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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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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하지 말자 [이관후 칼럼] 우리는 괴물같은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박근혜가 검찰에 출두한 다음 날, 세월호가 올라왔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3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며칠 뒤 4월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그날 오전 저는 지하철에 타고 있었습니다. 몇 정거장 지났을까. 한 무리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하철에 탔고, 승객들은 그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무거운 정적이 지하철 안에 가득 찼습니다. 그 때, 한 아주머니가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애써 누르며 흐느꼈습니다. 마치 제방의 한 귀퉁이가 무너진 것처럼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아이들도 따라 울었습니다. 아무도 소리 내어 울거나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목이 메어오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 시간들을 견뎠을까요.

한동안 아내는 잠들 때 불을 끄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어두운 물속에서 구조를 기다렸을 아이들의 공포가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우면,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고 방바닥에서부터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책상에 앉아 메모를 적었습니다. '용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하지 말자.'

▲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 ⓒ사진공동취재단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일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스쳐갑니다.

아이들이 어두운 물속에 갇혀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때, 모든 국민들이 눈물로 지켜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미용사를 불러서 머리를 올리고 있었던 사람.

선장과 선원, 구조에 투입된 해경, 유병언을 참사 원인으로 지목하고, 청와대는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지시했던 사람. '세월호 특별법-국난 초래', '세월호 인양-시신 인양(X)'라고 명령을 내린 대통령 비서실장.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본청을 수사하고 있던 광주지검에 전화를 걸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그것이 통하지 않자 영장 범위를 문제 삼으며 거듭 압수수색을 방해했던 민정비서관.

세월호와 관련해 공연을 하고, 책을 내고, 성명을 발표한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조직적으로 탄압했으며, 반세월호 관제데모를 지시하고 지원한 장관.

그 외에 청와대에서, 국정원에서, 해경에서, 검찰에서, 국회에서,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수많은 사람들. 이 모든 것에 대해 한번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스스로 언론임을 자처했던 사람들.

그들은 분명 용서받을 수 없는 세월호의 적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화면 갈무리

단지 그들만은 아니다

그러나 단지 그들만은 아닙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편으로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보며 눈물지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한경쟁과 출세지상주의의 세상을 묵묵히 살아갔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박근혜가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무시무시한 괴물과 괴물 같은 사회를 만들어냈고,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세상에서 잘도 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다른 누구보다 옳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문자폭탄을, 욕설댓글을, 저주를 퍼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진리이고, 그것을 위해서 작은 불법을 저지르거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은 대의를 추구하다 보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정치적 대표들은 이에 침묵하거나 때로는 불가피한 일이라면서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비난하는 다른 진영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들 역시 같은 진영에 속한 한 편이지 않았습니까? 부르는 말이 다를 뿐이지,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댓글부대를 모집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마구잡이로 선거인단을 등록시키는 일들에서, 그들은 자유롭습니까? 이것이 이전과 다른 정치입니까? 새로운 정치입니까?

노무현과 김대중의 후예들이니 믿을만하고 잘 할 것이라고 믿는 그 생각이, 박정희의 딸이니 잘 할 것이라는 생각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이, 어려서 부모가 총 맞아 죽고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산 공주님을 안타까워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지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마치 세상이 바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치유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의 범위 같은 가짜 문제를 둘러싸고 말꼬리 잡기와 감정싸움이나 벌이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정말 세상으로 나온 세월호 앞에 당당할 수 있습니까? 세월호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세상에 나와 일하고 있다면, 그 아이들이 맞부딪치게 되었을 세상은 지금 어떻습니까?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대학생들의 월세방과, 쳇바퀴 돌 듯 끝나지 않는 박봉의 아르바이트와, 취업체험이라는 명목으로 자살에 이르게 하는 비참한 감정노동과, 사발면을 싸들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숨져간 비정규직 청년이 사라지도록, 우리는 무언가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그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세상을 제대로 바꾸기 위해서 잘 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용서할 수 없는 그들 중 하나는 아닙니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없었던들, 박근혜 정부가 단지 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헌법재판소가 인정하든 안하든, 세월호 7시간이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월호에 관한 모든 진실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해서, 정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회피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고, 미래의 비전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무엇보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눈이 시리게 아픈 3월의 봄날 입니다. 세월호 노란 빛, 개나리가 첫 잎을 피어 냅니다. 희망의 빛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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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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