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한 혐의를 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데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조 전 장관의 경우, 블랙리스트를 적극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묵인 방조한 의혹은 깨끗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검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 전 장관 등이 지시를 내리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문화·예술인 성향 명단을 분류하고, △해당 명단을 받은 문체부가 집행하는 순으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문화계 인사 지원 배제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의 관여 사실은 인정되지만 조 전 장관이 지시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조 전 장관에게 블랙리스트 관련 부분 무죄를 선고했다.
특검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은 2014년 7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취임한 뒤 전임자인 박준우 전 수석에게서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정책 기조를 전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이 공개한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진술에 따르면, 박 전 수석은 조 전 장관에게 전화로 블랙리스트 업무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직접 만날 것을 청했고, 박 전 수석은 서울 시내 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조 전 수석을 만나 블랙리스트 업무, 즉 '민간단체 보조금 TF' 등에 대해 설명했다. 박 전 수석은 특검에 당시 상황에 대해 '(조 전 장관이) 이런 일을 다 해야 하느냐'고 물어서 '대통령이 여러 가지를 직접 챙긴다'고 답해줬다"고 진술했다.
김모 전 문체부 예술정책과장 또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조 전 장관이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준비할 당시 '블랙리스트' 관련해 추후 따로 보고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 전 장관은 이와 관련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장관은 정무수석 취임 2개월 뒤인 2014년 9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을 상영하기로 하자 여론전을 지시한 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다이빙벨을 비롯한 문화에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직후다.
특검은 이외에도 조 전 장관이 △ 2014년 11월, 정관주 소통비서관 등에게 '좌파생태계에 대한 대응방안과 관련해 TF 정무비서관실과 협업하라'고 지시 △동성 아트홀 등 일부 예술전용관에 대한 지원 중단,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 지시 △ 정 비서관에게 '세종 도서 선정에 좌파성향 저자가 선정되지 않도록 교문수석실에 적극 협조' 지시 등 지원배제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며 징역 6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조 전 장관은 민간단체보조금 TF 활동 결과를 개략적으로 보고 받았고, 명단 검토 작업 역시 실제로 하지 않았다"며 "조 전 장관이 지원배제에 관여하는 것을 지시하거나 이를 보고 받고 승인하는 행위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근거로 정 비서관이 "조 전 장관에게 (지원배제) 명단 검토 업무에 대해 지시를 보고 한 바 없다", "조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면 지원배제 업무가 중단될 수도 있었는데 후회된다"고 한 진술 내용을 제시했다.
영화계에 지원을 중단하거나 삭감한 혐의도 무죄로 봤다. "동성 아트홀의 지원을 보류한 것은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에 부임하기 전인 2014년 4월 24일 일어났다"며 "이후 지원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조 전 장관이 가담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또 부산국제영화제의 지원금을 삭감하는 과정에서도 조 전 장관이 개입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위증 혐의에 대해선 유죄로 판단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10월 13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은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문체부 국장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그럼에도 지원배제 대상자 명단의 존재를 두고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기억에 반해 진술해 위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직접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연극 '개구리',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등을 거론하며 정부 비판 문화예술인에 대한 정부 지원 중단 방침을 마련하도록 지속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나아가 김 전 실장이 블랙리스트 시행에 소극적인 문체부 1급 실장 3명에 대해 김종덕 전 장관을 통해 사직을 강요하도록 했다며 강요 행위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강요 혐의에 대해선 "예술위 직원들이 사업이나 인사권한을 가진 문체부의 지시를 사실상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형법상 폭행과 협박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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