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이 끝나간다. 결과야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일이지만, 이번 대선은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 말고도 흥미로운 관심거리가 많다.
무엇보다 원내 기반을 지닌 다섯 후보가 다양한 정치색을 대표하며 경쟁한다는 점이 그렇다. 아마도 제6공화국 들어서고 처음으로 '주요 주자'가 4명이 넘은 대선 아닌가 한다. 워낙 1위를 달리는 후보와 나머지의 격차가 크기는 하지만, 아무튼 마치 결선투표제 있는 나라의 대선 1차전을 보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한때 양강 구도의 한 축으로 점쳐지던 후보의 지지층이 쉽게 구심력을 잃는 것도 목격했고, 4, 5위 후보가 TV 토론회를 거치며 상당히 의미 있게 지지 기반을 늘리는 것도 봤다. 사뭇 역동적이다. 이는 1위 후보 지지율이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과 대비돼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이 양상은 대선이 끝난 뒤에도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 현상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만큼이나 대선 이후 한국 정치에 중요한 변화의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대중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일시적 요동이 아니라 한 세대만의 격동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양대 대중블록
나는 4월 11일에 <프레시안>에 실린 칼럼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는 대선 완주하라 - '양당 정치' 대 '다당 정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바로 가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블록(bloc)'으로 존재한다. 계급도 있고 세대도 있고 정체성 집단도 있지만, 이를 가로지르거나 아우르는 블록이야말로 권력에 영향을 끼치는 실체다. 정치를 배제한 일체의 환원론(계급 환원론이든 세대 혹은 지역 환원론이든)이 설명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런 까닭에 대중정당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블록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 데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항상 대중정당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약간의 부연 설명을 덧붙여야겠다. bloc은 우리가 흔히 쓰는 영어 단어 block과 발음도 같고 어원도 같다. 하지만 고체 덩어리를 뜻하는 block과 달리 bloc은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한 정형화된 집단은 아니다. 일상에서 늘 구심력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영향 아래 있는 이들한테 당원이나 회원, 조합원에 준하는 소속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블록은 차라리 자기장에 가깝다. 자력을 발휘하는 구심이 있을 뿐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항상 눈에 띄게 자력이 작동하는 것도 아니어서 평소에는 블록의 존재 자체가 의문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정치적 순간이 닥치면 곧바로 강력한 자기장이 구축된다. 서로 방향을 달리 하던 여러 흐름들이 자기장의 중핵을 동심원처럼 에워싸며 재배열된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세력'은 이런 대중블록의 형태로 존재하며 운동한다.
블록을 응집시키는 역할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유기적 지식인'이라 칭한 사람들의 몫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각 블록의 구심인 대중정당 말고도 언론, 학교, 시민사회 단체들에 포진하며 특정한 세계관을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오늘날은 정보화로 유기적 지식인층의 폭이 더 두터워지는 중이다. 굳이 대중매체나 대학에 속하지 않아도 블로그나 팟캐스트, 심지어는 가짜 뉴스 유포를 통해 특정 대중블록을 응집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가히 유기적 지식인의 '민주화(?!)' 시대다.
내가 보기에 그간 한국 사회에는 단 두 개의 대중블록만이 존재했다. 이 두 블록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오랜 역사적 상호작용을 통해 구축됐다. 하나는 범민주당 블록이다. 모든 쟁점을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의 두 축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니 '민주-평화' 블록이라 부를 수도 있다. 다만 여기에서 '민주'와 '평화'란 보편적인 민주주의나 평화 자체는 아니다. 상대편 블록이 내세우는 가치들과 끊임없이 대조되면서 구체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민주'와 '평화'다.
또 다른 블록이란 범새누리당 블록이다. 위의 '민주', '평화'에 맞서 여기에서는 '경제 성장'과 '반공-반북'이 두 기둥 노릇을 하므로 '성장-반공' 블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범민주당 블록이 아니라 이들이 먼저 구성됐다. 범민주당 블록이 오히려 이들에 맞서 형성됐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이들 역시 범민주당 블록과 경쟁하며 새롭게 재구성됐다. 3당 합당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야당 경험 등이 그러한 재편의 계기였다.
촛불혁명은 이 두 블록 중 한 쪽을 처참하게 와해시켰다. 촛불'혁명'이란 호칭에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많지만, 양대 블록 중 하나, 그것도 70여 년 묵은 지배블록에서 비롯된 쪽을 쪼개고 쭈그러뜨린 사건은 충분히 '혁명'적이다. 자유한국당이 선동가 기질의 홍준표 후보를 내세워 기사회생하고 있다지만,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최대치는 20%를 넘지 못한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35% 지지율은 지킨다던 범새누리당 블록의 위용은 분명 과거의 일이 됐다.
그렇기에 지금은 범민주당 블록의 독주 시대다. 허물어진 범새누리당 블록 외에는 이들이 상대할 '블록'이라 할 만한 대중적 구심이나 세력이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압도적 지지율과 당선가능성으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가 가다만 길, 진보정당에 열린 길
한 사회 안에 반드시 두 개보다는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대중블록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블록의 존재는 지나친 파편화와 부족화를 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대 블록이 팽팽히 맞선 지난 십 수 년 간 한국 사회의 심각한 모순들이 어느 하나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는 사실을 돌이켜봐야 한다. 범새누리당 블록과 범민주당 블록이 익숙한 논쟁만 주고받는 가운데, 비정규직은 늘어나기만 했고 여성의 고통은 항상 뒷전으로 밀렸으며 교육과 주거 불평등은 심각해졌다.
위에 인용한 한 달 전 칼럼에서 나는 이제 양당 정치가 아니라 다당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달리 정식화하면, 범새누리당 블록과 범민주당 블록 말고 새로운 대중블록(들)이 등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두 블록이 대표하던 세계관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계관(들)이 시민사회 안에서 큰 흐름을 이뤄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순간마다 기존의 두 구심 말고 또 다른 구심(들)이 자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주체의 범위가 시민들 내부의 다양성에 걸맞게 보다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제를 중심에 두고 바라보면, 안철수 후보가 이룬 바와 잃은 바가 확연히 드러난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안철수 후보의 선거운동이 승승장구보다는 우왕좌왕에 가까웠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안철수 후보야말로 새로운 대중블록 구축 시도라는 점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사례다. 1987년 이후 선거 때마다 제3당의 도전이 이어졌고 그 중에는 꽤 바람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단명하고 말았다. 독자적인 대중블록을 구축하는 데까지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주영의 야심찬 통일국민당조차 그랬다.
안철수는 좀 달랐다. 그는 2008년 촛불의 주인공이었던 젊은 세대에게 호소력을 발휘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청년층이야말로 양대 블록의 강력한 자기장 바깥에서 새로운 대중블록의 중핵으로 나설 역량과 가능성을 지닌 첫 번째 집단이다. 안철수는 이런 청년층에 바탕을 두고 기성 양대 정당에 도전하는 새로운 정치 기획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안철수 흐름은 이러한 전망으로부터 비껴나기 시작했다. 범민주당 블록의 일부를 떼어내 좀 더 안정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2016~2017년 촛불 이후에 와해돼가는 범새누리당 블록의 일부를 흡수하려고 우경화 전략을 취한 게 잘못이었을까?
어쨌든 주된 오류는 기성 양대 블록의 이러저런 요소들을 조각보처럼 이으면 새로운 대중블록이 구축될 수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 점이다. 차라리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강조한 "무능한 상속자의 나라" 비판에 주력했더라면, 결과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의 확대 반복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안철수가 가다만 이 길의 어디쯤에 지금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이 서 있다.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될 때만 해도 3%에 머물렀던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이후 2배, 3배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지율 상승 자체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상승을 이끄는 집단이다. 20대와 여성(혹은 둘의 교차인 20대 여성)에서 지지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정의당 안에서 먼 미래의 꿈으로 이야기되던 '청년과 여성의 정당'이 돌연 현실이 된 것만 같다.
사실 진보정당은 안철수 현상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제3의 대중블록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좌절을 거듭했다. 진보정당은 오히려 범민주당 블록의 왼쪽 구성원 혹은 압박자 정도로 치부되는 형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민주당과 빈번히 선거연합을 맺은 탓이 크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때로 거슬러 올라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 여야의 구별이 명확했음에도 두 당 지지율은 동반 상승하거나 동반 추락했다. 민주노동당의 주된 지지층인 조직 노동과 30대 화이트칼라가 범민주당 블록 혹은 민주-평화 블록의 핵심 구성 요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범민주당 블록으로부터 떼어낸다거나 아니면 이들을 바탕으로 민주-평화 블록을 통째로 인수한다는 구상은 도상(圖上)훈련에 그쳤다.
그런데 촛불혁명 뒤에 열린 조기 대선은 진보정당에게 예기치 않은 새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비록 범민주당 블록은 굳건하지만 범새누리당 블록의 구심력이 무너졌기 때문에 양대 블록 전체의 규정력은 현격히 약화됐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이전에도 양대 블록의 주변에 머물렀거나 바깥에 포진하던 집단이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전에 없던 과감한 선택을 하고 있다. 정치 기피층이 심상정 후보의 열혈 지지자가 되는가 하면 새누리당에 표를 던졌던 이들이 정의당 지지로 돌아서기도 한다. 지금 그 맨 앞에 선 게 여성과 20대다.
이 흐름이 이번 대선 한 번으로 끝나고 말 것 같지는 않다. 대선은 오히려 시작이다. 기성 양대 블록의 자기장 바깥에서 대안을 찾고 다지려는 움직임은 대선 이후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대중이 바뀌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초기 안철수 현상에 잠재했던 가능성을 진짜 목숨 걸고 실현할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일단 첫 번째 눈길이 쏠린 곳은 심상정 후보의 정의당이다. 지난 20여 년간 시시포스의 노동을 거듭해온 진보정당운동에게 이는 뜻밖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전대미문의 시험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선 '이후'가 더 고민되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마지막으로 공표된 여론조사들과 얼추 비슷한 득표율(7~11%)을 거둘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많이 받을 수도, 더 적게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종 결과가 무엇이든 정의당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처음 열성 지지층으로 떠오른 청년, 여성, 성소수자 등을 굳건한 지지 기반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기성 양대 블록과는 다른 새로운 대중블록, 진보적이되 민주-평화 블록과 구별되는 세계관으로 다져진 대중블록을 구축하는 일이다.
대선 이후 정의당은 이 한 가지 목표에 따라 자신의 현재를 재점검하고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협치든 대결이든 새 정권과의 관계도 오로지 이 목표의 실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중심에 놓고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심상정 바람'에서 확인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거의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
대중이 변화하는 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사회 변화를 이루려는 정치 세력으로서는 그런 때를 살아보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기회가 또 없다. 지금이 그 때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진보정당이 창공을 향해 뛰어올라야 할 바로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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