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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기억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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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기억을 펼치다 [민들레] 우산팔이 소녀의 금요일

이것이 불금이다!

사람들에게 '금요일'은 어떤 날일까. 누군가에게는 주말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술 약속을 잡는 '불금'일 테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학생에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날이겠다. 일주일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거나 뭐, 큰 의미가 없는 날일 수도 있겠지. 나에게 금요일은, 고민이 많아지는 날이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요즘 우산을 팔고 있다. 그 일 때문에 매주 금요일, 친구들을 만나 회의를 한다. 모임 대표를 맡고 있어서 회의 전에 안건을 준비하거나, 이것저것 손가는 일은 내 몫이기 때문에 금요일만 되면 고민이 많아진다. 저녁도 못 먹고 서둘러 왔을 친구들을 위해 간식도 사 가야 하고(메뉴 고르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간간이 들어오는 전화 문의도 응대해야 한다. 우산 만들어 파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나한테는 없는 능력을 갖춘 친구들과 함께 상의하고 수다 떨며 꾸려가고 있다.

또 금요일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로 한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약속한 금요일이 되어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에게는 '유가족'이란 아픈 꼬리표가 붙었다.

▲ 2015년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 1탄. ⓒ김소아

내가 팔고 있는 우산은 친구들과 함께 디자인한 그림을 인쇄한 '세월호 우산'이다. 매주 금요일, 회의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든다. '그 친구들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어땠을까? 사람들은 왜 가족을 잃어야 했을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건 뭐지?'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이 프로젝트는 작년 겨울방학 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나 세월호 우산 갖고 싶은데 품절이래. 너희가 좀 만들어볼래?" 하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친구들 다섯 명이 모여서 시작했다. 초기엔 선생님 몇 분이 간간이 도와주셨다. 우산을 활짝 펴는 것에서 착안해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란 이름을 붙였다. 돈이 하나도 없었던 우리는 궁리 끝에, 제작비를 빌려서 나중에 돌려주는 방식으로 후원자들을 모아 우산 200여 개를 만들었다. 홍보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는데, 우산은 금세 팔렸다.

추석 즈음 다 같이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찾아가 판매 수익금을 전해 드리면서, 난 프로젝트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고 보니 방학 때 급하게 진행한 거라 아쉬운 점이 많았다. 직접 그림을 그린 한정판 투명 우산은 접었다 펼 때마다 조금씩 그림이 지워졌고, 인쇄한 우산은 생각보다 그림이 너무 작게 찍혔다. 또 판매가 끝난 후에도 우산을 사고 싶다는 문의가 종종 들어왔다.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후련함보다 뭔가 다른 것이 마음에 남았다. 미처 다 해소하지 못한 슬픔이나, 숙제를 하다 만 것 같은 찜찜함이랄까. 머릿속에 내가 다시 우산을 팔아야 할 이유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 빨리 우산 팔고 싶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밀린 과제가 태산이었던 나는 졸업식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번에는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해볼래?"

졸업하자마자 친구들을 열심히 꼬드겼다.

"우리끼리 하면 더 재밌을걸!"

작년에 나름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팔린 우산에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여섯 명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우산 말고 다른 것도 해볼까?"

"우산처럼 뭔가 펼치는 거면 좋겠는데…."

"책? 부채? 날개? 꿈? 또 펼치는 게 뭐 있더라."

"책 좋은데? 요즘 컬러링북 유행이잖아. 색칠하는 동안 세월호를 기억하기도 좋고."

"그래, 유가족 형제자매들이 그린 그림도 넣으면 더 의미 있겠다!"


▲ 컬러링북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에 실린 친구의 그림. ⓒ세월의기억을펼치다

청소년이 기억하는 세월호를 담고 싶어 친구들에게도 컬러링북에 들어갈 그림과 글을 부탁하고, 유가족 형제자매와 단원고 졸업생에게도 그림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기억을 한데 모아 놓고 보니, 뭔가 뭉클하고 가슴이 뻐근했다. 사람들이 이 컬러링북에 색을 칠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산에는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 그림을 넣기로 했다. 도매시장에 찾아가서 직접 우산 재질을 만져보고, 펼쳐보고, 비교하며 튼튼한 것으로 골랐다. 홍보 포스터도 만들고, 제작에 필요한 돈을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드릴 손 편지도 밤늦게까지 팔이 빠지도록 썼다. '왜 하루는 24시간밖에 없을까?' 생각될 정도로 빠듯한 일정 속에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함께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피곤했다. 나는 졸업 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고, 나보다 한 살 어린 다른 친구들은 다니고 있는 학교의 마지막 교육과정인 인턴십을 위해 각자 바쁘게 지내고 있다. 평일 내내 현장에서 일하랴, 수업 들으랴 정신없을 텐데 내 꼬드김에 넘어와 주고, 마음 내서 함께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남들은 좋은 일 한다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고충까지 마냥 좋지는 않다. 일을 마치고 회의하러 가느라 지하철을 타면 피곤에 절어서 '이거 타고 그냥 집에 가버릴까' 싶을 때도 있고, 저녁도 못 먹고 서둘러 갈 때면 정신이 멍해지기도 한다. 가끔 의견이 안 맞아 삐꺽 대기도 하고, 돈이 없어 카페에서 음료수 두세 잔만 시켜놓고 긴 회의를 하느라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모여 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심각하다가도 금세 깔깔거릴 수 있는 친구들 덕분에 나도 힘이 난다.

세월호를 만난 친구들

우리는 우산만 만들 게 아니라 세월호에 대해 같이 공부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친구가 모임 때마다 세월호에 관한 PPT나 영상자료를 준비해오면 그걸로 같이 공부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작년에 4개월 동안 '416TV'에서 일하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유가족들과 함께 길바닥에서 먹고 잤다. '416TV'는 언론사들이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는 현장 소식에 속이 터진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방송국을 만들어 유튜브에 실시간 방송하는 독립 언론이다. 그 친구는 생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사고지점으로 갔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다고 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부모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고. 친구는 음향을 체크하느라 이어폰을 끼고 그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무척이나 괴로웠다고 한다. 참사로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을 때만 해도 "세월호가 뭐라고 나한테까지 지장이 생기는 거야?"라고 했던 친구다. 그런 친구가 넉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른 세상을 보았다고 했다(컴퓨터나 방송장비를 잘 다루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어렵게 끌어가는 방송국이라, 게임으로 단련된 본인의 빠른 손가락이 416TV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한편 뿌듯했다).

같이 우산을 만드는 친구 중에는 안산에 사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는 유가족 형제자매를 위한 공간 '우리함께'에서 한 달 정도 일을 도운 적이 있다. '청소년을 위한 세월호 책자'를 만드느라 유가족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한 어머님께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우리는 이미 잃었지만 당신들은 잃지 않았으니 더 절박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씀을 듣고 '나도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그 친구는 올해 처음으로 우산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되었다.

작년 가을, 우산 판 돈을 모아서 안산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합동분향소 옆 유가족 대기실에서 유가족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분향소 주변 곳곳을 안내해주셨다. 작은 공방에선 어머니들이 모여 앉아 실로 팔찌를 꼬고 계셨다. 10월에 프리마켓을 준비하신다며 직접 글씨를 적어 넣은 머그잔, 차받침, 노란 리본, 천연비누, 퀼트 가방, 배지 같은 공예품을 만들고 계셨다. 공방 옆에는 작은 목공소도 있었다. 거기선 아버지들이 직접 의자나 탁자를 짜고 계셨는데 솜씨가 아주 좋았다. 이제 막 도마나 책상 같은 간단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하셨는데, 자신이 손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는 아버님도 계셨다. 공방과 목공소는 맘껏 슬퍼하기도,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힘든 엄마와 아빠들에게 '숨통' 같은 공간이었다. 유가족 부모님들은 밖에 나가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어딜 가서 웃으면 "자식 잃은 사람이 저렇게 웃느냐"고 수군거리고, 울상으로 있으면 "아직도 저러고 있느냐"며 눈총을 준다고. 이곳에서는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웃거나 울 수 있어 좋다고. 낮에 집에 혼자 있는 게 너무 힘든데, 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질 때 여기 와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망치질을 하면 그 순간은 마음이 좀 편해진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정부합동분향소에 처음 가봤다.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빼곡하게 놓인 영정사진을 보니 무거운 공기가 나를 휘감고 아래로, 아래로 짓눌렀다. '304명'이 숫자로 다가왔을 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단 말이야?"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마주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상이 무너졌구나 하는 충격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세상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왜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고 싶어 하는지, "인제 그만 하자"고 말하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커다란 슬픔과 무력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 복닥대며 회의하는 시간은 힘들고도 즐겁다. ⓒ김소아

이거 왜 하는 거야?

"근데 이거 왜 하는 거야? 왜 기억해야 하는데?"

가끔 나에게 이렇게 대뜸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세월호 기억 프로젝트를 하는지 시험(?)하듯 묻는 어른들도 있고,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묻기도 한다. 바쁘게 회의하고, 우산 만들고, 잘 달려가다가 갑자기 이런 질문이 들어오면 끼익! 급정거를 하게 된다. '진짜 이거 왜 하고 있지? 왜 기억해야 하느냐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어떤 말은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 생기를 잃었고, 어떤 말은 진심이지만 진심 같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럴싸한 대답을 들려주진 못했지만, 그 질문은 나를 더 움직이게 했다. 입으로 옮기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일 수 있도록. 입에 발린 듣기 좋은 대답을 궁리하기 전에, 더 많은 사람들과 기억할 수 있게 국가가 챙기지 않는 유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 배에는 나도, 내 동생도, 내 친구도 그리고 누구도 탈 수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세월호를 지겹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세월호를 둘러싼 의혹과 거짓을 바로잡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제2의 세월호'가 드러날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고, 또 다른 누군가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니 명명백백한 진실을 밝히는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금요일은 너무 빨리 돌아온다. 어제 늦게까지 출판 수업을 듣고 막차 타고 집에 왔더니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지만, 오늘도 논의할 게 산더미다. 피곤하지만 기분은 째지게 좋았다. 예상보다 일찍, 많은 후원금이 모였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도시락과 컵라면을 사가지고 가서 회의를 시작했다. 노트북을 켜고 후원금이 얼마나 모였는지 얘기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삼천포로 안 빠지고 회의도 일사천리다. 이렇게 복닥복닥 모여서 회의하고 우산에 그림 그려 파는 게, 세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린 또 모이고, 또 그림 그리고, 또 팔 거다. 다음 주 금요일도, 다음다음 주 금요일도….

어제 본 영화에서 그랬다. "악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한 가지다.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커다란 슬픔을 기억하며 나는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할 것이다.

* 세월의 기억을 펼치다(//www.facebook.com/sewol.remember0416/)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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