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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약속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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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약속 지켜주세요" [현장]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부산에서 청와대 앞까지 국토대장정

"누구 하나 죽으면 이 싸움은 지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나한테 그러더라구요. 대표인 네가 분신하라고. 이렇게까지 진상규명이 안 일어나니까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해결됩니까? 내가 죽으면 누가 제삿밥 차려줄겁니까?"

문재인 정부 들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 청와대 사랑채 가는 길이 27일 오후 3시 30분경 경찰에 의해 통제됐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과 면담을 하려던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과 장애인들을 경찰이 에워싼 것이다.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구역에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 등 구호가 적힌 깃발과 피켓을 들고 이동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다.

경찰의 설명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랑자(또는 부랑아)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서 형제복지원에 감금된 과거를 가진 이들이라 경찰이 유독 자신들만 가로막는다는 것이 서럽고 화가 났다. 한종선 피해생존자 대표는 "이대로 못 가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다른 피해생존자를 달래며 설득하다가 "죽으면 이 싸움은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와 강제노역을 하다가 옆 사람이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다. 이들은 살아남았기에 사실상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참혹한 인권 유린을 증언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싸울 수 있었다. '생존'은 이들에게 정체성이자 존엄의 이유다.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이 청와대 앞길에서 경찰에 의해 가로막히자 항의하고 있다. ⓒ프레시안(전홍기혜)

ⓒ프레시안(전홍기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30여 전이 지난 2017년 청와대 앞에서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은 다 지나가는 길을 못 가게 막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마주했다. 20분 가량의 실랑이 끝에 경찰 측과 한 명만 깃발을 높이 올리고 나머지는 깃발을 머리 아래로 내린 채 기자회견 장소로 이동하기로 합의했고, 경찰은 길은 터줬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걸처 일어난 대표적인 국가폭력범죄 중 하나다. 1975년 박정희 정권에서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조는 '부랑인에 대해 신고, 단속, 수용, 보호하고 귀향조치 및 사후관리하여 도시 생활의 명랑화를 기하고 범법자 등 불순분자 활동을 봉쇄하는데 만전을 기하'도록 규정했다. 전두환 정권은 이를 근거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환경미화'라는 명분으로 부랑인을 잡아다 시설에 가뒀다. (더 자세한 내용을 프레시안 연재 '26년, 형제복지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이나 구청직원들이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을 잡아와 형제복지원에 넘겼다. 1986년 입소자 현황을 보면, 전체 3975명 중 84%가 국가기관(경찰과 구청 관계자)에 의해 형제복지원에 입소했다.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잡혀온 사람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켰으며,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까지 했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3월 원생 1명이 구타로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는데, 12년 동안 공식 사망자만 513명으로 밝혀졌다. 암매장된 사람들, 시신이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간 사람들 등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구속수사가 진행됐지만, 박 원장은 2년6월의 징역을 살고 나오는데 그쳤고, 국가기관이 공조한 국가폭력범죄에 대한 진상규명은 하나도 진행되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피해생존자 모임'은 "1987년 박인근 원장에 대한 수사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갈망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우리는 빼앗긴 자유를 찾을 거라 희망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수용소로 인계됐다. 그걸 국가는 ‘전원조치’라 부르며 정당화 했고, 우리는 얼떨결에 잘못도 없이 들어간 수용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반평생을 살았고, 또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도 장애인생활시설, 정신요양시설, 정신병원에 살고 있는 피해생존자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진상규명 등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6일 형제복지원이 있었던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서부터 국토대장정을 시작했고, 22일 만인 27일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대구 희망원 사건' 피해자들, 안산에서는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들, 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기도 했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는 "선감학원 피해자분들 같은 수용시설 피해자들을 만나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었던 일이 최고의 기쁨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적폐 청산은 피해자들의 피와 눈물과 고름을 짜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국가로 살려면 과거 청산을 해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내 심정을 글로 써서, 말로 해야 알 수 있겠나. 문재인 대통령, 한번만 면담할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피해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2014년 7월 제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 이 법이 발의될 때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동참했고, 문 대통령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증언대회(2014년 4월 8일)에 참석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과 피해 실태들이 낱낱이 파헤쳐 지고, 당시에 고통 받은 사람들 제대로 보상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특별법 통과를 약속했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20대 국회 들어 다시 상정돼 계류 중이다.

▲ 경찰이 길을 터줘 청와대가 보이는 분수대 앞으로 이동하는 피해생존자들.ⓒ프레시안(전홍기혜)


▲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에서 청와대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프레시안(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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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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