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인 의류·직물 분야에서 대학원까지 마쳤다. 국내 유수의 의류 대기업에 취직했다. 3년 넘게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옆자리 선배들의 모습이 10년 후의 내 모습이겠다.'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냈다.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났다. 이미현 조합원(37)의 이야기다.
현재 참여연대 국제평화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 조합원은 9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3년 반쯤 회사를 다니니 지치더라"며 "경험삼아 개발 협력 사업 분야에서 봉사를 다녀와 보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다 싶으면 공부를 다시 하든지 직장을 다시 구하든지 해야겠다 싶었다"고 당시의 결심을 설명했다.
'그래도 수천만 원 연봉을 받는 대기업을 그만두는 건데, 망설여지지는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스스럼없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죠, 뭐. (웃음) 그래도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돌아와서 다시 벌면 되지' 했어요."
직장을 그만둔 그는 국제 개발 협력 그룹 '휴머나 피플 투 피플'에서 6개월간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8개월 동안 현장 활동을 했다. 낮에는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위생 관련 사업을 했고, 저녁에는 직업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로 수학과 미술을 가르쳤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국제 관계와 개발 협력 쪽을 더 깊이 공부하려고 관련 대학원에 등록했다. 그러나 개발 협력 분야 역시 그가 정주(定住)할 곳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개발 협력 사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면 할수록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해도 개발 자체가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유엔 인턴으로 스리랑카에 갔을 때였는데,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한 분들이 의외로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돌아와서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가족도 부양할 수 있었다는 만족감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개발 원조보다는) 그들이 한국에서도 '일한 만큼'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게 진짜 '개발'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국내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치는 게 빈곤 퇴치라는 면에서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그가 택한 곳은 대표적 시민 단체인 참여연대였다. 국제 연대 분야의 일을 하다 보니 인권, 민주주의, 빈곤 퇴치 등의 이슈 외에도 민감한 정치적 현안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주한 미군 탄저균 불법 반입, 테러 방지법 등도 그의 '일'이 됐다. 그의 활약상은? 긴 말이 필요 없다. 언론 보도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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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있었던 이날도, 그는 북한의 5차 핵 실험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쁜 상태였다.
"프레시안, 건강하게 유지돼 다오"
<프레시안>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장점으로 "전문가들의 채널 같은 역할을 많이 하고, 좋은 칼럼을 많이 실어 새로운 시각을 개척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꼽았다.
참여연대와 함께 진행하는 '아시아 생각' 기획을 예로 들며 그는 "이런 것은 다른 언론이 다뤄주지 않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시민들의 후원에 힘입어 광고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긍정적으로 봤다"는 말도 했다.
반면 단점으로는 "아무래도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점이 꼽혔다.
마지막으로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때부터 가입하고 싶었다"며 "시민 단체에 있다 보니 <프레시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프레시안>이 건강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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