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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는 왜 '메르스'를 <일성록>으로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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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는 왜 '메르스'를 <일성록>으로 남겼나? [위험과 소통] 메르스 사태, 지방정부가 더 낫다
"신이 서교(西郊), 북교(北郊)에 나가서 병민(病民)과 병막을 일차 간적하니, 초 3일 적간할 때와 비교하면 양교(兩郊)의 병민이 24명 늘어났고 막수는 20곳이 늘었습니다. 병으로 죽은 자가 4일 동안 다만 3명이었는데 모두 늙고 어린 쇠약하고 병든 사람이었습니다. 새로 출막하여 현재 앓고 있는 사람 이외에는 7, 8일이나 15일이 되기를 기다린 뒤에 모두 철거하고 도성으로 들어갈 부류입니다."

정조의 하교에 따라 병민의 상황을 살피고 온 낭청의 보고이다. 정조 12년 무신(1788년) 5월22일의 역병 상황을 기록한 <일성록(日省錄)>의 한 부분이다. 일성록은 임금의 일기로 1760년(영조) 1월부터 정조를 거쳐 1910년(순종) 8월까지 151년간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해 놓았다.

특히 정조 12년 5월 중순부터 도성에 역병이 돌기 시작한 뒤 9월 10일까지 비변사의 담당 낭청이 병민의 치료와 관리 현황을 보고한 내용이 전후의 과정을 포함하여 <일성록>에 소상하게 실려 있다.

정조의 혼과 땀이 서려 있는 수원화성을 품고 있는 수원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발발에서부터 사실상의 유행 끝인 5~7월 석 달간의 기록과 반성을 <메르스 日省錄>이란 이름으로 최근 펴냈다. 제목에다 '일성록'을 붙인 것은 정조처럼 숨김없이 세세하게 후손들에게 알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리라.

수원시, 메르스 반성 담은 <메르스 일성록> 펴내

염태영 수원시장도 발간사에서 "단순히 상황 정리에 국한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낱낱이 기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이와 유사한 질병이 발생하였을 때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대처 과정과 미흡해서 개선해야 할 과제 등을 기록으로 남겨 감염병 관리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5월 20일 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발견된 뒤 사실상 유행 종식이 이루어진 7월 28일까지 69일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전염병에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대응부터 허점투성이였던 메르스 방역 체계, 그리고 병원 문화의 문제점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성찰했다.

이 백서는 수원시가 펴낸 것이므로 수원시 위주로 메르스와 관련해 겪었거나 대응했던 것들을 세세히 기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럼에도 메르스의 정체, 국내외 메르스 발생 현황, 국내 메르스 확산 과정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이 책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메르스에 대해 시민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 백서에는 왜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발생 초기에 미온적인 대응을 했는지,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가 수시로 바뀌며 우왕좌왕 했는지, 왜 삼성서울병원을 비롯한 메르스 확산 허브 구실을 한 병원 이름 공개를 완강하게 거부했는지, 몇몇 환자 발생을 며칠씩 숨겼는지 등 국민들이 지금까지도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

이는 결코 수원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몫이 아니다. 중앙 정부가 백서에서 숨김없이 낱낱이 드러내 기록으로 남겨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이 없다고 해서 <메르스 일성록>의 가치가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 백서의 가치는 지방 정부 차원에서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있었던 일을 세세히 기록해놓았다는 점 외에도 메르스 현장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상당한 지면에 녹여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다.

수원시는 '현장을 통한 성찰과 반성'(272~303쪽)과 'SWOT 분석을 통해 살펴본 메르스 극복 과정'(304~321쪽)에서 수원시, 경기도 감염병관리본부, 질병관리본부 간 엇박자, 의료 기관과 소통의 어려움, 내부 불통, 초기 캐비닛 속에 잠자게 내버려두었던 감염병 대응 매뉴얼, 부실했던 메르스 환자 이송,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정보 공유 부재, 허술한 자가 격리, 너무나 잦은 회의, 개인 이기주의와 낮은 시민 의식 등 지방자치단체와 시민, 그리고 중앙 정부가 반성해야 할 부분을 낱낱이 소개했다.

<메르스 일성록>이 지적한 중앙 정부 대응 민낯, 답해야 할 때

특히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간 비협조와 따로 놀기 등은 이 백서에 그치지 않고 중앙 정부가 앞으로 펴낼 백서에서 이에 대한 설명과 반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물론 이 백서에는 수원시가 메르스 조기 극복을 위해 조치했던 여러 대책과 성과들을 '시민과 함께 수원의 기적을 만들다' '참여와 소통으로 메르스를 극복하다'는 이름의 장(章)에서 매우 자세하게 소개했다. 여기에서는 메르스 극복 컨트롤 타워를 초기에 수원시장으로 한 것과, 시민과 함께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 쌍방향 소통이 메르스를 이기기 위한 해답이라고 보고 온라인·오프라인 소통 모두에 심혈을 기울인 것 등을 잘 정리해놓았다.

<메르스 일성록>은 메르스 사태가 우리 사회에 여러 화두를 던졌다고 진단한다. 첫 번째는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이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에 깨달은 것은 많은 것이 소통으로 해결되거나 문제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미 메르스 유행 중간과 종식 뒤 전문가들과 언론 등이 누차 지적해온 것으로 △국가 방역 체계의 역량을 강화하고 △공중 보건 전문 인력을 양성하여 적절하게 배치하며 △의료 전달 체계와 의료 이용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소의 역할과 기능을 재조명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인권 문제는 허투루 대할 수 없다는 기본 전제 아래 위기상황에서 시민들의 '알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가 더 강조된다고 지적했다. 또 앞으로 희생자와 그 가족을 비난하거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하며 감염병 유행 때는 취약계층 보호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백서는 강조했다.

감염병 관리도 지방 분권이 필요한 시대

<메르스 일성록>은 감염병 관리도 지방 분권이 필요한 시대가 됐음을 메르스가 교훈으로 남겨주었다고 진단하고 감염병을 관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 감염병 관리를 위한 민관협력 거버넌스 구축 등에도 강조점을 찍었다.

수원시의 <메르스 일성록>을 읽으면서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보다 더 유능하고 시민들을 더 잘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메르스 대응 자세 면에서나 메르스 종식 후 반성 면 모두에서 중앙정부가 몇 수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최근 국정 감사에서 공개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당시 본부장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의 '메르스 일일 상황 보고'를 보면 메르스가 기승을 부릴 즈음 정부는 메르스 대처보다 부정적 여론 무마에 온 신경을 쓴 것으로 드러나 다시 한 번 시민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3차 감염 환자를 한동안 숨겨온 것이라든지, 병원 명단 전면 공개가 대통령 지시 사항인지 등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메르스 관련 백서 발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메르스 일성록> 만큼 세세한 기록과 함께 반성을 제대로 담았으면 한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청와대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비서관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정 감사장에조차 출석해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조 때보다 더 못한 것인가. <일성록>과 <메르스 일성록>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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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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