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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리, 마지막 가을 : 국가에 귀속된 금모래, 은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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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리, 마지막 가을 : 국가에 귀속된 금모래, 은모래 [크라우드 펀딩] 4대강 기록관 건립 공공예술 프로젝트 ①

이명박 정부의 '국가 개조 프로젝트'였던 4대강 사업, 그리고 7년. 그동안 아픈 눈으로 강과 강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았고, 그 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으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 지율 스님과 예술가들이 '4대강 기록관'을 지으려 합니다. 기록관은 모래강 내성천의 개발을 막기 위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한평사기로 마련한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인접한 회룡포 강변 대지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이 연재는 기록관 짓기에 함께할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

수몰리라? 스님은 그 단어를 싫어한다. 이곳이 물이 잠길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신이 수년째 몸을 누이는 내성천변 그 천막 바닥으로 물이 차오르는 상상은 차마 못하리라. 하지만 현실은 비정하다. 물이 중력을 따라 흐르던 땅에 수십 미터 거대한 영주댐이 신기루마냥 솟아오를 때, 국가, 자본이 만든 이 풍경을 쉬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천성산 도롱뇽의 친구 지율스님 그런 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무렵, 스님은 낙동강을 따라 이 곳 영주 땅 내성천으로 스며들었다. 모래가 깊이 흐른다고 하던가? 2011년 "지천이 살아야 본류도 산다"고 하면서 회룡포, 무섬마을, 삼강 합수 지점을 부단히 돌아다녔다.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맨발에 차가운 강물과 따듯하게 꺼져드는 모래를 밟기도 했고, 허벅지가 터질 듯 차가운 겨울 강바람 앞에 페달을 밟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내성천 주변을 변했다. 강변 버드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갔고, 은모래 금모래가 포크레인 속으로 사라져갔다. 농민들은 논에 쭉정이를 두고 떠났고, 그 논에 피를 닮은 벼가 스스로 자랐다. 이내 논은 풀밭이 되었고 숲이 되었다. 문뜩 국가에 귀속 되어버린 식물들의 해방구에서 눈 큰 고라니들을 본다. 그리고 제풀에 놀라 사라져간다.

관측 사상 최악이라는 말은 요즘 믿을만한 것이 못되지만, 무척 가물었던 늦가을 불현 듯 후배와 함께 영주에 갔다. 새로 장만했다는 놈의 차에서는 맑은 물 내가 난다. 평일 고속도로에는 차가 없다. 아니 우리가 가는 영동에서 중앙 고속도로에 차가 없다고 해야겠다.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만큼이나 깊이 없는 언어들이 바람에 날려갈 때쯤 우리는 영주 금광리 야산을 넘어 금강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하늘은 내려앉았고 대기에 스민 수증기는 아련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한동안 그 처연함을 본다. 멀리 영주댐이 가물거리고 풀이 무성한 내성천은 더 이상 모래강이 아니다. 마을은 이제 허물어져 듬성듬성 이 빠진 노인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첫 번째 수몰리,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금강마을의 풍경이다.


몇 해 전 금강마을 들어갈 때 초입의 다리에서 내려다 본 내성천은 모래강이었다. 아침과 저녁 무렵은 금모래고 정오는 은모래였다. 그렇게 건축업자들이 눈독들이던 모래가 준설되어 어느 부잣집 자재가 됐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풀만 무성하다. 앞으로 모래가 떠내려 와도 떠내려갈 자리가 없다. 고여 썩는다. 지금 보이는 풍경은 영주 내성천의 ‘운포구곡’ 중 금강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6곡, 구만(龜灣)의 모습이다.


내성천이 금강마을을 휘돌아 나오는 운포구곡 중 으뜸이라던 5곡 운포의 모습이다. 전에 산으로 둘러싸이고 내성천이 흘러 구름이 낀 무릉도원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이제 찾을 길 없다. 영주댐을 건설하는 공사장이 되어버렸다. 올해 말부터 담수를 시작하다고 하지만 이 모습을 봐서는 그도 아니다. 영주 댐의 완공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도 떠난 지 오랜데 4대강 사업이 완료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의아할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은 수자원공사가 떠안은 8조의 부채와 이자 때문이다. 이것을 정부가 해결하길 원하면서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 댐으로 내성천을 볼모 삼은 것이리라. 기구하구나.


영주 댐의 모습이다. 인간의 토목공사 중 으뜸이 댐이다. 거대하고 비싸다. 총 공사비가 한 8천억 쯤 든다고 했지만 결국 1조원이 넘었다. 보상과 주변 공사가지 합친 금액일 것이다. 댐만 3천 억 짜리다. 그런데 이걸 왜 만들었냐고 물으면 홍수방지와 농수확보라 한다. 주변에 홍수가 없었고 물이 부족한 때도 없었으니, 거짓말이다. 아마도 4대강 사업으로 오염된 낙동강 대신 식수로 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본다.


허물어진 중앙선 평은역 모습이다. 평은역은 1942년 일제 강점기 말에 영업을 시작해 얼마 전인 2013년에 폐업했다. 아마도 오래전 산으로 둘러싸인 평은면 사람들과 밖의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로였을 것이다. 명절이면 이곳에 수많은 귀성객으로 넘쳤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세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질서해지고 해체된다. 그 당연한 귀결이 이렇게 인위적으로 행해질 때 허망하다. 우리는 문득 쉽사리 인정한다. 이곳이 물에 차오를 것이라고.


산허리에 난 이 신작로에 망연자실 하다. 다니는 차도 없다. 아마도 이 도로 밑까지 물을 채울 모양이다. 참으로 4대강 사업스럽게 한편은 자전거 도로다. 한때는 이런 도로가 지역의 발전을 이야기 했다. 반들반들은 저 아스팔트에선 향기가 났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편리함에 반발해 도로를 엎어버리고 있다. 빠른 속도에 스쳐 지나는 풍경의 경박함만큼이나 우리는 메말라 간다. 그것을 이 풍경이 다시 강요한다. 우리는 조국 근대화 시대에 여전히 살고 있다.


길옆은 거대한 공사장이다. 시멘트 회사가 수십 년 동안 파먹은 산을 복구한다고 한다. 복구는커녕 다시 돌을 쪼개 산처럼 위장한다. 부수고 다시 부수고. 지율스님은 이야기한다. "내성천 환경 파괴 말고도 안전이 문제다. 수몰 예정지 주변 도로가 계속 무너져 주민 이주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댐 사업이 부실한 지질 조사와 설계를 바탕으로 추진됐음을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한다. 저 멀리 포클레인이 파쇄한 거대한 바위들이 굉음을 내며 하강한다. 한동안 쳐다보면서 중력의 힘에 새삼 놀란다. 위태로운 것은 모두 아래로 무너지는 것이 이치다.


여기는 운포구곡의 제7곡 금탄(錦灘)이다. 물여울이 비단을 깐 듯 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지율스님의 천막이 있고, 수년전 나와 미술가 박은선이 나서 스님과 함께 만든 이동식 전시 공간인 이름하여 ‘모래 스페이스’ 갤러리가 있다. 이제 내성천변에서 녹이 쓸며 외로이 실명의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그래서 스님은 회룡포에 상설 전시장을 만들기로 했다. 내성천에서 그간 기록한 모든 것과 친구들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렇다. 영주 댐을 철거하고 350만평 수몰예정지를 습지로 조성하는 것이다. 스님과 나도 포함된 내성천 보전운동 모임인 ‘내성천 친구들’의 조사에서 주변은 먹황새와 흑두루미 등 멸종 위기 종을 포함해 22종의 법정보호동물의 서식지가 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이 지역에 낙동강 상류 최대의 인공습지를 조성해 생태관광 지역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댐 건설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도 가져다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 빌려 쓴 자연, 그나마 도리일 것이다.


이 풀밭은 사실 얼마 전까지 농민들의 논밭이었다. 몇 해 농사를 짓지 않으니 이리 됐다. 그리고 아무리 땅을 파도 바위하나 나오지 않는 옥토를 팔고 저 멀리 산 중턱의 그림 같은 유럽식 전원주택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 농민들이 일할 땅은 없다. 그저 수장되는 것은 땅만이 아니다. 사람의 노동이 수장되고 마음이 물이 잠긴다.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이대로도 좋다. 댐을 부수고 물이 흐르게만 둔다면 생태가 복원되는 것이다.


멀리 영주 댐이 신기루처럼 서있는 금강마을 전경이다. 수몰리는 그래서 슬프다. 이제 10여 가구 남았다. 수백 년의 인간 역사는 잠기고 흔적을 감출 것이다. 옳은 일인가? 만드는데 걸린 오랜 시간에 비해 파괴하는데 쓰인 시간은 순간이다. 문자로만, 사진으로만 남은 역사는 허무하기에 당대는 저항한다. 그러지도 못하면 우리는 역사를 쓸 자격이 없다.


땅거미 질 무렵, 금강마을로 들어갔다. 사람이 떠난 집은 허물었고 밭은 경작금지 푯말이 붙었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꺼져있어 더 을씨년하다. 하지만 두 할머니는 늦도록 감을 따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여전할 것 같은 일상의 풍경이다. 그 풍경에서 다시 희망을 느낀다. 강이 흐르고 식물과 동물이 어울리고, 사람이 그 풍경 속에서 하나 되는 모습을 그려본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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