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위키리크스> 발행인 줄리언 어산지(44)는 6월말부터 러시아, 칠레, 독일 언론 등과 인터뷰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정보를 이용해 세계에 대한 정치경제적 통제를 유지하려 한다며 이를 첩보제국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전 세계 외교전문가 17명과 협업으로 그동안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문서에 담긴 미 대외정책의 맥락을 파헤친 <위키리크스 파일: 미 제국이 보는 세계>라는 책을 오는 8월 펴낼 예정입니다.
2010년 미국 중동전쟁의 추악한 실상 폭로
잘 알려진 것처럼 <위키리크스>는 지난 2006년 호주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해커 출신인 어산지 등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내부고발자에 의한 각국 정부의 극비 정보 폭로가 주목적이었습니다. 2010년 <위키리크스>는 전 세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미국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중동전쟁의 추악한 실상이 담긴 미 국무부의 극비 문서들이 미 육군 브래들리 매닝 일병에 의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이 폭로로 매닝 일병은 35년형을 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그는 복역 중 성전환을 했고 이름도 첼시 매닝으로 바꾸었습니다). 한편 어산지는 미국 등 서방정부로부터 '범죄자'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으며 각종 법정소송과 형사 소추의 대상이 되는 등 '공적 1호'로 떠올랐습니다. 반면 2010년 <르몽드>와 <타임>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등 대중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미국 등 거대 정치권력의 전쟁 음모에 맞선 '평화의 사도'이자 '위대한 폭로자'라는 것이었죠(2013년 미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도 <위키리크스>의 활동에서 자극을 받은 게 분명합니다. 그는 현재 모스크바에 망명 중입니다). 이처럼 어산지는 서방 정부와 일반 대중들로부터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폭로 이후 어산지는 미국, 호주 등 서방 정부들의 집요한 추적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2012년 스웨덴 정부에 의해 성추행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영국 런던으로 도피했고, 이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3년째 망명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20만 파운드의 보석금을 냈고 600일째 전자발찌를 차고 있습니다). 2010년의 세계적 특종과 뒤이은 어산지의 도피 생활로 <위키리크스>의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는 2011년과 12년 각 2건이었고 2013년에도 4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에는 9건, 그리고 올해 들어서는 14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특히 5월 이후에만 12건으로 최근 들어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위키리크스>는 미 국가안보국(NSA)이 호세 지우마 대통령을 비롯한 브라질 고위 관리 29명에 대해 감청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 프랑스의 시라크, 사르코지, 올랑드 등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감청활동,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고위 공직자 56명과 유력 언론 <슈피겔>에 대한 감청활동 등을 폭로했습니다. 또한 사우디 정부가 자국에 유리한 언론 보도를 위해 각국의 언론기관을 매수하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습니다. 또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TPP, TTIP와 국제서비스교역협정(TISA)의 주요 내용들도 공개했습니다. 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반 시민의 삶을 희생시키는 독소조항들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 9일 이탈리아 '해킹 팀'에 관한 보도로 한국을 포함해 35개국에서 내국인에 대한 사찰활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미국, 세계 첩보 활동 비용의 60% 차지
이와 함께 어산지는 세계 주요 언론들과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지난 6월 28일 그는 러시아의 <로시야-1> 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전 세계 첩보 활동 비용의 60%를 사용하는 첩보 초강대국(surveillance superpower)"이라면서 그 주요 목적은 '반테러'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지배라는 "정치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첩보 활동 비용의 60%를 사용한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 군사비의 절반 가까이(45-48%)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을 군사대국이라고 일컫고, 군사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군사적 일방주의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미국 첩보 비용의 비중이 군사비 비중보다 높다는 것은 미국의 세계 경영에서 군사력보다 정보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미국은 적과 동맹국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대한 철저한 사찰과 감시를통해 세계를 통제하는 대형(Big Brother)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첩보제국주의라고 할 만합니다. 나아가 이제는 군사주권보다 정보주권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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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반테러 작전을 위해 대대적인 사찰과 감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CIA 내부고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반테러는 사찰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한 빌미일 뿐"이라면서 사찰의 주요 목적은 "(타국의) 경제 정보 수집, (국내에 대한) 사회적 통제, 그리고 외교적 조작"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어산지는 지난 8일 칠레 언론 <엘 모스트라도르>와의 인터뷰에서 남미 지역에서 미국을 통해 세계로 전달되는 전자정보 중 98%가 NSA에 감청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유라시아 경제통합 결사 저지
이어 지난 20일 그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장문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위키리크스>는 미국이 추진 중인 TPP, TTIP, TISA의 주요 내용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 세 협정은 서유럽을 미국의 세력권 안에 경제적, 법적으로 묶어두기 위한 책략입니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과 러시아, 중국 등의 경제적 통합이 유라시아의 장기적 평화를 위한 핵심 전제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사코 막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는 이 세 협정의 구체적 내용을 미 의원들에게도 밝히지 않은 채 협정 체결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미국의 통제를 거부하는 BRICS 국가들은 이 협정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TPP 연구자들도 <위키리크스>의 보도 내용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산지는 이 인터뷰에서 미국이 어떻게 감청 정보를 이용해 유라시아의 경제협력을 가로막는지를 소개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메르켈 총리는 BRICS 국가들로 구성된 구제금융 펀드를 조성하려 했으나 미국이 이 구상을 초기 단계에 알아내 저지했다는 것입니다. 어산지는 그 구체적 내막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일 독일이 국제금융기금(IMF)에서 중국의 의결 지분을 늘리자는 제안을 할 계획이라면 이 역시 초기 단계에 봉쇄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국과 유럽의 경제협력은 미국의 세계 지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슈피겔>은 왜 어산지를 인터뷰 했나?
지난 2013년 스노든의 폭로로 독일, 프랑스 등 미 동맹국 최고지도자들에 대한 NSA의 감청 실태가 드러났지만 이들 정부의 대응은 미지근하기만 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법적 대응을 포기했습니다. 의회에서 녹색당 주도로 진상조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성과는 미미합니다. 영국 등 미 우방국 언론들도 어산지와의 인터뷰는 거의 없었습니다. <슈피겔>이 이례적으로 어산지와의 인터뷰에 나선 것은 나름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슈피겔>이 NSA의 감청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언론자유가 외국 정보기관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됐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지난 2011년 미 CIA의 베를린 지국장이 메르켈 총리실의 주요 간부를 은밀히 만나 미국의 대테러정보가 총리실을 통해 <슈피겔>에 전달되고 있다는 불만을 전했고, 이에 따라 해당 관리가 다른 부서로 전출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슈피겔>은 이러한 사태가 미 정보기관의 감청에 의한 것이라며 독일 정부의 강력 대응을 요구하고 있지만, 메르켈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산지는 독일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대해 첫째 독일이 항의해 봤자 미국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둘째 미 정보기관이 전해주는 타국의 정보가 독일에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이 미국의 감청에 대해 항의하면 미국은 프랑스에서 빼낸 정보 몇 가지를 던져준다는 것이죠. 반대로 프랑스가 항의를 하면 독일에 관한 정보를 주는 식이죠. 이렇게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이 던져주는 정보에 만족하면서 자국에 대한 감청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녹색당 주도의 독일 의회 진상조사단이 원한다면 기꺼이 증인으로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독일 국민의 반응은 독일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지난 2010년 여론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독일 국민의 호감도는 88%에 달했지만 NSA의 감청 실태가 밝혀진 이후 현재에는 43%로 뚝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초 영국 런던에서 활동했던 <위키리크스>의 편집장 사라 해리슨은 현재 독일 베를린에 본거지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독일 국민의 지지는 확고하다는 것이죠. 또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도 지지가 확고하며 미국에서도 35세 미만에서는 지지층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는 현재 <위키리크스>가 세계 100여개 언론사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학자들이 <위키리크스> 자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
지금까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비밀 문건은 1000만 건에 이르며 이중 200만 건은 외교 문서입니다. 어산지는 이들 외교 문건이야말로 국제관계에 관한 최고, 최대의 1차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이 기초 자료를 이용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스페인어권과 아시아에서 일부 연구 결과가 나왔을 뿐, 영미권에서는 전무하다고 합니다. 86세의 노엄 촘스키가 몇 마디 논평을 했을 뿐이라는군요.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죠. 어산지에 따르면 미국의 5대 외교관련 학술지를 관장하는 ISA라는 단체는 <위키리크스> 자료를 인용한 논문은 일체 받아주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합니다. 또한 미국의 공무원이 <위키리크스> 자료를 열람하는 것도 금지돼 있습니다. 만일 <위키리크스> 자료를 봤다면 그 사실을 상부에 보고해야 하며 관련 기록을 삭제해야 합니다.
또한 미국 정부는 국무부, CIA, NSA, FBI 등의 정예요원 120명으로 구성된 '<위키리크스> 대책반(Wikileaks War Room)'을 구성해 법정소송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산지에 따르면 단일 언론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소송과 계좌 동결로 <위키리크스>의 자산 중 90%는 인출 불능 상태에 있으며 직원들의 급료는 40%가 삭감됐습니다. 어산지는 최고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간첩죄 등 5가지 죄목으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된 상태이며 그의 법정 투쟁을 위해 150명의 변호사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산지는 현재 <위키리크스>의 상태가 "(60년간 미국의 경제봉쇄를 당해온) 쿠바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첩보제국주의로 세계 지배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그 실상과 전모를 밝히려는 <위키리크스>의 싸움은 마치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도 같습니다. 과연 그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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