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차기 미국 정부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이 11월 21일 미국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국방 예산을 더 많이 투입하기 위해서는 복지 등 다른 예산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알아서 기겠다?
돈으로 동맹을 따지겠다는 트럼프는 대표적인 예로 한미 동맹을 든 바 있다. 그는 작년 10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을 사실상 공짜로 방어하고 있다. 2만8000명의 주한 미군을 두고 있으며, 한국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게 맡기고 경제적 이익만 챙기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한국을 '안보 무임 승차자(free rider)'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트럼프가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나서면 한미동맹에도 일대 파란이 불가피해질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와중에 나온 장명진 청장의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출범한 상태도 아니고, 또한 미국의 구체적인 요구도 없는 상황에서 '알아서 먼저 기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발언은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한 주한 미군 주둔 비용 분담에 대한 몰이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방위비 분담금은 깎았으면 깎아야지 더 늘릴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제 부담액은 70%
이와 관련해 빈센트 브룩스 주한 미군 사령관의 올해 4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의 설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은 주한 미군 주둔 비용에서 상당한 부담을 하고 있고 기여하고 있다"며 두 가지 핵심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하나는 주한 미군 기지 이전 비용이다. 브룩스는 "용산 기지 이전과 연합토지관리(LPP) 계획에 따른 기지 이전과 전환에 107억 달러(약 12조 원)가 소요되고 있다"며 "이 가운데 한국 측 부담은 91%, 미국 측 부담은 9%"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한미 양국은 2004년에 용산 기지와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키로 합의했고, 연합토지관리계획은 주로 2사단 이전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방위비 분담금이다. 브룩스는 2014년 2월에 체결된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은 2018년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며, 한국이 매년 9000억 원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분담금은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인건비의 "약 75%를 차지하고", "주한미군 전체 주둔 비용의 약 50%"라고도 했다.
브룩스의 이러한 발언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선 "한국이 주한 미군을 공짜로 쓰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이익을 보는 쪽은 미국이다. 이건 펜타곤도 인정하는 바이다. "주한 미군 규모의 부대가 미국 본토에 주둔하려면 엄청난 추가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주한 미군이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강조한 것이다.
또 있다. 미국은 예전에는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의 50%를 부담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브룩스 발언을 통해 이미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더구나 주한 미군 주둔 비용은 방위비 분담금과 기지 이전 비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상으로 제공되는 미군 공여지를 임대료로 환산하면 연간 약 1조원에 달한다. 조세 감면, 카투사, 수도·통신·전기 등 공공요금 감면, 도로·항만·공항 이용료 면제, 철도 수송 지원 등에 따른 혜택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간접 지원을 모두 합치면 연간 1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미 양측이 반반씩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한국 측이 거의 부담하는 기지 이전 비용 및 간접 지원을 포함하면, 현재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매년 약 3조 원 정도 된다. 이 가운데 한국 측 부담은 2조 원을 상회한다. 비율로 따지면 70% 안팎에 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위비 분담금에는 '숨은 그림'이 있다. 방위비 분담금의 가장 큰 부분은 군사 건설비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를 다 집행하지 않고 커뮤니티뱅크에 매년 수백억 원을 예치해 상당한 이자 수익을 누렸었다. 이게 논란이 되자, 한미 양국은 2014년 9차 방위비 분담금 합의(SMA)에서는 군사건설비 중 설계·감리 비용 목적으로 12%만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현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런데도 매년 수백억 원의 불용액이 발생해 이월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방위비 분담금은 늘릴 게 아니라 줄이는 게 이치에 맞다. 다 쓰지도 못하면서 더 달라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고, 이걸 뻔히 알면서도 개선하는 못하는 것도 한심한 일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중시하고 책임 있는 공직자라면 미국에게 이러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협상력도 높아질 수 있다. 장명진 처장의 발언이 대단히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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