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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 10.9%? 현실은 4명 가운데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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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률 10.9%? 현실은 4명 가운데 1명! [복지국가SOCIETY] 왜, 자꾸, 언제까지 청년 실업인가?
청년 실업자가 또 늘어났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15세~29세 청년층 실업률이 10.9%로 4월 기준으로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그득그득한 노량진 고시촌은 그렇다 쳐도 대학 도서관, 근처 카페마다 토익 공부 및 자소서 쓰는 학생들로 넘쳐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터디 카페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데, 주변 친구들 10명 중 고작 1명만 직장을 구하는 중이라고?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10.9%' 라는 숫자가 감추고 있는 현실의 끔찍함


이 이상한 상황은 실업률이라는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실업자/(취업자+실업자)”를 말한다. 이 지표에서 말하는 실업자는 단순히 구직 광고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4주간 구직 업체 방문, 전화, 이력서 제출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찾아 구체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한 사람으로서, 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고 취업자는 조사 대상 주간에 1시간이라도 일을 한 사람으로 가족이 경영하는 사업장에서 무급으로 일하거나 일시적으로 직장을 떠나 쉬고 있는 사람까지도 포함된다.

따라서 노량진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약 50만 명의 공시생들은 '원서 접수' 이전까지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 시험 접수 기간이 되면 실업률이 반짝 올라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학원비나 면접 준비 비용을 벌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임시․일용직들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다른 좋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주 36시간 미만의 불완전 취업자들은 모두 '취업자'로 분류된다.

즉, 취업 의사를 가지고 스펙을 쌓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구직 의사가 없다고 여겨지고 취업 준비하는 동안 생계를 위해 잠깐 잠깐 일하는 학생들은 통계상으로는 엄연한 직장인이 되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실업자는 과소 추계되고, 취업자는 과다 추계되면서 실업률이 낮게 나타난다.

이 같은 실업률의 통계상 문제로 인해 고용률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도 많다. 청년 고용률은 15~29세 인구(군인, 외국인, 교도소 수감자 등 제외) 대비 취업자 수로 4월 기준으로 41.8%이다. 청년 10명 중 4명만 일자리를 찾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

고용률에는 공시생을 비롯하여 스펙을 쌓느라 여념이 없는 취준생들도 분모에 포함되어 추계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여전히 해당 주간에 1시간 이상 일한 '취업자'가 기준이 됨으로써 실질적인 취업자 수를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석 연휴가 낀 9월은 임시·일용직 증가로 고용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문제 의식 하에 통계청은 2015년 1월부터 세 유형의 '체감 실업률'을 함께 발표하고 있다. 공식 실업자에 시간 관련 추가 취업 가능자(불완전 취업자로서 추가 취업을 원하는 자), 지난 4주간 구직 활동을 했으나 질병, 가사 등의 사정으로 당장 일을 시작하지 못한 잠재 취업 가능자, 지난 4주간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으나 일할 의사가 있는 잠재 구직자(예를 들어 취준생)를 각각 합한 수치이다. 그러나 연령별로는 공식 추계하지 않고 있는데, 가장 최근 데이터인 <한겨레>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청년층 체감 실업률은 24.1%로 명목 실업률의 2배 이상이었다. (☞관련 기사 : )

실업자 수 또한 120만9000명으로 공식 실업자 52만 명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3월 실업률 통계(11.8%)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므로 4월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식 청년 실업률인 10.9%라는 수치가 민망해지기는 매한가지이다.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라고 외치면서 그나마 실질적으로 와 닿는 청년 체감 실업률은 공식적인 추계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느낀 당황스러움은 논외로 하더라도, 사회에서 좌절을 삼키고 있는 청년 절반을 감추어 버린 10.9%의 수치가 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 [표 1] 15~64세 실업률 대비 청년 실업률 비율(유진성, <고학력 청년층 체감 실업률 추정과 노동 시장 개혁의 필요성>, 2015년).

국제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마다 경제 활동 연령과 노동 시장 특성이 다르므로 이를 감안하여 각국의 전체 실업률(15~64세) 대비 청년 실업률 배율을 비교해 보면,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평균이 2.0인데 비해 한국은 2.7로 훨씬 높다. 전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이 문제시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유난히 더 아프다.

청년 실업은 풀 수 없는 난제일까

어찌되었든 통계상의 기술적 문제를 떠나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청년 실업의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데는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이 있다. 20대 청춘들의 좌절을 다룬 <표백>(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이라는 소설에서는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는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짜여 티끌 하나 조차 없는 하얀 세상에서 한 개인이 느끼는 어려움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답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개인적 실패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청년 실업은 더 부지런하지 못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도전보다는 미리 겁부터 먹는 개인의 잘못으로 비난받는다. 이명박 정부의 '눈높이를 낮춰라, 패기를 가지고 벤처 기업을 창업하라', 박근혜 정부의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라는 말들은 '너희들이 조금 더 노력하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다'라는 뜻이었다. 동시에 '네가 지금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라는 질타이기도 했다. 그리고 기존 질서에 대한 적응을 지원하는 정책들, 특히 청년들이 스스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하는 데 수조 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다. 통계청의 '기업 생명 행정 통계'에 따르면, 30세 미만 청년이 대표자인 기업의 경우 창업 이후 5년 생존률은 16.6%에 불과했다. 또한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출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중소기업 청년 인턴제는 1년 이상 근속률이 37% 정도에만 머물러 연평균 청년 고용률 40.2%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았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는 나날이 벌어져 지난해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혹시나 하고 도전했던 청년들과 눈높이를 낮춘 청년들은 또다시 현실 앞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무능력함을 탓해야 할까. 하얗게 표백된 세상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완벽한 것일까. 그러나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억울한 점이 많다. '노오오력' 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사회적 장벽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체감했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안전망이 열악한 사회에서 발을 잘못 헛디디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정규직의 대기업 정규직 전환 비율 6.6%,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대기업 정규직 전환비율 2.8%라는 처참한 수치들은 청년들이 눈을 낮춰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봤자 그 수렁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현재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노력해봤자 노오오오력이 아닌 이상 얻을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따라서 아무리 취업 준비 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 안정적인 일자리로 모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에서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답이다.

ⓒ연합뉴스

청년 실업, 정부의 제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청년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는 사회적 제도들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노오오력'이 아니라 노력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물어 뜨려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무작정 정부에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을 하라고 선거 때마다 우리가 다른 후보들보다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고 세금으로 월급을 주면서 우리가 '고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로 하여금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일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를 감시 감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정부는 우리에게 선택받아 권력과 각종 자원들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고용주'에 해당하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주저하는 것은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일자리.임금.노동 환경의 제도적 격차로, 한 개인으로서는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이 조성한 공적 재원인 세금을 투여하여 점차 격차를 축소시켜야 한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 대우를 해소해 양질의 일자리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잔업과 야근이 잦은 제조업 부문에서 과다한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 역시 추가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지점이다. 이와 더불어 청년들이 새로운 가능성이 있어서 창업하고자 하면 무작정 등만 떠미는 대출 지원이 아니라, 실패할 경우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히 조성하는 데 재정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산업 구조의 변동으로 더 이상 신규 일자리 창출이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정부 자체도 다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는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의 일자리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교육.문화.복지.의료.간병 및 가사 지원 등 사회 서비스 부문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등 노동 강도가 강한 부문에 고용을 늘리면 기존 근로자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을,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1인당 학생 수가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많은 현실을 감안하여 정규 교사와 보육 교사 수를 늘리고 인력 부족으로 과로사가 번번이 일어나는 사회 복지 부문 전달 체계의 인원을 늘리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이러한 일자리를 양질로 만드는 데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아직도, 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만 할 텐가. 청년 실업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몇 년째 더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지만 개선은커녕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당연한 결과다. 표백된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한 척 하기 위해 청년들이 스스로의 무능력함을 탓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해 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고개를 들자. 우리의 탓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역할을 부여한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먼저 꾸짖고 바꾸어야 한다. 하얀 세상이 다양한 색깔로 다채로워질 때가 비로소 완벽한 세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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