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홍 전 본부장의 임명 과정이 석연치 않다. 그의 후임인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된 데 대해서도 "삼성물산 합병 성공에 따른 청와대의 보은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3년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공모 당시 본부장 선정을 위한 자문위원회의 '지원자별 경력 점수 산정표'를 28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홍 전 본부장은 경력 점수에서 60점 만점에 43.43점을 받아 지원자 22명 중 8위에 그쳤다. 당시 최고 점수는 51점을 얻은 온기선 전 동양자산운용 대표가 받았었다. '지원자별 경력 점수'는 자산 운용 경험 년 수와 운용 자산의 내용 및 성과를 수치로 환산한 것이다.
박 의원은 '지원자 제출 서류 검토 의견서'도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홍 전 본부장은 '상' 평가를 받은 8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 평가를 받았지만, 9명의 면접 심사 대상에 속했다. 요컨대 9명 가운데 유일한 '중' 평가자였다.
그러나 기금이사 추천위원회의 '면접 심사 평가 집계표'에 따르면, 홍 전 본부장은 서류 면접을 통과한 9명 중에서 면접관 6명으로부터 평균 87.00점을 받아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87.67점을 얻은 온기선 후보였다. 기금이사 추천위원회는 이들과 더불어 정재호 새마을 금고 자금운용본부장, 유정상 전 피닉스자산운용 대표 등 네 명을 최종 추천 후보로 선정했고, 최광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등인 홍 전 본부장을 최종 낙점했다.
당시 시장에선 의외라는 반응이 두드러졌다. 국내 자본 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최광 전 이사장은 본부장 선정에 앞서 '국제 감각'을 강조했었다. 홍 전 본부장은 하나은행 법인영업 총괄본부장, 하나대투증권 부사장 등을 지냈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제 감각'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이력이다. 국민연금의 특징을 잘 아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런 면에선 온기선 전 대표가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는 국민연금 운용 역을 지냈었다. '국제 감각' 면에서는 외국계 금융사 경험이 많은 정재호 본부장이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아무 것도 해당하지 않는 홍 전 본부장이 임명됐다.
핵심 단서는 홍 전 본부장이 이른바 '친박 실세'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대구고등학교 동기라는 점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고 한다. 박 의원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면서 삼성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도둑질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건이 발생했다"며 "500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노후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자리인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대구고 동창인 홍완선 전 본부장이 선임되는 과정에서 부당한 외압이 없었는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홍 전 본부장의 후임인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 선임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고 했다. 강 본부장의 경력 점수는 21.0으로 10위였다. 임원추천위원회의 서류 검토의견에는 "주로 소규모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 업무 경력이 과대 포장된 경향이 있음. 실제 자산운용 성과 및 외국어 구사능력에 대한 검증 필요"라고 돼 있다. 하지만 그는 면접 심사 1위를 기록하며 최종 임명됐다. 강 본부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계성고등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1년 후배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이 찬성했던 배경에는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압력이 있었다는 의혹도 있다. 문 전 장관은 현재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다.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소속인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28일 문 이사장에 대해 "삼성 기업 합병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압력을 가해 성공한 데 대한 청와대의 보은 인사"라고 주장했다.
문 이사장은 작년 7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질 당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지난해 말 이사장에 임명됐다.
김 의원은 당시 이사장 추천 회의록을 근거로 "이사장 공고부터 임용까지 기간이 27일에 불과했고 응모자는 단 3명이었다"며 "처음부터 문 전 장관을 이사장으로 임명하기 위한 시나리오"라고 규정했다.
통상 공공기관장 인사는 공고 기간만 15~20일이 걸리고 서류 심사와 면접 심사는 약 20일 이상 걸리는 것이 관례인데 이를 무시하고 속전속결로 처리했으며, 응모자가 3명에 불과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어서 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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