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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인격 살인, 스포츠저널리즘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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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인격 살인, 스포츠저널리즘은 죽었다 [최동호의 스포츠당] 축구선수 김영권은 정녕 관중 탓을 했나
보시라! 또 들으시라! 인터넷에선 국가대표 김영권의 인터뷰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관중 소리가 크다 보니까 경기장 안에서 사실 소통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소리 질러도 잘 들리지도 않고 소통을 저희가 계속 연습해왔는데, 그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고 그리고 우즈벡 가서도 이런 상황이 또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 준비를 해야 될 거 같아요."

진정 관중탓으로 들리시는가? 정말 응원탓으로 받아들이시는가? 아니다. 김영권은 관중탓을 하지 않았다. 응원탓도 아니다. '경기 중 어떤 점이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응원 함성에 소통이 힘들었다'는 점을 밝히며 '우즈베키스탄전에선 이에 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저널리즘 아닌가?

27살 국가대표 김영권은 난도질 당했다. 말로 글로 무참히 찢겼다. 부족했는가? 김영권은 다시 카메라 앞에 세워졌다. 처참했다. 확인사살인가? 여론재판인가? 인격적으로 발가벗겨진 채,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김영권은 무조건 빌어야 했다. 무자비한 언론의 조리돌림은 분명 폭력이었다. 분명 김영권은 신음 한 번 내지 못한 채 처참히 쓰러진, 그래서 바람 한 줌 쥘 힘마저 소진된 채 무조건 살려달라고 빌어야만 하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천인공노할 죄인의 형틀을 뒤집어 써야만 했다.

축구협회는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난도질 당한 김영권을 카메라 앞에 세우지 말았어야 했다. 인격살인. 김영권은 언론에 의해 한 번 죽고 축구협회에 의해 두 번 죽었다. 묻고 싶은 것은 김영권의 죄가 아니다. 스포츠저널리즘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스포츠저널리즘이란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사단은 언론 보도다. 언론이 전한 김영권의 인터뷰는 "관중들의 함성이 커 선수들끼리 소통하기가 힘들었다", "훈련하면서 세부적인 전술을 맞춘 것들이 있는데 관중들의 함성이 커 소통하기가 힘들었다",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아 답답했다"로 둔갑했다. 비난의 화살이 꽂히며 경기 다음 날인 9월 1일 새벽부터 김영권은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면 뉴스가 뉴스를 부른다. 어뷰징 기사, 검색어를 꿰맞춘 기사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김영권 이슈는 폭발했다. 마녀사냥 하듯, 희생양 찾듯, '관중탓'이 이슈로 만들어졌다.

영악한 것인가? 아니면 흥미진진한 기사를 만들어 내는 기술자였던 것인가? 몰고 갔다. 관중탓이라고. 누군가는 나서야 했다. 김영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터뷰를 부분 발췌해 주홍글씨를 새기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면, "이것은 폭력이라고", "언론의 횡포라고", "왜곡"이라고 누군가는 보도했어야 했다. 이겼어야 할 경기에서 비긴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분통을 터트린 것이라면 차라리 잔디탓을 겨냥했어야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잔디 재난'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란전이 엄동설한 한겨울에 열렸다면, 그래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면, 눈보라에 미리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수라면, 감독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잔디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가히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 할만하다. 진실은 이미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흥미진진한 기삿거리를 찾지 않는가? 조금이라도 반응이 보이면 자극하고 과장하고 입맛에 맞춘 기사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지난달엔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 벌어진 심판의 갑질 기사가 잠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기자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전해들은 얘기만을 듣고 쓴 추측 기사였다.

'김영권 관중탓'을 토해 낸 수많은 기사들. 그 중엔 김영권 인터뷰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작성된 것도 많으리라. 어뷰징이 무엇인가? 베껴 쓰는 기사 아닌가? 똑같이 베껴 쓸 순 없으니 이리 비틀고 저리 틀면서 과장하고 자극하지 않는가? 베껴 쓰는 기사. 최초 기사가 오보일 때 줄줄이 오보를 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수차례 집단 오보 사태를 경험하기도 했다. 김영권은 정녕 관중 탓을 했는가? 아니면 언론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듣고 싶은 건 김영권의 사과가 아니라 '기자님'들의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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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YTN 보도국 스포츠부 기자를 시작으로 IB스포츠 신사업개발팀장을 역임했다. 현재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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