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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중단 사태, 하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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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중단 사태, 하야하라 [프레시안 뷰] 정치적 봉합은 불가하다

무당이 통치한 나라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우리 군이 최순실의 지휘를 받았을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 비서실장도, 국무총리도 그 존재를 모르는 한 무당이 실질적인 군통수권자로서, 우리 국민들의 목숨과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했을 것이라는 데 이 사건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것이 정상적인 헌정체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무당이 한 나라의 지휘권을 쥐었던 일은, 백여 년 전 러시아에서도 일어났던 일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요승 라스푸틴은 꿈에서 들은 계시를 바탕으로 전선에 나가 있던 니콜라이 2세에게 지시를 내렸고, 수십만의 러시아 청년들은 그들이 누구의 지시에 의해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목숨을 잃어 갔습니다.

혁명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혁명은 한 사회에서 여러 구조적인 문제, 그 중에서도 자유의 속박,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가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에 관련된 우발적인 사건이 발단이 되어 시작됩니다.

인민들은 처음에는 지도자의 진정한 사과를,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지도자의 교체와 정부의 타도를, 정부가 공권력으로 그러한 목소리를 억압할 때는 체제의 변혁을 요구하게 됩니다.

4.19. 5.18. 1987년 6월, 그리고 가깝게는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상황에서 보듯, 인민은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단번에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파편적 사건에서 참을 수 없는 부조리를 바로잡으려고 하다가 종래에는 거대한 진실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그래서, 모든 사실의 완전한 공개와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로, 그것이 아니면 대통령의 하야로, 그것이 아니면 곧 헌정체제의 중단으로 나아갈지도 모르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에서 가장 중대한 위기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봉합은 불가하다

이 나라를 지난 4년 동안 무당이 통치한 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하야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는 신중하고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사태를 사실상 이끌어내고, 조장하고, 즐기고 있는 보수 세력이 원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이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정상적인 일탈자로 만들어서 새누리당과 보수에서 분리하고 다음 대선을 준비하기 위한 절차에 불과합니다. 이 모든 것은, <조선일보>가 의도한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에, JTBC와 <한겨레>가 장단을 맞춰 준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대통령의 개인적 일탈로 만들고, 관련자 몇 명을 적당히 처벌하고, 청와대와 내각을 새로운 보수의 대리자들로 교체하고, 당명을 바꾸고,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반기문 씨가 꽃가마를 타고 대선 후보로 영입되는 것을 멍청히 바라보고 싶지 않다면, 적당히 사태를 봉합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기실 작금의 상황은 특정한 이념적 지향의 분파나, 일부의 지식인이나, 국회의 정치인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이 상황은 당신들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임민주주의가 아니라 주권의 최종적 근거를 인민에 두는 대의민주주의라면, 탄핵이나 하야는 당신들이 아니라 인민이 결정해야 하는 영역에 속합니다.

일반적인 입법이나 행정부의 견제가 아니라, 탄핵이나 하야에 대해 당신들이 하는 행위는 잘 해야 인민의 의사를 받아들여 그것을 절차적으로 승인하고, 선언적으로 치장하고, 사후에 천천히 그 함의를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들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의사를 잘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당신들끼리 여의도에 모여 있을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식당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들이 책무이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당신들이 지금의 지위를 잘 유지할 수 있을지, 혹은 앞으로의 상황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4.19, 5.18, 1987년 6월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몇몇 지식이나, 야당의 정치인들이 아닙니다. 거리의 시민과 학생들이 피로써 지켜낸 것이 이 땅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는 한 무당에게 국정을 농단하라고 지켜낸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의 정치적 위기상황은 여당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러한 국면에서 야당이 섣불리 혹은 너무 늦게 움직인다면 국민들은 곧장 그들의 무능을 매섭게 추궁할 것입니다. 사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당신들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특검은 대안인가?

특검은 이 사건의 법적인 실체를 밝히고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이 군의 통수권자로서, 경제 정책의 최종 책임자로서 더 이상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습니다. 누구도 그의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그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현직 대통령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습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며칠 전 말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결국 수사를 해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질을 추구할 수 없어서, 대통령은 수사도 받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일부 법학자들이 이에 대해 반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무부 장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김 장관은 이 사안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기 전에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먼저 진다는 것입니다. 현직 대통령이 형사의 소추를 받기 위해서는 그 전에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통령에게 물으려는 것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입니다. 대통령이 법을 위반해서 처벌을 받을 것이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정치적으로 대통령 직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특검을 한다면, 특검에서 파헤쳐야 할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대통령의 옷값을 누군가 대신 지불했다는 것입니까? 국가의 기밀이 유출되는 불법이 있었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최순실과 정호성을 불러서 사실을 확인하고 기소하면, 이 사건이 해결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선출되지 않은 누군가가 마음대로 쥐고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몇 사람이 일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 헌법에 명시된 의무를 저버리고 사실상 다른 사람에게 통치를 위임했으며, 그 결과 아무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헌정이 실질적으로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의 핵심이 단순히 개인의 위법함이 아니라 헌정의 실질적 중단 여부를 밝히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대통령 본인을 수사하지 않으면 밝힐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없는 특검은 이 사건의 본질을 흐트러뜨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대통령에게 어떠한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는 검찰이나 특별검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법적 책임을 묻기 전에 어떤 정치적 책임을 먼저 질 것인가를 국민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하야하라

대통령의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모든 실권을 박탈하고 국정 전반의 권한을 거국내각의 총리에게 넘기는 형태로 내년 대선까지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95초짜리 사과로, 연설의 표현을 조언 받았을 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으로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기 전까지는 그런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대통령은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고, 사실을 밝힐 의지도, 용기도 없으며, 무엇보다 그 이전에 지금 이 나라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 능력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국민에게 감춰온 것, 그리고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보여준 행동은, 자신의 형식적 지위를 지킬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은 형식적인 국가원수로서의 자리를 유지할만한 최소한의 자질과 정치적 정당성, 인간으로서의 진실성조차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했습니다. '대통령도 피해자다.'

저는 동의합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은, 자기가 보고 있는 서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정신 나간 무당에게 조언을 구하는 불쌍한 대통령이 아닙니까?

수첩에 적힌 말이 아니면 할 줄도 모르고, 자기 하는 말이 앞뒤가 맞는지조차 분간을 못하고 무당이 시킨 대로 말하기에 바쁜 불쌍한 대통령 아닙니까? 그러니 이 불쌍한 대통령에게서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게 해야 합니다.

보수의 입장에서 보수의 언어로 말하겠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연일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는 이러한 상황에서 군의 최고 통수권자는 국정을 무당에게 물어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헌정 중단 사태를 단 하루도 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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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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