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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하루 살고 하루 자기도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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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하루 살고 하루 자기도 버겁다 [건축신문] 청년 난민
난민[難民] :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시리아 난민들은 "우린 인간이다"를 외치며 프랑스, 독일, 캐나다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건너갔다. 프랑스 정부가 불도저로 칼레 난민촌을 밀어버려도, 같은 인간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살 인간은 아니라는 듯 마케도니아가 국경을 닫아도 그들의 이동은 계속됐다. 시리아 난민 사태가 일어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도 내전은 격화됐다. 터키 국경으로만 3만 명이 몰렸다. 60만 명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할 거란 예측도 있다.

정치적·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하기 위해 탈출한 사람을 '난민'으로 일컫는다. 난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제도도 그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국적은 있으나 본국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이주국에 살고 있으나 국적은 여전히 본국에 있다. 쉽게 말해 음영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다.

난민을 음영지대에 사는, 사회 제도의 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한국도 난민 발생 국가다. 그리고 그 난민이 청년이라면, 미래세대의 기둥이 될 청년이 난민이라면, 그 나라는 곧 무너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나라의 기둥, 그 난민들의 이름은 청년 노동 난민, 청년 주거 난민이다.

▲ <미스핏츠> '청춘의 집' 프로젝트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입니까'에 사용된 이미지. ⓒ미스핏츠

9.5%.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15~29세) 실업률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과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통계에 잡히지 않고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걸 고려하면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은 훨씬 높을 것이다. 대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청년들의 실업률은 무려 25.3%라는 조사도 있다. 고등학교 학생의 약 70%가량이 대학을 진학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최소 5분의 1가량의 청년이 대학을 나왔음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실업자인 신세다.

일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기 싫어서, 눈이 높아서 취업을 못 한다고 이야기한다. 눈을 낮추면 취업될 가능성이 커지긴 한다. 하지만 그 현실은 어떠한가. 2015년 중소기업 직원 평균 월급이 대기업의 60%가량이었다. 이 정도 임금 격차는 조사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독일과 일본은 임금 격차가 각각 74%, 82% 내외로 우리나라보다 덜하다.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회피하는 이유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삶이 힘들어서다. 눈을 낮추라고 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위치를 올려야 하는 게 급선무다. 우리나라 굴지의 보수 일간지가 사설로 "청년들에게 어떻게 중소기업 취업을 권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판국이다.

20.3%. 지난해 첫 직장을 잡은 청년들의 5분의 1가량이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기업은 정규직 일자리를 비용문제를 들먹이며 줄이고 있고 정부 역시 정규직이 과보호 받고 있다면서 정규직 기득권 해체를 주장한다. 정부와 기업이 전폭적으로 실시한 임금피크제 역시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규직의 기득권이 없어지면 마치 청년의 일자리가 생길 것처럼 말했지만 청년의 일자리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임금피크제와 청년 일자리의 연결고리가 약하다고 평가했다.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청년고용 의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 절반가량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버지 월급이 줄고, 자식 일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 아버지 월급은 줄고 자식 일자리는 여전히 없다. 생긴 일자리도 1년 이하 계약직이 20%다.

78%. 부모가 비정규직일 때 자녀도 비정규직인 경우가 78%에 달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노동자 사이의 신분으로 굳어졌는데, 이 신분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진다. 비정규직인 부모는 충분한 자본을 쌓지 못하고, 자본이 부족해서 자녀에게 교육자본, 사회자본을 투자하지 못한다. 투자받지 못한 자녀는 노동 시장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으며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수저 계급론은 일부 가지지 못한, 약해빠진 청년들의 투정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증명된 엄중한 현실이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

청년들은 불안정한 노동으로 몰렸다. 청년들이 약해서 헬조선을 말하는 게 아니고, 아무 근거 없이 탈조선을 소리치는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서 청년 담론이 몇 년 전부터 유행했지만 청년들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불안정 노동, 불안정한 비정규직들을 뜻하는 '프레카리아트'는 유럽의 단어였다. 금융위기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국가들이 취한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들이는 비용을 줄이면 그만큼 채용을 늘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의한 계획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유로존 청년들 중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다. 스페인 같은 경우, 청년 10명 중 7명이 비정규직이다. 장밋빛 전망은 전망으로만 끝났다. 2011년 유로 크라이시스의 해결책으로 꼽히던 노동시장 유연화를 동아시아의 한 국가가 도입했다. 노조 조직률이 10% 내외인 상황에서, 비정규직 627만 명 중 절반가량이 1년 미만 근속하는 세상에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겠다고 한다.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소리치고, 국회 역시 노동시장 관련 4대 입법에 관해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년 노동자들은 난민의 위치에 준한다. 제도의 부재로 인한 박해를 청년층은 피할 수 없다. 불안정한 노동자로 남지 않고, 탈출하고 싶은 노동자로 변하고 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프레카리아트가 아닌 노동 난민으로의 변화다.

청년들이 일자리의 꿈과 동시에 버린 또 한 가지의 꿈이 있다. 바로 '집'이다. '집에서 오손도손 사는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청년은 그리 많지 않다. 실버푸어, 에듀푸어 등 온갖 푸어(poor)들이 넘쳐나지만, 그 시작은 하우스푸어였다. 2016년 하우스푸어의 주인공은 '큰 집을 사기 위해 빚을 내 투자했다가 빚을 못 갚는' 중산층이 아니라, '하루 살고 하루 자기도 버거운' 청년층이다.

▲ <청년, 난민 되다>(미스피츠 지음, 코난북스 펴냄). ⓒ코난북스
2013년 민달팽이 유니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의 14.7%가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 있었다. 주택법에 규정된 최저주거 기준(1인당 14제곱미터)에 미달하는 주택, 지하방, 고시원 등에서 거주하는 청년이 전국에 140만 명 정도 있다. 필자가 <청년, 난민 되다>(미스피츠 지음, 코난북스 펴냄)를 쓰면서 만나게 된 청년들 대부분이 이런 상태에 놓여 있었다. 수치로 가늠할 수 없는 주거의 현실은 꽤 암담했다. 벽간 소음이 너무 심해 잠을 잘 수 없던 사람,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치료를 받은 사람, 너무나 비싼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위험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람 등 주거 난민의 현실은 통계치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단순히 안 좋은 집에 사는 게 청년주거 빈곤의 핵심은 아니다. 문제는 월세가 너무나 비싸다는 점이다. 2013년 기준 고시원의 평당 월세는 15만 2000원이었다. 타워팰리스의 평당 월세는 14만 8000원이었다. 고시원에서 매일 소음과 싸우며 잠을 이루는 친구들이 강남의 중심인 타워팰리스보다 높은 평당 월세를 내는 현실이다. 실제로 2012년 기준으로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청년 1인 가구가 전체의 70%에 달했다. 절반 이상을 내는 경우도 23%가량이었다. 월급의 절반을 주거비로 내는, 월세로 내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을까. 청년들은 으리으리한 궁궐 같은, 아방궁 같은 집을 꿈꾸지 않는다. 아프면 삼각김밥 대신에 죽을 끓일 수 있고, 햇볕을 쬐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집을 꿈꾼다.

청년주거 빈곤은 청년 빈곤의 시작이다. 부모에게 주거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학생은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한 달 내내 최저 시급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의 30%가량을 주거비에 쓴다. 많게는 절반가량을 쓴다. 아르바이트하다 보면 생활이 망가진다. 일을 끝내고 오면 축 늘어지고, 공부할 시간에 잠을 자고 쉬게 된다. 자기 계발은커녕 하루하루 재충전하기도 벅차다. 이 상태에서 좋은 일자리를 갖기는 힘들다. 결국 부모에게 주거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청년, 즉 수저가 있는 사람들만 그럴듯한 자기 계발과 취업을 도전할 수 있다. 정말 심플한 알고리즘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필자가 만난 인터뷰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짚은 문제점이다. 주거 빈곤에 이은 취업 실패, 취업을 하더라도 불안정한 취업이 되는 이 상황. 노동 난민과 주거 난민이 공존하는 이 나라가 난민 국가가 아닐 수 있을까.

주거 난민과 노동 난민 등 난민 발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킨다는 점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난민 유입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한국도 여러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이다. 노동 불안과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자연스레 출산을 포기한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라에서 국민연금이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다. 노후 대비가 취약한 한국의 노년층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붕괴는 노년 세대 전체의 붕괴다. 이를 막으려면 노동과 주거 두 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카이스트 김우창 교수는 해결책으로 국민연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으로 어떻게 국민연금의 불안을 줄일 수 있을까. 바로 청년에게 투자하는 방식이다. 505조 원가량 되는 국민연금의 1%가량이라도 인구에 투자하면, 국민연금의 금융투자수익률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쉽게 말해, 국민연금을 청년에 투자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면 자연스러운 선순환이 된다는 뜻이다. 김우창 교수가 이 아이디어를 냈을 때가 2014년이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연금을 주택에 투자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구체적인 대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청년의 주택문제와 일자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인간은 노동과 주거로 삶을 건축한다. 노동으로 돈을 모아 자신의 가족을 꾸리고, 생계를 이어가고 미래를 꿈꾼다. 주거는 가족과 생계 그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노동 난민, 주거 난민으로 몰리고 있다.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 바깥으로 밀려 나가고 있다. 청년난민들에게 그럴듯한 공간을 주자. 성실하게 노력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번듯한 일자리가 아니어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하자. 더 이상 한국의 청년들이 헬조선의 청년 난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세대로 남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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