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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정희 아닌, 북한 따라하는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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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버지 박정희 아닌, 북한 따라하는 박근혜 [현안진단] 정치적 현실주의를 회복하여, 외교에 기회를 주자!
한반도에 일고 있는 정치적 낭만주의

북핵 위기 국면에서 남북한이 모두 정치적 낭만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정치적 낭만주의는 '그분만 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는 태도를 말한다. 이러한 태도가 전면화되면 객관적 정세에 대한 합리적 계산은 묵살된다.

그런 가운데 태동하는 것이 군사적 모험주의이며, 역사가 증명해주는 것은 그 도달점이 어김없이 파국이라는 것이다. 군사적 모험주의는 객관적 현실을 무시하고 주관적 판단을 맹신하여 우연적 성공에 매혹되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지도부는 '핵만 갖게 되면' 경제적 곤란도, 국제적 고립도 탈피해서 '김정은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초에 열린 7차 당 대회에서 '경제-핵 병진'을 항구적 전략노선이라 규정했다.

이로써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에 서서 대내적으로는 경제건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핵 군축협상을 추진할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지금 정치적 낭만주의가 옳았다는 기분에 들떠 있을 것이다. 합리적 계산속에서 성공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할 때 북한은 모험주의에 경사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대북제재 국제공조만 이루어지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통일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를 위해 '과감히'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했다. 국제공조를 이루기 위해 내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희생정신에 국제사회는 유엔 안보리 결의 2270호라는 '유례없이 강경하고 실효적인' 대북제재로 화답했다.

한국 정부의 정치적 낭만주의가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를 바꾸게 해 초강수 국제공조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이제 북한이 죽는 소리를 하며 무릎을 꿇을 차례였다. 그런데 북한은 제7차 당 대회로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고, 중국은 그런 북한의 손을 잡아주려 하고 있다.

지난 6월 1일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의 방중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받아들여 면담하는 모습에, 한국의 주요 일간지 논평들은 '국제공조'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는 그만큼 한국 정부의 믿음이 국민 일반에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와 동시에 이러한 논조들은 국민들이 어렴풋이나마 국제정치의 실상과 '국제공조'의 허구를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지난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남을 가졌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중간 힘겨루기 속에서 북핵 문제가 갖는 의미

6월 1일의 리수용-시진핑 회담은 앞뒤에 G7과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를 배치해 놓고 볼 때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지난 5월 26일과 27일 일본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린 G7은 철저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치쇼로 일관된 것이었다.

일본 신화의 기원이자, 전전의 천황제 군국주의의 기원이기도 했던 이세신궁을 회담 장소로 선정한 것에서부터 불순한 의도를 읽을 수 있지만, 이는 차치하고라도 아베 총리는 G7을 이용해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은폐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정상선언에 포함시킴으로써, 적어도 일본 국내적으로는 유능한 리더십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에 더해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広島) 방문으로 아베의 국내적 지지기반은 더욱 확고해졌고, 미일 동맹은 더욱 강고해졌다.

냉전기 소련에 대해 서방세계의 단결을 과시하고 선진국들에 의한 세계경제 조정의 장이었던 G7은, 이세시마 회의에 와서 중국에 대한 미일 동맹의 의지를 표명하는 장이 되어버렸다. 중일 갈등의 기원인 동중국해 문제와 미중 갈등의 기원인 남중국해 문제를 하나로 엮어 이 지역에서의 중국의 태도를 견제하는 것이 G7에 임하는 미국과 일본의 공통목표인 것처럼 보였다.

27일 오전에 발표된 정상선언에는 해양안전보장과 관련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고, 이 지역에서 해상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는 입장을 공유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당연히 중국은 이에 반발했다. 26일 <신화통신>은 논평을 통해 "주요 7개국은 세계 평화와 안정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거나 부정적 영향을 줄 게 아니라면, 남에게 손가락질하며 갈등을 부추길 게 아니라 자기네 일이나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발끈했다.

정상선언이 나온 27일 오후에는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정상선언에 대한 "강한 불만과 철저한 반대"를 표명하고, "이번에 일본은 G7의 주요국이라는 입장을 이용하여 남중국해 문제를 들고 나와 긴장을 조성했다"고 하며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난했다.

비난의 화살을 일본으로 돌린 것은 6월 6일과 7일로 예정된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의 부담을 덜어보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중국은 북한의 방중단이 전달한 김정은 위원장의 구두 친서를 받아들여, 당 대회 이후 여러 방면, 여러 수준에서 대화를 요구해 온 북한에게 외교 무대 복귀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중국은 G7의 '중국 때리기'에 '북한 끌어안기'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김정은은 구두 친서에서 "조선반도와 동북아 평화안정 보호에 있어 북중 공동노력"을 바란다고 전했다. 이는 7월 11일로 55주년을 맞이하는 북중 우호조약을 상기시키는 것이자, 이를 전후한 북중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국제정세 전개 여하에 따라,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표명 여부에 따라 김정은과의 정상회담도 시야에 넣고 계산을 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북한 끌어안기'를 통해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를 앞두고 유효한 카드를 한 장 손에 쥔 것으로 보였다.

미국도 유효한 카드가 필요했다. 중국이 북한의 접근을 받아들이고 있는 데 대해 미국은 대북 제재 강화로 응수했다. 그러나 그 타깃은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베이징에서 시진핑과 리수용이 만난 직후 미 재무부는 지난 2월 미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라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가 효과를 볼 경우 세계 금융기관들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꺼리게 될 것이며, 북한의 자금줄이 경색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현행법에 따라 이미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북한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금지되어 있어서 직접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며, 제3국의 위장회사 등을 통해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는 우회 경로를 차단하는 간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조치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었다.

아울러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의 대부분이 중국의 소도시의 지방은행들이며 간접 거래의 대상도 대부분 중국의 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중국 정부가 이를 적발하여 제재할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렇다면 이 조치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중국은 이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이는 미국 국내법에 따른 일방적 제재라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화춘잉 대변인은 "그 어떤 국가가 자신의 국내법에 근거해 다른 국가에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하여 안보리 결의의 이행을 통한 접근을 강조했다.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 대한 G7의 논법이 이번에는 대북제재를 둘러싸고 중국의 논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반발은 당연히 예견된 것이었다. 중국은 지난 2월 미국이 대북제재법을 통과시켰을 때에도 홍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이 반대의 뜻을 밝힌 적이 있다. 미국의 대북제재법으로 인해 북한과 거래가 가장 많은 중국 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당시 홍레이 대변인은 "중국은 그 어떤 '핫이슈'에 대해 단순한 제재나 압력 부과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관련국들이 신중하게 행동함으로써 인위적으로 말썽을 만들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재무부 조치의 발표 이후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으로 '이란식 제재'를 선호한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여러 나라의 금융기관들이 미국과 공조해 이란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들에 제재를 가하지 않아도 효과를 거두었다고 발언했다.

사실 미국은 이란 방식의 북한 적용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조언했던 로즈 가트묄러 핵군축-비확산 담당 국무차관은 작년 8월 이란 방식의 북한 적용 가능성에 대해, 이란이 비핵화를 결단한 데 반해 북한은 이를 결단하지 않았다며, '이란과 북한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후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보유국'을 공식 선언하는 등 '이란과 북한의 차이'는 더 명확해졌다. 그럼에도 미국이 '이란 방식'을 선호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 지난 6~7일 이틀 동안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미중 경제 전략 대화가 열렸다. 왼쪽부터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리우얀동 중국 부총리, 왕양 중국 부총리 ⓒAP=연합뉴스

실리외교로의 전환으로 파국을 막아야

미·중 전략 및 경제 대화에서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지속적인 제재를 위한 공조를 강조하며, 이란 핵타결을 모델로 삼아 북핵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이에 중국은 유엔에서의 다자제재에 동참하되, 독자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한편 미중 대화에서는 북핵 문제보다도 남중국해에서의 대치가 더 크게 부각되었다. 미국이 "어떤 국가도 일방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데 대해, 중국은 "국가 주권 및 안보, 존엄과 영토를 결연히 지킬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간 안보대립은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 직전에 개최된 싱가포르의 샹그릴라회의(6.3~5)에서도 표출되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남중국해 문제를 제기하며 중국을 압박했고, 쑨젠궈(孫建國) 중국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미국을 '역외국가'로 치부하고, 이러한 일부 국가들의 도발 때문에 과열양상을 보인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북핵 문제는 점차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무대에서 부차적인 주제로 밀려나고 있다. 대신 남중국해로 상징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구축을 둘러싸고 미중 사이에서 거대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북핵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이 게임에서 미국과 중국이 필요할 때 만지작거리는 카드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북핵 '국제공조'도 이 게임에서 미국과 중국이 속도를 조절하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이용되는 카드로 전락하고 있다.

패권국 스파르타에 신흥 강국 아테네가 맞섰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의 언저리에서 위험한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한반도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이 국제정치의 현실적 계산 능력을 잃고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한 계기를 1967년 12월의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의 새로운 10대 정강 발표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북한은 '남조선에서의 혁명적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정신적 물질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남조선 혁명에 올인하며 통일대박을 꿈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통일을 위해 용인될 수 있었다. 일본인 납치도 그런 분위기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 박정희 대통령은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제정치 현실을 학습하며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실리외교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1968년의 청와대 습격사건과 푸에블로호 사건을 거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오히려 이데올로기보다는 국익 중심의 외교로 전환했다. 1970년대 초에는, 비록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일본을 우회한 '중공'과의 국교정상화 마저도 구상할 정도로 그는 외교에서 실리를 추구하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선친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그의 실리외교일 것이다. 한반도를 정치적 낭만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여 정치적 현실주의의 장으로 옮겨 놓고, '주고받는 기술'인 외교의 무대로 복귀시켜야 한다.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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