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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우리가 닦을 테니 대통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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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우리가 닦을 테니 대통령은… [이관후 칼럼] 촛불 시민은 국정의 수혜자가 아니라 파트너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획기적인 내용들이 대폭 포함되었습니다. "2022년까지 국민 모두가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재정입니다. 5년간 30조6000억 원이 필요한데, 그 중 절반 정도를 건강보험 누적흑자에서 충당하더라도 절반 정도가 부족합니다. 대통령은 "국가가 재정을 통해 감당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정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국가가 무한정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기관이 아니라면, 재정을 감당할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 국민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을 분명하게 하자면, 5년 간 15조 원 정도의 세금을 투입해서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 100대 국정과제 발표가 끝난 직후 열린 경제관계장관 회의에서 김부겸 행자부장관이 총대를 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정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재원조달 방안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좀 더 나은 복지 등을 하려면 형편이 되는 쪽에서 소득세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정직하게 해야 한다. 표 걱정한다고 증세문제 얘기 안하고 복지는 확대해야 하는, 언제까지나 이 상태로 갈 수는 없지 않느냐."

김장관의 물음에 김동연 부총리는 "법인세와 소득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재정당국이 여러 가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누가 정치인 출신이고 누가 공무원 출신인지 알 수 없는 대화였습니다.

▲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대통령이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니다

옳은 일에 대한 사명감과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정치에서 그렇지만 특히 민주주의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난 국정과제 발표 형식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단히 흡족해서 그것을 연출한 행정관을 칭찬한 모양입니다만, 여러 사람들은 그럴싸했던 비주얼은 핵심이 아니며 발화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개조식 글쓰기 형식의 국정과제 발표에서는 정책목표가 나열되었을 뿐이지, 주어가 빠져 있는데다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물론이고,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특히 아쉬웠던 것은 국정과제가 국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인 것처럼 보였다는 점입니다. 조금 오해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마치 새로 등극한 왕이 국민들에게 '이것을 해 주겠다' 하면, 그것을 보는 국민들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며 박수를 치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이전의 왕이 주술사의 딸에 빠져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도통 관심이 없었던 것에 비하면, 새로 뽑힌 왕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군의 자질이 넉넉한 왕입니다.

그럼에도 왕과 대통령은 다릅니다. 건강보험 대책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자와 가족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눈물을 닦아드린다'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문장의 주어는 대통령 아니면 국가입니다. 그런데 뒤 문장에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하는 표현에서 볼 때 국가가 나라를 만들 수는 없으니, 결국 주어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문장 하나 가지고 토를 단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전체 발표 내용 중에서 30조원의 예산을 들여서 이 정책을 왜 시행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이 문장에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지향하는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국민이 아픈데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의료비 부담으로 가계가 파탄 나는 나라, 환자가 생기면 가족 전체가 함께 고통 받는 나라'는 당연히 고쳐져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국민 서로가 낸 세금으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지 대통령이 혼자서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일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적 이벤트지만, 정책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우리가 낸 보험료와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라를 함께 밀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의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동의와 지지를 구하는 내용에는 추상적인 방향 뿐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어느 정도의 부담을 함께 지고 갈 것인지, 어떤 불편함을 함께 나눌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동의가 결국 정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건강보험 대책의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재정부담에 대한 내용은 거의 설명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그 길에 함께 가자고 하기 보다는 '국가'라는 모호한 표현을 통해 방향의 옮음과 시혜성을 강조했습니다.

과거에는 통했습니다. 산업화든 민주화든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고, 국민들은 그들의 손가락의 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촛불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시민이 먼저 나서고 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이 따라왔습니다.

물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항상 정치를 선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정치와 정책을 바꾸고 실행하는 주체가 국가나 정부만은 아닙니다. 그런 정책은 실패합니다.

'우리 같이 갑시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 중에 "자, 우리 같이 갑시다"하는 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가가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는 표현이 자주 보입니다.

촛불 시민들은 얼마든지 짐을 함께 나눠 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노인들을 더 부양하려고 하고,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촛불 시민을 믿으십시오. 더 많은 복지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촛불 시민들은 부담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정부가 '이것이 옳은 길이니 나를 따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려 하면, 그것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서로 서로를 설득하고 함께 갈 것입니다.

지금은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과반이 안 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다는 점을 청와대가 잊지 않기 바랍니다. 폄하가 아니라 정책의 수행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늘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지방선거에서 이긴다고 국회 의석이 바뀌지도 않습니다.

촛불에 동의했지만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 그러나 국정을 지지해주고 있는 30%의 지지를 잃으면 이 정부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이 정부가 촛불 정부이고, 이 정부의 버팀목이 촛불 시민이라면, 그들을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동료로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합니다. "자,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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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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