 취지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 역사를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한일협정 이후 50년간의 역사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박정희 정권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데에는 일본이 한일협정에 따라 지불한 배상금과 차관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의 전후 한국경제발전 기여론'이다.

일본 내에서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권은 이를 공식화하려고 한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을 문제 삼자, '당신들 경제발전은 일본 덕분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옆자리에 나란히 서 있었던 조태용 차관은 이에 대해 이렇다 할 반박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환경 조성의 필요성에 동의했다"며 투 트랙 접근을 강조했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고 원칙적인 입장을 유지"하겠지만, 한일 양국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에 있어서는 "협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일관계 중재자로 나선 블링큰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직면한 도전과 기회에 대한 공유된 관점은 현재 존재하는 차이를 압도하고 있다"며 이번 회의에서 "이 점이 매우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블링큰이 "중국이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에서 취하고 있는 행동"도 3자 회의에서 논의했다고 밝혔고, 한국과 일본 차관들도 이를 확인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일 3자 관계가 북핵 위협 대처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한중관계에 또 하나의 악재가 발생할 우려가 그만큼 커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박근혜 정부의 대외 정책이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한일관계만 놓고 봐도 그렇다. 정부는 역사 문제에 있어서 "일관되고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에 유의미한 변화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은 '전후 한국경제 기여론'으로 역공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전범국이었던 일본이 전후에 한국 등 주변국들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결코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누린 대표적인 국가이다. 또한 한일협정 체결 이후 50년간 한국을 상대로 한 무역흑자가 5천억 달러(약 500조 원)를 넘어설 정도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갔다. 일본의 한국 경제성장 기여론이 적반하장에 가까운 궤변이라는 반론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는 데에 박근혜 정부도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사실상 용인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일 간에도 집단적 자위권을 공유하고 있는 현상마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군사작전 하듯이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은 그 시발점이다. 이 약정을 통해 미국은 3자 간 군사정보 공유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려고 하고, 일본은 한일군사협력에 대한 한국의 반감을 무력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웃과 친해지기 위해 또 다른 이웃을 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한미일의 논의 양상을 보면, 북한을 명시적인 적으로,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한국 외교가 균형과 비전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우려가 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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