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쫓다보면 종종 나무 사이에 갇히곤 합니다. 진실을 구성하는 조각 사실들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미로에 갇혀 큰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국정원 해킹사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살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번쯤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두 눈 모두 감고서 꼬리만 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숨진 임모 과장이 수행했다는 해킹 공작의 전모를 파악하고,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를 알아야만 사건의 몸통에 다가갈 수 있다는 판단은 물론 타당합니다. 그래서 그가 삭제했다는 파일의 내용과 그가 죽기 직전에 국정원 안에서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건 긴요합니다. 하지만 이건 'only'가 아닙니다. 그것 말고도 사건의 몸통에 다가가기 위해 밟아야 하는 경로, 확보해야 하는 사실은 더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임 과장은 사건의 몸통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이 민간인 사찰 의혹이라고 전제하면 그렇습니다. 사찰 대상을 선정하고 사찰을 지시한 사람이 당연히 몸통일 텐데 임 과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국정원 스스로 밝혔습니다. 17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일 뿐"이라고 했고, 19일 발표한 '직원 일동 성명'에서 "2012년도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실무판단하고 주도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이라고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밝힌 사람도 있습니다. 국정원에서 20년 넘게 일했던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인데요. 그는 19일 임 과장의 지위와 역할을 설명하면서 "(해킹) 대상을 선정해서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는 등의 일을 하는 기술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들에 따르면 임 과장은 '수동적인 기술자'였을 뿐입니다. '능동적인 기획자' 또는 '주도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철우 의원의 표현을 빌리면 '대상을 선정'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해킹 대상을 주도적으로 선정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전혀 모릅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작금의 현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임 과장이라는 꼬리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꼬리조차 앙상합니다. 몸통으로 올라가는 비상계단을 찾으려 꼬리에 현미경을 들이대지만 그 꼬리는 텅 비어 있습니다. 국정원이 꼬리와 몸통 사이에 쳐놓은 육중한 바리케이드 때문인데요. 국정원은 '주장'만 내놓을 뿐 '사실'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7월 23일 <시사통> '이슈독털'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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