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두 번째다. 공교롭게도 모두 TK(대구-경북)에 바탕을 둔 정치 세력이 집권하던 시기에 진행됐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작업은 전두환 정권 시기에 이뤄졌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은 박근혜 정권 시기에 주로 진행됐다. 그때마다, TK 출신 관료 및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건희의 방패가 됐던 신현확, 권익현
우선 첫 번째 승계 작업을 돌아보자.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삼남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기까지 변수가 많았었다. 이병철 창업자의 장남인 이맹희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다. 전 전 대통령의 아버지는 이 창업자가 대구에서 운영하던 삼성 정미소 공장장이었다. 삼성 총수 일가의 집과 전 전 대통령의 집은 개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이맹희 씨는 전두환 신군부 실세였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과 경북고등학교 동기로 친분이 깊었다. 이맹희 씨는 젊은 시절부터 정치 군인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어울렸다. 그리고 전두환의 동생인 전경환 씨는 이맹희 씨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가까웠다. 이맹희 씨 가족은 전두환 신군부와 닿는 인맥이 두터웠다.
이병철 창업자의 마음이 이맹희 씨에게서 떠난 건 박정희 정부 시절이다. 하지만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맹희 씨의 친구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들은 친구가 삼성 경영권을 동생에게 뺏기도록 보고 있을 건가.
이때 이건희 회장의 방패가 됐던 이들이 신현확과 권익현이다. 이른바 TK의 대부로 불렸던 신현확 전 총리는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유언을 남기는 자리에도 참석했었다. 당시 삼성 총수 일가가 아닌 사람은 신 전 총리뿐이었다고 한다.
신 전 총리는 이승만 정부에서 부흥부 장관을 지내며, 제일모직과 제일제당 설립을 지원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하자 신 전 총리도 구속됐다. 부정 선거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수감 직전, 이병철 창업자가 신 전 총리에게 거액을 빌려줬고, 신 전 총리 가족이 이 돈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신 전 총리는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기업인으로 거듭난다. 유신 이듬해인 1973년, 정치권으로 다시 진입했고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거쳤다. 1979년 12.12 쿠데타 직후 이뤄진 개각에서 국무총리가 된다.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다. 신 전 총리는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 다음 날인 5월 18일부터 열흘 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전두환은 대통령이 됐다.
권익현은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의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다. 이들과 함께 '하나회' 구성원이었다.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그는 삼성정밀 전무였다. 전두환 신군부와 삼성을 잇는 고리 역할을 했다.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 그는 정계에 진출했다. 4선 의원으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등을 지냈으며 지금은 새누리당 상임고문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실장을 지냈던 임태희 한국정책재단 이사장의 장인이다. 신현확과 권익현이 없었다면,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게 정설이다.
2014년 <주간조선>에 따르면, 이맹희 씨는 "(전두환 정권 시절) 어느 날, 정호용 군과 노태우 군이 신(현확) 회장을 만나고 오더니 '아무래도 (이맹희 씨가) 삼성 회장으로 복귀하는 건 힘들겠다'면서 '그 문제(이맹희 씨가 이건희 회장 대신 삼성 경영권을 장악하는 일)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이건희 회장의 승계와 관련해, 신현확 전 총리가 했던 역할이 드러난다.
최경환-홍완선, 수상한 대구고 인맥
이번엔 두 번째 승계 작업이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게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째인 2014년 5월이다. 그 뒤,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 작업이 본격화 됐다. 다만 이 회장이 사망한 것은 아니어서, 법적 상속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회장이 하필 박근혜 정부 시기에 쓰러진 건 우연이다. 어찌 됐건, 삼성은 TK 출신 관료들이 힘을 쓰는 시기에 두 번째 승계 작업을 하게 됐다.
지금 삼성의 방패 역할을 하는 건, 누구인가. 제대로 드러나려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조금씩 꼬리를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우선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국민연금이 손해 볼 수 있다는 걸 예상했으면서도,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지지했다. '이재용 체제 삼성'을 만드는 핵심 고리가 된 사건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뤄진 건 지난해 7월 17일이다. 그 직전에 홍 전 본부장은 이재용 부회장을 따로 만났다. 삼성과 국민연금은 이에 대해 "합법적인 경영 활동"이라고 해명한다. 기업 경영자가 대주주(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다)를 만나서 설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다.
두 사람이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이런 만남이 불법 로비인지, 합법 활동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을 앞두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안에서도 반발이 일었다는 점이다.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부를 움직여서 국민연금이 스스로 손해 보는 결정을 하게 했다는 논란이 일자, 기금운용본부 내 일부 간부들이 지난해 합병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간부들은 홍 전 본부장과 이 부회장의 만남에 대해 적극적으로 만류했다는 게다. 홍 전 본부장은 이를 뿌리치고 이 부회장을 만났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민감한 결정에 앞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열도록 돼 있다. 하지만 홍 전 본부장은 외부 인사가 참가하는 전문위원회를 열지 않고 자체 투자위원회 결정만으로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전문위원회 위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홍 전 본부장은 무얼 믿고 그토록 독주했던 걸까.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는 대구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 동기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이른바 '친박' 실세였던 최 전 부총리의 대구고등학교 동문들은 현 정부 들어 크게 약진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국정 감사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적한 사실이다. 당시 박 의원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임환수 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장이 모두 대구고 라인으로, 재벌에게서 세금을 걷는데 침묵하고 있다(세금을 제대로 걷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전 부총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대주주로 있는 한국경제신문에도 몸 담았었다. 이른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기강은 세운다) 공약을 창안한 것도 그다. 재벌과 대단히 가까운 입장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지난해 합병 과정이 다시 주목받는다. 삼성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 노후 자금이 동원됐다는 점에 대한 분노 역시 고조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을 이끌어 냈던 홍 전 본부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리면서 최 전 부총리도 함께 주목받는다.
삼성의 두 번째 경영권 승계 국면, '대구고등학교 인맥의 선두주자' 최경환은 어떤 역할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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