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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온 아이, 꼬리표 떼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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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학 온 아이, 꼬리표 떼어주기 [민들레] 교육·③ 관심과 사랑

#. 장면 하나

선생님 한 분이 "이젠 선생 못해먹겠다!" 소리를 지르며 교장실로 내려옵니다. "저놈은 사람도 아니다"라면서 "퇴학시켜야 한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평소 차분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 선생님은 생활지도 담당으로, 1년 내내 이런 일을 반복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생활지도부에 아이들을 던져버리듯 놓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립니다. 김 선생님은 "내년에는 저 이거 못합니다. 정말 이 노릇 못하겠습니다"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하루하루를 운에 맡긴 채 살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올해 다른 업무를 하며 무척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아니라고 했던 아이는 지난해 전학을 온 학생입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다가 여 선생님과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절도·흡연·교권 침해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관찰해보니, 대부분 전학 온 아이들이 여기서도 사고를 치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도난 사건을 조사해도 전학 온 아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아이들은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학교 규칙을 반복적으로 어기고 있었습니다.

습관이란 것이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삶의 가장 큰 기적은 습관을 고치는 것이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한번 몸에 밴 나쁜 습관은 알코올 중독의 첫 번째 현상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하지 못한다'와 같은 경우인 것 같습니다.

▲ KBS 2TV 드라마 <후아유-학교2015>는 지난달 27일 첫 방송에서 학교 왕따 문제를 다뤘다. ⓒKBS


#. 장면 둘


갑자기 복도가 떠들썩합니다. 전학 담당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소리로 보아 영락없는 싸움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이유로 전학을 왔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XX, XX!" 욕을 하면서 왜 그딴 것을 묻는지 투덜거리며 나가는 것을 선생님이 듣고 이리 오라고 하니, "때려죽인다"며 소리를 지르고 소화기를 발로 차며 난동을 피우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커지는 소리에 놀라, 나가서 이리저리 뛰는 아이의 허리춤을 붙들었습니다.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고 악쓰는 것을 옆에서 보던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이러지 말라"고 매달려보지만, 아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소리를 지릅니다. 분노의 표출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아이의 마음속에 큰 분노를 만들었을까요?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저 분노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도저히 막을 수도 없고, 계속 이렇게 난동을 부리면 뭔가 큰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더 이상 잡고 있는 것도 겁이 나 직원을 시켜 경찰을 불렀습니다. 10여 분 난동을 부리고 나서 좀 잠잠해진 다음 상담실로 이동했습니다. 물을 줬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습니다. 허리춤을 잡았던 손이 저리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두려움을 애써 참으며 아이에게 "그래. 지금 그렇게 하고 나니 뭔가 해결된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소리로 "아니"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엄마는 계속해서 흐느껴 울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부딪혀 어떻게 할 수 없다며, 그렇지만 학교마다 안 받아주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웁니다.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분노성 폭력 앞에 교육, 선생님 등의 단어는 정말 무색해집니다. 무력감까지 들게 되지요. 창문 너머로 쳐다보던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향합니다. 선생님들의 뭐라 말할 수 없는 눈동자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이가 진정되고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 경찰이 오고 있으니, 그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이미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경고'라도 해야 된다며 아이와 엄마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교장실로 들어왔습니다. 얼마 후 담당선생님으로부터 아이는 본래 다니던 학교에 돌아가는 것도 포기하고 자퇴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습니다.

2012년에만 우리 학교에는 78명이 전학을 왔습니다. 자퇴생만도 50명이 넘었습니다. 요즘 일반계 고등학교의 현실입니다. 학교폭력, 흡연 등 문제가 발생하면 퇴학 전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권합니다. 아이의 환경을 바꿔주는 교육적 목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문제성 전학은 다른 학교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전학을 다니는 아이에 대해 대부분 색안경을 쓰고 봅니다. 한 아이가 전학 오면 그 반은 얼마 안 가서 뒤숭숭해집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장악하는 능력이 조금 처지거나 반대로 선생님 말투에 공격적 성향이 있게 되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집니다. 아이가 결석을 다시 하게 되거나 적응을 하지 못하면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담임이 아이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그렇다며 학교와 선생님을 공격합니다. 통화를 하다 보면,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우리 애가 좀 그래도 교육자는 그러면 안 된다, 교육청에 알리겠다, 두고 봐라!"하며 항의를 합니다. 혹시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상황은 참 묘하게 변질됩니다.

한 명 한 명 전학 올 때마다 학교 전체가 긴장을 하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서 참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전입생들은 어느새 교내에서 악성 바이러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미치는 영향은 학교 전체에 부정적 감정을 돌게 하고, 다른 업무까지 마비시키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지도하는 것을 포기하고, 교직에 대한 회의감마저 갖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많은 아이들이 겪는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이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문제아인 것 같은 착시 현상도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그날 이후로 전학 오는 아이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걷고 또 걷고, 명상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래. 전학 온 아이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어주자!' 번쩍 떠오른 이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학생이 전학을 오려면 담당교사와 교감을 거쳐 마지막으로 교장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전학 담당자는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저에게 주지요. 대부분 무단결석, 지각 등이 많습니다. 아이와 부모는 마치 죄인처럼 주눅이 든 채 교장실에 들어옵니다. 그때, 밝은 목소리로 두 사람을 맞이하며 내 옆에는 아이를 앉히고 그 옆에 부모님을 앉게 합니다. 되도록이면 생활기록부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학교를 들어오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물어봅니다. 우리 학교는 인조 잔디구장이 있어 아이들이 첫 이미지가 좋은 모양입니다. 운동장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 다음 지금 기분을 물어봅니다. 긴장했던 아이와 엄마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옆에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언제 가장 예뻤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어릴 때 가장 잘했던 것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태권도 등 잘했던 것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잘했던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엄마도 마음속으로 우리 아이를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입니다.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집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단결석 등 이전 학교의 이야기를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마음을 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이번 전학이 아이에게 새로운 탄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습관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그것으로부터 이제 벗어나 보자.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오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동안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면서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종이 석 장에 써오라고 합니다. "선생님에게 보여 주는 게 목적이 아니고, 그냥 자신과 대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쓰면 된다, 하루도 좋고 이틀도 좋으니 작성이 끝나면 연락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화번호가 있는 제 명함을 줍니다.

"편지를 읽고 내가 감동 받지 않으면 전학을 올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려우면서도 쉽다. 그냥 네 이야기를 쓰면 된다"고 다시 한번 강조를 합니다. 부모님도 같이 쓰게 하는데, 서로 편지를 보여주지 않도록 유의사항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젠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서 독립을 해보자"는 말도 해 줍니다. 아이에게는 이번 기회에 자신과의 데이트를 해보라고 하며, 영화를 봐도 좋고, 평소 먹고 싶었던 것을 혼자 사 먹어도 보고, 산책을 많이 하는 게 좋다고 약간의 방법을 알려줍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까지 전입생 대부분의 아이들이 정말 감동스러울 정도로 글을 잘 써서 왔습니다. 편지를 보면서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연이 거의 없었습니다. 편지를 읽다 보면 아이와 엄마, 저 셋이서 같이 울고 있습니다.

잠시 후, 엄마는 잠깐 밖에 나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와 역할극을 합니다. 전입생을 관찰해보니 처음 교실에 들어간 5분이 참 중요한 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전학을 오면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별 뜻 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아이들이 자극받고 상처받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이는 것입니다. 일단 아이가 자기 자신을 제어할 줄 아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할극을 하면서 우선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연습을 하고, 분노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먼저 제가 가상의 담임이 되어 최대한 아이를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첫 대면에 거친 말을 해도 아이가 담담하게 "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연습을 하게 합니다. "선생님이 습관적으로 뱉는 말 한마디에 휘둘려서 네 인생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건 바보스러운 짓 아니냐"는 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반대로 제가 학생이 되고 아이가 담임선생이 돼 저한테 말을 함부로 하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처음에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교장인 저한테 "야. 임마, 그러면 되느냐! 너는 집에서 어떻게 배웠니!"라고 말하면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웃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그렇게 한 다음에 아이를 교실에 들어가게 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보게 하는 편지와 5분 정도의 역할 연습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격성을 행동화하지 않는 기적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와의 데이트를 거친 전입생들은 다시 사고를 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폭력으로 남을 괴롭혀 전학 온 범이는 정말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아이입니다. 학교는 다녀야겠고, 편지는 두 줄 이상 쓸 수 없고, 그래서 무작정 예전에 다녔던 초등학교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마침 그날 학교에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어느 학교 다니느냐?'고, 그 물음에 순간 너무나 당황스럽고 창피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칭찬을 받았던 아이였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사주는 따뜻한 점심을 먹고 이번엔 중학교에 갔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싸웠던 계단, 처음 담배 피우던 곳 등을 돌아보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비로소 '내가 잘못한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편지에 빽빽하게 써서 왔습니다. 그런 내용과 더불어 가슴 깊이 숨겨져 있던 가정 사정과 자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제 눈물을 보고 당황스러웠는지 옆에 있던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50일이 넘는 무단결석으로 전학 온 미애가 등굣길에 하이파이브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저, 배 아파서 똥 싸고 오느라 딱 한 번밖에 지각 안 했어요" 하며 웃으면서 교실로 향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오전과 오후 기온 차가 크다며 난방을 해달라는 전학생 한수의 문자메시지가 저를 웃게 합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릴 적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리에 난 상처는 가는 곳마다 마찰을 일으키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상처 자리에 작은 사랑과 관심으로 고운 새 살이 돋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입생이 왔다는 담당선생님 말씀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합니다. '전학 온 아이들 꼬리표 떼어주기'는 아이들마다 맞춤식으로 변화되어 오늘도 진화 중입니다.

(필자가 2012년 중화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경험을 옮긴 글입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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