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인권 지킴이'를 자임해온 37개 시민단체가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제조업체 처벌과 주범 격인 '옥시' 상품 불매를 선언하는 자리를 함께 마련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조사로 가습기 살균제가 치명적인 폐질환의 원인으로 밝혀진 2011년 이후 5년 동안 제조사의 책임 회피와 환경부와 검찰 등 정부의 외면 속에 피해자들은 고통을 받아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세월호 참사'급의 사건이라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피해자들과 이들을 돕던 시민단체들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게 된 것이다.
이날 합동기자회견의 초점은 '옥시'에 맞춰져 있었다. 옥시는 영국계 다국적 기업으로 독성 실험도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만 '살인 살균제' 제품을 최초로 출시했다. 지금까지 정부 조사로 확인된 희생자 146명 중 103명이 옥시 제품에 의한 것이다.
"20대 국회,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 제정하고 청문회 개최하라"
시민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현재 확인된 사망자만 146명이고, 작년에 신고되어 조사 중인 사망자 79명, 올해 신고된 사망자 14명 등 239명"이라면서 "통계적으로 추정되는 피해자의 숫자는 최대 수십 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와 산모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독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화학물질이 시판되기까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과 이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인 환경부와 검찰의 태도를 감안하면, 기업이 일으킨 사고를 넘어서는 엄청난 참사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기업 중에서는 가장 책임이 큰 옥시 제품에 대한 국민적인 불매운동을 촉구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면서도, 정부의 책임을 묻는 활동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시민단체들은 "위험한 원료가 승인되고, 치명적인 제품이 통제되지 않은 채 유통되고, 피해 원인이 발생했는데도 긴 시간을 허비하고, 피해자 구제와 지원을 외면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면서 "이들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의 역할이 무엇이었으며, 적절하게 작동되었는지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시민사회는 "20대 국회의 첫번째 과제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을 제정해, 청문회를 개최하고, 필요한 조치를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시민사회는 검찰이 수사가 이제야 시작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건이 이슈화된 데에는 검찰의 역할이 컸다"면서 가습기살균제 수사를 위해 출범한 특별수사팀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오적'에는 정부와 전문가들도 포함
시민사회가 철저히 파헤쳐주길 바라는 검찰의 수사 대상은 전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이 주최한 임시총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오적(五賊)'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오적으로 선정된 명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국민 죽고 다치게 한 유럽계 다국적 기업: 영국계 생활용품기업 옥시레킷벤키저(Oxy Reckitt Benkiser), 영국계 유통기업 테스코(TESCO), 덴마크기업 케텍스(KeTex)
-소비자 죽고 다치게 한 한국기업, 특히 재벌들의 대형할인마트: 롯데그룹 롯데마트, 신세계그룹 이마트, 삼성그룹 홈플러스, GS그룹 GS리테일, 코스트코, 다이소 그리고 애경
-증거조작 및 은폐하는 살인기업 비호하는 김앤장
-앞으로는 국민위한 환경보건정책 뒤로는 피해자 외면하는 대한민국 환경부
-연구윤리 저버리고 고용과학의 대명사된 서울대, 호서대 교수들
5적 가운데 정부 부처로는 환경부가 유일하게 선정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환경부는 가습제 살균제 사망사건 이후 줄곧 환경부 장관까지 나서서 제조업체 대변인 같은 비호 발언을 일삼았다. 정부 조사로 인과관계가 확인된 뒤인 2013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사람에게 투약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후 부작용이 생겨 용도를 제한하거나 출시 인허가를 취소하는 경우가 지금도 생긴다"며 "가습기 살균제도 그런 범주의 문제다. 제조물 책임법을 보면 현존 과학기술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이라면 독일 등 대부분 국가에서 면책을 해준다"고 말했다.
또한 환경부는 피해자 접수조차 지난해말까지만 받겠다고 못을 박았다가 최근 검찰 수사 등으로 논란이 커지자 돌연 5월부터 추가 접수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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