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두물머리에 관한 글을 이곳저곳에 쓰게 된다. 4대강 사업 중 한강 1공구 사업을 위한 행정 대집행, 쉽게 말해 강제 철거의 위기를 맞다가 3년 전인 2012년 8월에 생태 학습장 조성이라는 대안의 약속을 믿고 네 명의 농민이 물러나왔던 그곳이다. 그런데 최근 전할 만한 새로운 소식들이 있다.
우선은 좋지 않은 소식이다. 천주교의 중재로 4대강 사업 추진 본부와 농민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 내용을 따져보면,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세레스 공원과 같은 시민 참여형 생태 학습 공간을 만들어 우회적으로 영농을 지속하도록 하고 그 조성과 운영 방식은 협의체를 통해서 정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 추천 6인, 농민 추천 6인으로 협의체가 꾸려졌고, 처음에는 4대강 사업의 일부로서 당해 연도에 책정된 34억 원의 예산 집행과 공간 조성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경기도는 초반에 협의체에서 빠졌고 국토교통부의 중재로 대신 양평군이 간사 역할을 맡았는데, 양평군마저 1단계에 해당하는 물리적 공간 조성이 끝나자 더 이상 할 게 없다며 역시 빠져버렸다. 정작 생태 학습장을 기획하고 운영 방식을 논의하는 2단계는 공중에 떠버린 상태가 된 것이다.
결국 유기농 딸기 하우스와 채소밭이 있던 두물머리 끝 그곳은 지금 공원도 아니고 풀밭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 여기쯤 생태 학습장을 만들 것이라고 안내도에 표시되어 있을 뿐이고, 인공적으로 식재한 초화는 말라죽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풍경이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주교 신부님들이 2012년 9월 3일까지 930일 동안 매일 같이 미사를 드리던 두물머리 끝자리 버드나무 십자가 자리는 반들반들한 반석 위에 볼썽사나운 두물머리 표지석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인근 또는 십수 킬로미터 바깥에 어렵사리 농지를 얻어 유기농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2012년 합의의 한 주체였던 4대강 사업 추진 본부마저 사업을 마치고 해체되고 심명필 본부장도 학교로 돌아간 마당이니, 농민들은 누구를 붙들고 이야기할 상대조차 애매해진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합의 이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사업 예산도 수계관리기금을 활용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별도로 확보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물리적 또는 행정적 진전이 어려운 사정이어서 농민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이렇게 생태 학습장의 꿈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가운데, 양평군은 두물머리 전체의 상업적 활용 계획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몇 달 전 이미경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강유역환경청이 이른바 '에코폴리스' 계획이라는 것을 작성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공원 조경을 강화하고 볼거리를 늘려서 고만고만한 한강둔치 공원 비슷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어서 생태 학습장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농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지금이라도 양평군이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꾼다면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고, 국회도 환경노동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가 나설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어떤 외부적 전기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진] 마지막 4대강 사업 현장 두물머리, 철거 들어오던 날 (이미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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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좋은 소식이다. 두물머리 투쟁에서 맹활약했던, 아니 두물머리 투쟁을 통해 만들어졌던 '밭전(田)'위원회가 작전을 꾸미고 있다. 밭전위원회는 이미 양수리 다운타운에 1년여 전에 문을 연 '협동조합 유기농 밥카페 겸 하우스맥주펍'인 "두머리 부엌"과 두물머리 친구들 같은 인프라와 주체를 만들고 이어오며 거사를 도모해왔다.
이들과 농부들은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정부의 태도 변화만을 기대하고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아직 번듯한 생태 학습장이 없어도 생태 학습장 프로그램을 먼저 가동하고, 두물머리가 꿈꾸었던 한국적 '퍼머컬처(permaculture)'를 먼저 실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름하여 '두물머리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 72시간 in 두물머리'다. 참가자들이 2주간 상주함으로 진행되는 이 코스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퍼머컬처 교육 과정으로,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두물머리 일대에서 캠핑장 만들기부터 시작하여 생태적 자립에 필요한 순환 시스템, 적정 기술, 공동체 기술을 학습하고 최종 결과물로 특정 장소에 대한 공동 설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한국에서 이렇게 스파르타식 퍼머컬처 교육을 진행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비용 부담과 시간적 제약으로 실제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강의 중 사흘간 총 18시간을 맛보기 코스로 운영하는 공개 교육도 같이 진행된다. 그것조차 어렵거나 일단 교육은 골치 아프다거나 두물머리 투쟁을 추억하며 그냥 노는 것이 좋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8월 28일에서 29일 1박 2일로 '두물머리 에코토피아'라는 제목의 유쾌한 자립 파티가 마련된다. 무척이나 치밀한 기획이다.
이러한 기획에 이르기까지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는 지역에서 가능한 대안과 희망을 찾아보기 위해 많은 모색과 논의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진행했던 체험 학습 경험과 세레스공원의 이상을 이어서, 두물머리 곳곳의 입간판 문구에만 기술되어 있는 퍼머컬처 프로그램을 직접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물머리의 친구들에 더하여 퍼머컬처 학교, 최요왕 서규섭 농부, 길공방, 두머리부엌, 한국환경교육연구소가 힘을 보탰다.
두물머리 퍼머컬처 디자인 코스의 불순한 의도와 프로그램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크고 작은 난관을 만나겠지만 몇 해 전 두물머리에서 그랬듯이 춤추고 웃으며 헤쳐나 갈 것이고 그것조차 교육의 너비를 더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더 깊고 더 풍성하게 두물머리에 뿌리내리는 더 많은 구상과 주체가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의 유기농 운동의 시원이 되었던 팔당 두물머리는 이제 한국 퍼머컬처 전환 운동의 시원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없으면 직접 만들고 궁하면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공사 대신 농사", "발전 대신 밭전"을 외친 두물머리 정신이었다. 4대강 사업의 역전 만루 홈런을 위한 주자들이 두물머리로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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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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