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조희연 교육감,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조희연 교육감,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오!" [기자의 눈] 민주주의는 학습의 과정이다
아이를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 보내는 직장 동료의 전언이다. 지난 주말 같은 학교 학부모들을 만났는데 하나 같이 수심이 가득하더란다.

"조희연 교육감은 어떻게 될까요?"

기자로 일하는 학부모를 만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묻는 이 질문에 동료는 새삼 놀랐다. 다시 한 번 좌초될 위기에 처한 서울시 교육 개혁에 얼마나 많은 학부모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시뿐이겠는가? 서울시가 우리나라 교육 행정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놓고 보면 지금 우리나라 교육 개혁이 위기에 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이 조희연 교육감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며 시작된 이번 일은 '시험'으로 뽑힌 '사법 권력'이 '선거'로 뽑힌 '선출 권력'을 어떻게 짓밟을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조 교육감이 선거법상의 '허위 사실 공표'를 놓고서 위헌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은 실로 적절한 대응이었다. (☞관련 기사 : 노무현 죽이고 조희연 물어뜯은 검찰의 횡포)

그런데 이런 조희연 교육감이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조 교육감은 27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법률을 잘 모르시는 비전문가 배심원들이 굉장히 미시적인 법률 판단을 하셨다." "국민 참여 재판은 사법 민주화의 성과로 도입했지만 이를 통해 바꾸려고 한 사법의 부정한 측면들을 바로 잡지 못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아무리 마음이 황망하고 급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는 그만!

조희연 교육감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국민 참여 재판은 사법 민주화의 성과로 도입되었다. 판사 몇몇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판결을 함부로 내리는 것의 병폐를 막고자,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갖춘 평범한 시민이 법정에 나서도록 한 것이다.

시쳇말로 (넓게 보면) 진보 진영이 덕도 봤다.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놓고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나는 꼼수다> 멤버 김어준 씨, 주진우 기자도 국민 참여 재판에서 배심원 평결에 따라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도 역시 국민 참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역시 선거밥상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이 국민 참여 재판을 신청한 것도 바로 이런 선례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배심원들이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해서 그들을 놓고서 "법률을 잘 모르시는 비전문가들"이라고 딱지를 붙이다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냐'는 빈정거림을 듣기 딱 알맞은 행태 아닌가?

민주주의는 틀릴 수도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평생 민주화를 위해 싸워 왔고 또 민주주의를 집요하게 연구해온 학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더욱더 아쉽다.

조 교육감이 아주 잘 알겠지만, 민주주의가 항상 최선의 판단을 낳지는 않는다. 플라톤부터 존 스튜어트 밀까지 서양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들이 민주주의가 꿈꾸는 '인민에 의한 통치'를 그토록 불신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인민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까지도 포용하는 태도다.

당장 조희연 교육감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로 마음먹은 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죄가 왜 문제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와 두 가지 면에서 배치된다.

첫째, 선거 과정에서 숱하게 제기되는 온갖 의혹들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서 누구에게 표를 줄지는 온전히 시민의 몫이다. 그 의혹들 가운데는 참으로 적절한 것도 있을 테고,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도 있을 것이다. 시민들이 그런 의혹의 숲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가리라는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둘째, 물론 어떤 시민은 그런 의혹의 숲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공익을 위해서 당선되지 말았어야 할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민주주의가 낳은 최악의 결과까지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시민은 다음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죄를 통해서, 전체 시민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일개 판사, 검사가 이런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학습 과정을 시민으로부터 빼앗는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이 악법을 시민의 선거로 뽑힌 교육감,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같은 선출 권력을 끌어내리는 무기로도 활용한다. 이것이 바로 허위 사실 유포 죄가 폐지되어야 할 이유다.

(이 악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하는지는 앞서 다른 기사를 통해서 짚었다. (☞관련 기사 : 검찰은 왜 조희연을 죽이려 하는가?))

민주주의는 학습의 과정이다

똑같은 논리가 국민 참여 재판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울분에 차서 말했듯이, 국민 참여 재판의 배심원 시민이 항상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또 애초 법 자체가 잘못 설계된 탓에 그런 국민 참여 재판으로 기존의 사법 권력을 제어하는 데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국민 참여 재판은 조희연 교육감처럼 한국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사법 분야까지 민주화되길 바라는 시민의 염원이 만든 제도다. 당장 입에 쓰다고 해서 이런 소중한 제도를 뱉는 것은 민주화를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온 조 교육감의 경력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는 시민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국민 참여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과 또 그들의 결정에 동조한 시민이 이번 판결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는 것, 그리고 좀 더 성찰적인 시민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 민주주의가 한 차원 더 성숙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나는 감히 말한다.

"조희연 교육감,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니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