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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박근혜, '나쁜' 대통령도 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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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박근혜, '나쁜' 대통령도 될 텐가? [기자의 눈] 세월호 진상 규명이 '세금' 아낄 일인가

26일 청와대에 갔었다. 취임 첫해 편집국장.보도국장 오찬 간담회 이후 3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박 대통령은 여전했다. 어색한 웃음, 딱딱한 말투, 이런저런 그래서 등 군더더기가 많이 들어간 만연체 화법, 무엇보다 총선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강경한 내용.

지난 4.13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여당 지지자나, 야당 지지자나, 무당파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일반적인 예측과 너무나 벗어났기 때문에 충격적인 결과였다. 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아버지 박정희가 심판받은 선거"로 평가했다. 아버지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였던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박정희 스타일'로 대한민국을 통치하지 말라는 민심의 명령인 셈이다. 김태형 심리학 박사는 지지자들이 갖고 있던 "박근혜에 대한 심리적 애착관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실정으로 끊어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4.13총선 결과에 대해 두 시간이 넘는 간담회에서 단 한 마디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었다. 심지어 두 번이나 거듭 물었는데도 흔들림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보기에 이번 총선은 19대 국회에 대한 심판이었을 따름이며, 이는 본인이 총선 전 직접 '빨간 옷' 입고 당부했던 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또 "대한민국이 대통령 중심제라는데, 정작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통과시켜 국회가 만든 법을 무력화시키는 등 '삼권분립'의 원칙까지 깨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권한 없음'을 탓하다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지, 왕정 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뿐 아니라 행정도 끊임없는 협의와 합의가 필요한 과정이다. 국회에서 서로 다른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여당과 야당의 의견 대립과 이를 조정하는 정치 과정을 박 대통령은 '싸움질', '국정 발목잡기'로만 인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치 질서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1년 10개월 남았다. 차기 대선을 기준으로 하면 1년 8개월이다. 지난 임기 때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던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에 많은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특히 6월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여소야대 국면을 본격적으로 맞게 된다. 총선 이전처럼 대통령이 '오더'를 내리면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원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된다. 야당과 어떤 식으로든 '협치'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준비하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박 대통령이 26일 간담회에서 새누리당이 '꼼수'로 1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유승민 등 탈당파의 복당을 거부하고 나선 것을 보면 안다. 앞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총선 결과로 반쯤 결론이 내려진 '실패한 대통령'이 최종 결론이 될 가능성은 짙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지지층의 와해와 탈출이 진행될 것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를 통해 새누리당은 차기 대권주자들이 날아가면서 새로운 구심점조차 없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박 대통령에게 해야만 하는, 또 할 수 있는 일을 알려 드리고 싶다. 노동 개혁(악)이니, 구조조정이니,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의지만 보이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다. 바로 박 대통령 임기에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일인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 문제다. 세월호 참사는 '내 아이였다면', '내 동생(내 언니 오빠)이었다면', '나였다면…'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에 공감하는 문제다.

박 대통령 머릿속엔 '사고'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그러니 박 대통령은 26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임기 보장과 추가적인 조치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던 것 같다. 사고의 발생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지만, 사고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충분히 지금과 다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정치적이며 행정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한 번만 만나서 얘기를 들어 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철저히 외면해왔다. 여당의 세월호 특위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방해 공작에 대해서도 눈감아 줬다.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공무원들의 태업도 방관했다. 여당과 공무원은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움직이는 집단이다. 국가적 재난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국민의 세금을 안 쓰면, 세금은 어디에 써야 하는 돈인지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7시간'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숱한 의혹들을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기고 싶은 것인가? 박 대통령이 끝내 '실패한 대통령'에 '나쁜 대통령'이라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지 않기를, 마지막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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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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