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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벼락 같이 들뢰즈가 우리 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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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벼락 같이 들뢰즈가 우리 곁에 왔다 [들뢰즈 1995+20 ③] 서동욱 서강대학교 교수
"들뢰즈라는 번개가 일었다. 아마도 어느 날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불릴 것이다."

그 자신이 위대한 철학자였던 프랑스의 미셸 푸코는 자신의 동료 질 들뢰즈(1925~1995년)를 놓고서 이렇게 얘기했다. 2015년 11월 4일, 그 들뢰즈가 세상을 떠난 지 딱 20년이 되었다.

그 때는 그랬다.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다(1989~1991년). '몰락 이후' 속속 드러나는 베일에 싸인 현실 사회주의의 맨얼굴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1987년 시민 항쟁의 성과는 보수 정치인(김영삼)의 배신으로 얼룩졌다(1990년 민정당-민주당-공화당 3당 합당). 잇따른 분신으로 상징되던 '마지막' 저항은 보수의 재집권(1992년)으로 일단락되었다.

'역사의 종말'이 공공연히 얘기되었고, 대한민국은 속수무책 소비 자본주의로 이행했다. 그렇게 비전을 상실한 절망과 체념의 시간에 말 그대로 벼락 같이 우리를 찾아온 철학자 가운데 하나가 들뢰즈였다. 많은 이들이 바로 그의 철학을 통해서 비전을 상실한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을 보았다.

물론 지난 20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개발 독재를 통해서 형성된 한국 자본주의가 속절없이 무너졌고(1997년), 두 번의 민주 정부는 신자유주의 파도 앞에서 실패했다. '카지노 자본주의'로 불리던 금융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가 붕괴했다(2008년). 잇따라 집권한 보수 정부의 퇴행은 한국 민주주의의 허약한 기반을 폭로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들뢰즈의 철학이 과연 무슨 역할을 했을까? 섣부른 평가를 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들뢰즈와 함께 철학하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들뢰즈를 벗 삼아 지금 여기의 문제를 사유해온 철학자 서동욱 서강대학교 교수를 만나서 말 그대로 '우리 철학'으로서 들뢰즈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해 봤다.

서동욱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들뢰즈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최고의 들뢰즈 권위자로 꼽힌다.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현대 철학자와 또 그들 사유의 중요한 특징을 대중의 눈높이로 맞춰서 설명한 <철학 연습>(반비 펴냄) 같은 작업을 통해서 철학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에게도 친숙한 철학자다.

서동욱 교수는 들뢰즈의 문장을 <프레시안> 독자가 직접 접할 수 있도록, 국내에 번역 소개된 들뢰즈 저작 가운데 명구절도 직접 뽑아서 소개한다. (☞관련 기사 : 서동욱이 뽑은 들뢰즈의 명구절)

다음은 지난 10월 24일 강남구 신사동의 민음사 회의실에서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전문.

▲ 서동욱 서강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들뢰즈가 곧 '우리 철학자'다

프레시안 : 11월 4일은 철학자 들뢰즈가 삶을 마친 지 딱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들뢰즈 연구자로서 감회가 어떤가요?

서동욱 : 20주기가 되니까 당연히 20년 전이 생각나는군요.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있어요. 그 때(1995년) 제가 출간을 앞둔 책이 들뢰즈의 <칸트의 비판 철학>(민음사 펴냄) 한국어판이었어요. 대학원 석사 논문 때문에 준비를 했던 책인데, 졸업을 하자마자 내게 됐죠. 유학을 준비 중인 때이기도 했고요.

한국 독자를 위해서 들뢰즈의 서문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들뢰즈에게 번역 출간 소식을 전하고 한국어판 서문을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출판사 팩스로 보냈죠. 그런데 그렇게 출판사 팩스를 보내고 나서 며칠 후에 들뢰즈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취인 없이 영원히 떠돌게 된 편지를 보낸 묘한 경험을 얻게 되었죠. 마치 1977년 쏘아 올린 보이저 1호, 2호가 수취인 없는 편지로서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웃음)

프레시안 : 그런 경험이 있으셨군요. (웃음) 저는 그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당시 <한겨레> 고종석 기자의 부고를 통해서 들뢰즈의 죽음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생경한 철학자였는데, 몇 개월 후 대학에 들어가서는 말 그대로 들뢰즈를 비롯한 현대 프랑스 철학의 홍수 속에서 20대를 보냈죠.

그러고 보니, 이것도 묘합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들뢰즈를 비롯한 현대 프랑스 철학이 들뢰즈가 삶을 마친 거의 그 시점 무렵부터 그러니까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결과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4월 28일(화요일) 서강대학교에서 있었던 들뢰즈 20주기 기념 강연이었던 것 같아요.

서동욱 : 맞아요. 그 때 주한 프랑스 대사관, 프랑스문화원 등과 공동으로 들뢰즈 20주기 기념 강연을 했었어요. 마침 프랑스 문화원이 들뢰즈 20주기를 기념해 <질 들뢰즈의 A to Z> 인터뷰 동영상도 국내에서 DVD로 펴냈던 터라서, 들뢰즈 철학을 대중과 함께 회고하는 자리를 마련했었죠.

프레시안 : 굉장히 많은 청중이 왔었죠?

서동욱 : 서강대에서 가장 큰 강당이 청중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나중에는 자리가 없어서 통로에 앉거나 서서 듣는 분도 많았고요.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들뢰즈를 같이 생각하는 아주 재미있는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분 가운데는 철학 공부하는 이들뿐 아니라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분을 포함해 여러 경험을 가진 시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연령대도 어린 학생부터 노인까지 굉장히 다양했고요. 이들이 딱 한 가지 공유하고 있는 게 있었다면 바로 들뢰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었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들뢰즈의 철학이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의 젖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 날 행사를 주최한 프랑스 대사관, 프랑스문화원 관계자도 현장의 분위기를 접하고 굉장히 기뻐하며 놀라워했지요. 앞으로 이런 철학 관련 행사를 더욱더 많이 기획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주었고요.

프레시안 : 그 분들의 놀라움이 이해가 됩니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그런 열띤 분위기의 현장을 접하기는 힘들었을 테니까요.

서동욱 :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확인할 수 있죠. 철학은 독자가 있는 곳 또 그 철학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 곧 그 철학의 고향이라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들뢰즈가 프랑스 국적의 철학자이긴 하지만 프랑스에 그 소유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죠?

서동욱 : 가끔 지적 자산에 대한 콤플렉스와 더불어 지적 자산의 국적(nationality)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우리 고유 철학을 만들자 이런 구호로도 이러지죠. 고유 철학이 한국 국적의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좀 당혹스럽죠. 철학에 국적을 부여하는 것만큼 이상한 일은 없거든요.

철학은 보편적입니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그 사유를 요구하는 사람이 곧 철학의 주인입니다. 들뢰즈가 프랑스 국적의 철학자라고 해서 그 철학의 주인이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고대인의 철학, 그리스 철학이 그렇죠. 오늘 공부 한 번 시작해 볼까, 이런 생각으로 책을 펼치는 사람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자기 문제 때문에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철학의 진짜 주인입니다.

바로 그런 차원에서 우리 철학에 대한 강박관념도 반성적으로 생각해 봐야죠. 거기서 말하는 우리 철학이 우리만이 풀어야 하는 문제에 응답하는 사유라면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치 정신적인 사치품, 자기의 위신을 세워줄 수 있는 가보 같은 것으로 우리 철학을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철학이 필연적으로 있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철학을 가져다 놓는 것이죠. 문학의 경우는 그런 욕구가 흔히 노벨상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표현되기도 하고요.

프레시안 : 방금 4월 들뢰즈 20주기 기념 강연 풍경을 언급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죠. 들뢰즈의 철학이 그토록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럿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이렇게도 바꿔서 물어볼 수 있겠죠.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된 들뢰즈를 우리가 지금 여기 한국에서 왜 기억해야 할까요?

서동욱 : 역사적인 좌표 안에서 이야기를 해보죠.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개혁의 비전을 상실했죠.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야 할 시점에 좌절감을 느끼며 자유주의적인 시장 경제 문화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 많은 사상 가운데 하나가 들뢰즈의 철학입니다.

더구나 들뢰즈의 철학은 문학, 영화, 미술 등 여러 차원에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줬어요. 이런 다양한 통찰력의 제공은 이 철학이 곳곳에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파급력은 비단 우리 문화 속에서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죠. 예컨대 움베르토 에코의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펴냄)에서도 우리는 들뢰즈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지요.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들뢰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천 개의 고원>은 1980년 나란히 유럽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후에 <장미의 이름>의 창작 과정을 회상하는 <나는 '장미의 이름'을 이렇게 썼다>(이윤기 옮김, 열린책들)라는 소책자를 내놓는데, 거기서 자기 소설에 나오는 미로로 이루어진 수도원 도서관이,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리좀'과 같은 구조라고 설명하지요.

"윌리엄이 경험하게 되는 미궁은 리좀의 구조를 지닌 미궁이다."

이런 식으로 들뢰즈 철학은 예술에게 개념을 건네줍니다.

물론 단지 철학, 문학, 영화, 미술 등의 영역에서 날카로운 비평을 가능케 하는 데서만 그쳤다면 이 철학이 이토록 생명력이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들뢰즈의 철학은 항상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건 들뢰즈가 스승으로 삼고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정신과도 일맥상통할 겁니다. 망치를 들고서 철학하는 것 말입니다. 기존의 것을 해석하고 정당화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던 것을 비판하고 깨트리는 것이죠.

프레시안 : 여기서 궁금한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들뢰즈의 철학이 이토록 여러 사람이 절실하게 고민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영감을 주고 또 대중적으로 관심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정작 왜 한편에서는 다수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길까요? 들뢰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프랑스 철학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서동욱 : 여러 설명이 가능할 텐데요. 이렇게 간단히 답해 보죠. 드라마를 중간에 몇 회 빼놓고 볼 때 이해가 잘 안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 같습니다. 철학사란 공부하면 할수록 그것이 잘 짜인 한 편의 스토리텔링, 마치 웰메이드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근대 철학이 데카르트를 통해서 성립하고, 스피노자적인 반발을 겪습니다. 그리고 칸트가 출현하고, 독일 관념론자들이 그가 남겨 놓은 '물자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피노자를 자기 식으로 개조하면서 대응하죠. 또 독일 관념론자가 만든 문제 틀에 대한 반발로 스피노자를 '역동적인 차원에서' 재해석한 프랑스 철학이 등장합니다.

철학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들뢰즈로 대표되는 프랑스 철학의 등장이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잘 짜인 드라마의 스토리가 그렇듯이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중간에 몇 회 빼먹으면 결말이 낯설 수밖에 없죠. 그처럼 철학사에 대한 중간 공부가 생략된 상태에서 들뢰즈 같은 프랑스 철학만 놓고 보면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어떤 점에서 당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낯섦도 들뢰즈나 프랑스 철학이 들어왔던 초기에 비해서 지금은 많이 옅어졌습니다. 그만큼 철학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둔 연구들이 학계 안에서 축적이 되고, 또 그 성과가 대중에게도 확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낯섦은 더욱더 옅어질 거라고 확신하고요.

들뢰즈와 친해지는 방법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간단히 들뢰즈 철학의 수용 현황을 한 번 짚어 보죠.

서동욱 : 일단 외국 사상이 다른 문화 안에서 수용이 될 때 일차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번역이겠죠. 들뢰즈의 책 같은 경우에는 이미 한 번 번역했던 저작을 다른 역자가 다시 번역하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게 했던 학계의 노력을 칭찬해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류를 바로잡고 좀 더 나은 번역본을 만들려는 노력의 산물이니까요.

들뢰즈 철학 또 프랑스 철학이 초기에 수용될 때 어처구니없게도 장벽으로 작용했던 잘못된 번역의 문제가 연구자 또 번역자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 시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여전히 어떤 분들은 들뢰즈를 포함한 프랑스 철학의 번역서를 놓고서 읽을 만한 게 드물다고 냉소적으로 반응하기도 합니다.

서동욱 : 번역서가 근본적으로 원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번역서는 그야말로 이차적인 수단이죠. 그 이차적인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번역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입니다. 국내의 들뢰즈 번역서는 상당 부분 그 정도 수준은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 없진 않지만요.

잘못된 번역을 비판적으로 바로잡는 건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번역 작업에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번역의 질이 향상되었고 또 계속해서 향상 중인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또 번역이 향상되었다는 건 번역을 맡은 젊은 학자의 역량과 그런 번역이 가능하게 한 연구 배경이 성장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공부가 숙성된 것이죠.

프레시안 : 20년 전과 비교하면 학계 안에서 들뢰즈 철학 또 프랑스 철학의 비중은 어떻습니까?

서동욱 : 지금은 확실한 뿌리를 내린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5월에 출범한 '한국프랑스철학회'는 그 뿌리내리기의 한 중요한 징후이죠. 우리나라의 오래된 철학 학회 가운데 하나인 '한국현상학회' 안에서도 프랑스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큽니다. 현상학은 애초 독일 현상학과 프랑스 현상학, 이렇게 두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죠. 들뢰즈 이전에 국내에 소개된 대표적인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모두 현상학자였고요.

한국현상학회의 프랑스 철학에 대한 관심이 빚어낸 결과 가운데 하나가 그 학회에서 기획한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반비 펴냄)입니다. 학회 안에 누적된 프랑스 철학에 대한 연구의 사회 환원이라는 과제의 수행을 위해 대중적 독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책입니다. 이처럼 프랑스 철학을 국내에서 또 외국에서 전공한 학자들이 계속해서 모여서 꾸준히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굳건한 터전이 국내에도 마련되었습니다.

프레시안 : 들뢰즈 철학에만 한정해서 국내 학자의 연구 성과를 몇 개 짚어 볼까요?

서동욱 : 우선 역자의 이름부터 살펴보죠. 들뢰즈의 가장 중요한 책을 꼽아보라면 <차이와 반복>(김상환 옮김, 민음사 펴냄)과 <안티 오이디푸스>(김재인 옮김, 민음사 펴냄)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두 책을 번역한 김상환 선생님, 김재인 선생님은 글도 많이 썼지만, 번역의 차원에서도 들뢰즈 철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철학>(박기순 옮김, 민음사 펴냄)을 번역한 박기순 선생님도 마찬가지고요. 들뢰즈의 철학사 논문을 편집하고 번역해서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박정태 옮김, 이학사 펴냄)를 펴낸 박정태 선생님도 중요한 일을 해냈죠. 이 책은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방금 언급한 역자들은 학술지에 중요한 논문도 여럿 발표했고요. 들뢰즈를 전공한 이찬웅 선생님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프레시안 : 단행본은 어떻습니까? 한국 철학자가 쓴 들뢰즈에 대한 최초의 해설서가 서동욱 선생님이 2002년에 펴낸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펴냄)이죠?

서동욱 : 예 그렇군요. 자기 책을 언급하는 일은 역시 쑥스럽기 짝이 없군요. (웃음) 2000년에 펴낸 <차이와 타자>(문학과지성사 펴냄)에 이어서 <들뢰즈의 철학>은 본격적으로 들뢰즈 철학의 여러 쟁점을 나름대로 해석해본 책이었죠. 이 책 외에도 국내 학자의 의미 있는 책이 여럿 있습니다.

윤성우 선생님의 <들뢰즈 : 재현의 문제와 다른 철학자들>(철학과현실사 펴냄), 신지영 선생님의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그린비 펴냄) 같은 책이 얼른 떠오르는군요. 여기서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단행본 형태가 아니더라도 국내 학자의 좋은 논문을 학술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들뢰즈 철학의 경우에는 학계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공부가 계속되고 있죠?

서동욱 : 맞습니다. 들뢰즈 철학은 애초 현실적인 사회적, 실천적 요구에 의해서 공부가 시작된 측면이 큽니다. 그래서 학계 바깥에서도 진지한 공부가 계속되고 있죠. 그 가운데, 들뢰즈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2013년에 철학아카데미가 펴낸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동녘 펴냄)이 돋보입니다. 들뢰즈를 포함한 현대 프랑스 철학 전반을 다룬 입문적인 책인데, 학계 안이 아니라 시민을 상대로 한 학계 바깥의 학술 활동의 성과라는 점에서 각별하죠.

프레시안 : 벌써 책 제목이 여러 권 나열되었습니다. 시작한 김에 끝을 보죠.

이참에 들뢰즈 철학에 입문해 보려는 이들에게 딱 두세 권만 권한다면 어떤 책일까요? 일단 이차 저작, 그러니까 해설서를 추천하면요?

서동욱 : 이미 언급했으니 <들뢰즈의 철학>은 빼고 하죠. (웃음) 최근에 나온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박철은 옮김, 동아시아 펴냄)도 괜찮더군요. 그런데 철학자는 다른 학자 보고 해설서를 쓰라고 책을 쓴 게 아니라 독자가 직접 읽기를 바라고 쓴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원서를 지나치게 겁내 하면서 이차 도서부터 찾습니다. 당장 강 기자도 이차 도서를 독자에게 소개하려 하죠.

프레시안 : 들뢰즈의 원서를 바로 읽기엔 너무 버거울 것 같아서요.

서동욱 : 처음에는 낯설더라도 직접 원서를 접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해설서 같은 이차 도서를 우회로 삼아서 버리는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해설서만 집착하는 태도가 처음에는 시간 절약 같지만 나중에는 그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럼, 들뢰즈의 어떤 책부터 시도해 봐야 할까요? 딱 두 권만 얘기해 주십시오. (웃음)

서동욱 : 전공자 입장에서는 또 곤혹스러운 질문이군요. 딱 두 권이라니! (웃음) 한 번 해봅시다. 우선 들뢰즈 책을 직접 읽는다고 전제하고, 그의 사상을 대표하는 책을 최소한으로 두 권만 꼽으면 앞서 언급했던 <차이와 반복>과 <안티 오이디푸스>가 있습니다. 먼저 <차이와 반복>부터 얘기해 보죠.

<차이와 반복>은 서양 존재론 전체를 배경으로 해서 들뢰즈가 새롭게 자신의 존재론을 정리한 책입니다. 오늘날 유명한 현대 프랑스 철학자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을 들 수 있죠. 그런데 이들은 전통적인 존재론을 와해시키는 데서 자신의 철학적 정체성을 빚어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러니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근대 철학의 헤겔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존재론을 무너뜨리면서 자신을 빛낸 철학자였다는 얘기군요.

서동욱 : 맞습니다. 들뢰즈 역시 그런 주류적인 존재론을 비판하고 와해하는 작업을 해왔죠. 그렇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양 존재론의 전통 안에 숨겨져 있는 새로운 전통을 발굴해서 가장 낡은 것을 가장 미래의 것으로 만들었죠. 서양 존재론의 숨겨져 있는 계보를 찾아내고, 거기에 자신을 위치시켰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양 존재론의 역사를 잊고 와해하는 데서 정체성을 찾은 철학자가 아니라,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존재론의 역사를 이어주는 데서 자기 철학의 의미를 빚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존재론이라는 기계를 아예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시 수선하는 긍정적인 면모를 발휘한 것이죠.

프레시안 : 저번에 현대 철학자 가운데 (하이데거를 제외하면) 자신만의 철학사를 쓴 유일한 철학자가 들뢰즈라고 지적했던 대목이 떠오릅니다. <안티 오이디푸스>도 굉장히 유명한 책이죠?

서동욱 : <안티 오이디푸스>는 들뢰즈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책이기도 합니다. 욕망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사회 변혁의 비전을 제시한 책이죠.

프레시안 : 그 책에 담긴 그런 사회 변혁의 비전 덕분에 국내에서는 학계 바깥에서도 주목을 많이 받았었죠. 들뢰즈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 두 권으로 <차이와 반복>과 <안티 오이디푸스>를 꼽았는데요. 이런 대표작 말고 정말 입문의 차원에서 도전해 볼 만한 책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서동욱 : 계속 주문을 하니 중요성보다도 읽기의 용이함의 관점에서 얘기를 해보죠. 들뢰즈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밑그림을 보여준 책이 <니체와 철학>(이경신 옮김, 민음사 펴냄)입니다. 다른 측면, 즉 진리 탐구라는 주제의 측면에서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서동욱·이충민 옮김, 민음사 펴냄)도 꼽을 수 있겠네요. 들뢰즈의 책 가운데 독자가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도서들을 기본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것도 가능할 듯합니다. 들뢰즈 사상의 근본 배경이 되는 두 고전 철학이 스피노자와 니체입니다. 그런데 들뢰즈 자신이 스피노자와 니체의 철학을 쉽게 설명하는 교과서적인 책을 썼어요. 국내에서는 <스피노자의 철학>(민음사 펴냄)과 <들뢰즈의 니체>(박찬국 옮김, 철학과현실사 펴냄)로 번역되었죠.

<스피노자의 철학>과 <들뢰즈의 니체>는 스피노자와 니체를 쉽게 소개하는 외양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서 독자가 접근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스피노자와 니체의 가면 뒤에서 정작 들뢰즈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죠. 이제 어떤 책이든지 먼저 직접 읽기를 도전하면 됩니다.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들뢰즈, 차이의 철학자

프레시안 : 이 인터뷰에서 들뢰즈의 철학의 세세한 내용을 다루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하지만 맛보기는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웃음) 지금 얼른 생각이 난건데, <차이와 반복>의 두 가지 열쇳말 '차이'와 '반복'에만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고 보니, 들뢰즈 철학을 '차이의 철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서동욱 : 가벼운 마음으로 짧은 인터뷰를 하자더니 첩첩산중이군요. (웃음) 보통 들뢰즈를 반플라톤주의라고 이야기합니다. 들뢰즈는 플라톤 이래 서양 존재론의 근간이었던 동일성을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유명한 플라톤의 '이데아'가 바로 이 동일성을 표현하죠. 플라톤의 존재론 속에서 개별자는 이데아를 나눠 갖는 한에서만 정체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들뢰즈는 동일성의 바탕에 바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밤하늘의 번개를 보고서 플라톤이라면, 번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번개의 원형(이데아)이 있고 그 이데아를 나눠 갖는 번개가 우리 눈앞의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여기겠죠. 당연히 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번개는 이데아보다 열등합니다.

들뢰즈는 이런 동일성의 사고방식을 부정합니다. 번개는 어떻게 생기나요? 바로 빛과 어둠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빛과 어둠의 차이가 '번개'라는 명사로 일컬어지는 정체성을 만들어 낸 것이죠. 즉, 하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탁월한 것(이데아)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앞서 있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념(번개)은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 감이 올 듯 말 듯 합니다. (웃음)

서동욱 : 그럼, 좀 더 사변적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의 장시 <황무지>의 마지막 장(5장)에서는 인도의 <우파니샤드>를 인용해, 천둥이 말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천둥이 '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세 단어로 듣습니다. 다타(주라), 다야드밤(공감하라), 담야타(자제하라). 신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이죠.

여기서 주목할 게 있습니다.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다'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 각각은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진 각기 다른 단어를 들었을 뿐이죠. 그렇다면 '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 가지 정체성을 분화하는, 즉 차이 나게 하는 요소로서 '다', '차이 그 자체'일 뿐입니다. 결국 차이로부터 세 개의 정체성이 발생한 셈이지요.

프레시안 : 그럼,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은 또 뭔가요?

서동욱 : 반복은 이 차이 나는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차이가 대립이 되고, 한 항이 그와 대립하는 다른 항을 '지양'해서 종합적으로 통일하는 식의 추상적인 법칙 배후에 있는 직접적인 사태를 표현합니다. 휴, 너무 지루해지지 않았나요? (웃음) 여기까지만 하죠.

들뢰즈와 스피노자는 하나다

프레시안 : 오늘 들뢰즈의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수차례 언급된 철학자가 네덜란드의 스피노자입니다. 들뢰즈에게 스피노자는 무엇이었습니까?

서동욱 : 극단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들뢰즈의 철학과 스피노자의 철학(물론 들뢰즈가 해석하는)은 사실 구별이 안 되는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1960년대에 프랑스 철학계에서 '스피노자 연구의 르네상스'가 있었고, 들뢰즈는 그 흐름의 일부였죠. 여기서는 스피노자에 대한 다양한 접근 가운데 들뢰즈에만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 봅시다.

들뢰즈 이전의 스피노자와 이후의 스피노자는 어떻게 다른가? 사실 들뢰즈의 주요 연구가 출현하기 바로 전 1950년대 실존주의가 사상계를 휩쓸 때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실존주의 철학자의 스피노자에 대한 관심은 부수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스피노자를 진지하게 주목한 이들은 훨씬 이전의 독일 관념론 철학자들이었죠. 거칠게 요약하자면, 이들은 칸트가 '물자체'라는 주체 외부 영역을 남겨둔 것에 반대해서 '진리는 전체'라는 사고방식을 고수했어요.

바로 이 때 이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 스피노자의 모든 개별자를 담고 있는 '유일 실체(자연)'라는 개념이었죠. 그런데 독일 관념론에서 스피노자는 역동성이 없는 철학자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들은 스피노자의 '유일 실체'는 운동하지 않는 '죽은 신'이라고 본 것이죠. 헤겔이 변증법의 핵심으로서 '모순' 개념을 내세운 것도 스피노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여겨진, '스스로 운동 하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모색한 결과였습니다.

프레시안 : 들뢰즈가 바로 그 독일 관념론의 스피노자 해석을 부정한 거군요.

서동욱 : 맞습니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 안에서 바로 독일 관념론자들이 없다고 생각한 역동성을 발견한 것이죠. 들뢰즈는 자연 안에 생산하는 힘으로서 '사유하는 힘'과 '존재하는 힘'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관념적인 것들을 산출하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인 것들을 산출하죠. 그리고 이 두 힘의 강도에 따라서 자연 안에서 여러 개별자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들뢰즈의 또 다른 유명한 책 <천 개의 고원>의 프랑스어 표현(Mille plateaux)은 '수많은 고원들'이란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이 제목의 고원이 바로 이 힘의 강도에 따라서 출현하는 수많은 개별자들을 가리킵니다. 자연 안에서 사유하는 힘과 존재하는 힘의 강도에 따라서 다양한 개별자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죠. 들뢰즈는 스피노자 안의 바로 이런 역동적인 생산의 면모를 바탕에 두고 자기 철학을 세웠죠.

ⓒ프레시안(손문상)

들뢰즈와 푸코 또 다른 친구들

프레시안 : 질문이 꼬리를 물고서 계속 이어집니다. 아까도 잠깐 언급되긴 했습니다만, 들뢰즈와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를 비롯한 동시대 프랑스 철학자 혹은 요즘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같은 후배 철학자와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서동욱 : 들뢰즈와 동시대 또 후배 철학자와의 관계는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한 것이라서 여기서 다 언급하기는 힘듭니다. 이 자리에서는 욕심을 너무 부리지 말고 푸코와 들뢰즈의 관계만 주목하면 어떨까요? 들뢰즈는 푸코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지요.

"푸코가 먼저 밟아 나간 길들 위에서 우리는 그와 다시 합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또 자신과 푸코의 차이점을 부각시켜, 이런 취지의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푸코에게서는 모든 게 물 샐 틈 없이 싸여 있다면, 나에게서는 모든 것이 바깥으로 새 나간다."

자신과 푸코의 차이를 보여주는 이러한 들뢰즈의 언급은, 흥미롭게도 전혀 다른 맥락을 예로 삼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 쓴 유명한 책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박유하 옮김, 비 펴냄)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진은 이 책을 처음 펴내고 나서 13년 뒤 영역본이 나올 때 한 장(章)을 추가합니다.

이 책은 애초에 어떤 구상을 가졌던 것일까요? 이 책은 푸코의 영향(고고학)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풍경을 벗어난 것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작업 역시 풍경이라는 구형체 바깥으로 나올 수는 없다. 다만 이 '구형체' 그 자체의 기원을 밝히려는 일인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담긴 책이죠. 들뢰즈의 비판적 묘사처럼 모든 것이 물샐 틈 없이 막혀 있는 영역, 아무 것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영역으로서 일본 근대 문학의 지평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 구절이 그렇죠.

"'사소설적인 것'도 '이야기적인 것'도 결코 근대 문학 제도를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보완하고 활성화시키는 장치 속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고진의 논의는 "결정론적인 패러다임(느긋하고 운명적이고 불가항력적이고 푸코적인 체계와 제도들의 침입)"(프레데릭 제임슨의 표현)이라는 좀 흔해빠지긴 했지만 그만큼 진실되기도 한 비판의 총구 앞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위험을 안고 있지요.

그런데 고진은 13년 뒤 '비평가로서의 소세키로 시작한 것을 작가로서 소세키로 맺고 싶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한 장을 덧붙입니다. 그는 이 장에서 소세키의 문학 안에 기존의 에피스테메와는 다른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는 면모가 내재해 있었음을 보여주죠. 13년 전의 텍스트와는 딴판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근대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근대 소설에 적응할 수 없었던, 또는 일부러 적응하려하지 않았던 소세키의 적극적 의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근대 문학 속에 존재하면서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려 했던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소세키를 구실로 한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 말고 진짜 까닭은 무엇일까요?

고진은,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물 샐 틈 없는 구형체'를 논의하는 일이 지닌 전망 없는 한계를 깨달은 것이겠지요. 공교롭게도 그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시기는 들뢰즈와 그의 동료인 가타리의 전복적인 욕망에 대한 논의가 사상계에서 부각한 시기와 겹칩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 들뢰즈라는 물줄기를 타고서, 물 샐 틈 없던 구형체 바깥으로 나갈 가능성이 열린 시기였습니다. 고진의 저작 증보 과정은 푸코로부터 들뢰즈로의 이행이 문화사에 영향을 미친 한 가지 삽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최근 국내에서 이른바 푸코의 영향을 받은 '통치성(Governmentality)'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 통치성을 구체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제안한 영국의 사회학자 니콜라스 로즈였죠.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맞춤한 인간형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추적한 사회학자 서동진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서동진 선생님의 푸코에 대한 견해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어요. 푸코는 '예속 받는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아주 정교하게 보여주는 반면에, '저항하는 주체'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또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선생님이 소개해 준 들뢰즈와 푸코와의 차이와 일맥상통한 것 같아요.

서동욱 :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고진을 매개로 이야기했던 푸코 해석은 좀 낡은 감이 있기도 합니다. 사실 늘 그래왔지만 푸코를 재해석하는 작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에요. 그런 푸코 연구의 진화 속에서 사실은 푸코가 가진 해방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고 있기도 합니다.

가령 <말과 사물>(이규현 옮김, 민음사 펴냄)만 해도 기존의 에피스테메를 넘겨다보려는 푸코의 노력을 담고 있는 논의들이 발견되는데, 특히 니체와 말라르메에 관해 다룰 때 그렇습니다. 한 예로서 니체에 관한 다음 두 문장만 읽어보죠.

"니체는 시간의 종말을 재검토했고 그것을 신의 죽음과 마지막 인간의 편력으로 변화시켰으며 인간의 유한성을 다시 검토했지만, 이는 인간학적 유한성을 이용하여 초인의 경이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니체는 약속된 초인의 출현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임박한 죽음을 온전히 의미하는 지점을 발견했다. 이 점에서 니체는 이 미래를 우리에게 약속과 동시에 책무로 제시하면서, 현대 철학이 다시 사유하기 시작할 수 있는 문턱을 가리킨다."

이 문장 속에서 푸코의 관심은 이질적인 것이 끼어둘 수 없는 닫힌 방이 아니라, 바로 미래로 열린, 넘어서 나가야 하는 '문턱'에 가닿고 있습니다. 또 '근대적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서는 일'에 관심이 가닿고 있지요.

프레시안 : 들뢰즈와 후배 철학자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서동욱 : 후배 철학자 가운데는 근래 많은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던 랑시에르와의 관계에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랑시에르의 작업의 핵심에는 '미학과 정치'가 놓여 있습니다. 사상사를 염두에 둔다면, 그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선배 철학자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오도르 아도르노를 들 수 있겠지요. '예술의 정치성'을 해명하는 일은 아도르노의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아도르노는 예술이 정치성을 위해서 예술 작품이 프라파간다가 아니라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술 작품이 자율성을 가지려면 자본주의에 예속된 문화 산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는 그 본보기를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처럼 기존의 흐름에서 궤를 벗어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예술에서 찾았죠.

랑시에르는 아도르노의 고민을 계승해서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측면을 보여주죠. 그가 생각하기에 아도르노가 추구한 예술의 자율성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이런 식으로요.

서동욱 : 그렇죠. 그래서 랑시에르는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과제를 '감성의 자율성'이라는 과제로 바꿉니다. 기존 질서로부터 감성 자체가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 재편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생각은 바로 들뢰즈 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들뢰즈는 감성을 새롭게 재편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가졌죠. 그가 랭보의 시로부터 인용하는 구절 "모든 감각의 무질서"는 감성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고자 하는 과제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간판입니다.

간단히 살펴보기는 했으나, 이렇게 들뢰즈는 푸코와 같은 동시대 철학자 또 랑시에르 같은 후배 철학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앞으로 들뢰즈와 프랑스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이런 면모는 더욱 다양하게 드러나며 철학적 담론 자체를 풍요롭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들뢰즈,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철학자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입니다. 한국에서 들뢰즈는 사회 철학으로 수용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앙티 오이디푸스>나 <천 개의 고원>에 들어 있는 들뢰즈 철학의 해방적인 면모가 특히 주목을 받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들뢰즈 철학을 어떻게 우리 철학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서동욱 : 예전에 어떤 매체와 전화로 꽤 길게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진짜로 한 말과는 상관없이 딱 두 문장으로 정리되어서 나왔더군요. "들뢰즈는 학문이다. 우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들뢰즈 철학이나 또 철학 일반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또 그 자체로도 옳은 것이 아니죠.

어떤 학문도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학문의 객관성은 지극히 임의적인 지점에 불과하죠. 그런 식으로는 철학하기의 어떤 동기도 생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통해서 응하고 맞서지 않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 안에서만 철학하기가 가능합니다. 절박하게 사유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유 역시 필연적이 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들뢰즈 철학이 살아남을 장소는 문헌학적인 영역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들뢰즈 철학이 종말을 맞는다면 그 역시 그것이 더 이상 현장에 있을 수 없을 때 그렇게 되겠지요.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입니다. 들뢰즈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그의 특별한 최후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죠. <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가 들뢰즈의 부고를 이렇게 썼었죠.

"그의 돌연한 자살은 한 가지 중대한 의문을 던져 놓았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수했던 그가…. 그의 자살(은) (…) 자기 이론의 고갈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절망에서 온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조선일보> 1995년 11월 24일)

서동욱 : 들뢰즈가 자살로 삶을 마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정황과 관련된 많은 기록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1925년에 태어났던 들뢰즈는 1995년에 만 70세였고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장 그 병이 그를 얼마나 심한 고통으로 밀어 넣었는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들뢰즈의 죽음을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맥락, 그러니까 존엄할 수 있는 권리 행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요? 이게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으로서 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왜 그의 최후를 마치 그가 몸으로 쓴 문학 작품의 한 페이지처럼 다루는 걸까요? 들뢰즈의 책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철학을 외면하고 그의 죽음에서 최상의 철학을 해석해 내려고 하는 것은 일단 난센스입니다.

그런 건 결국 지극히 임의적으로 연극 무대를 설정하는 일에 불과하겠지요. 들뢰즈는 항상 오이디푸스 같은 연극 무대 위에 욕망을 올려서 우스꽝스러운 배역을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욕망은 오이디푸스 같은 상징적 인물과 더불어 죄의식 때문에 울고 웃는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생산과 소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들뢰즈의 죽음 역시 조야한 연극 무대일 수 없습니다. 죽는 자에게 죽음은 상징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저도 이젠 그런 통속적인 관심은 끄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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