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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No'가 아니라 'We Say No'를 외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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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No'가 아니라 'We Say No'를 외쳐야" 미투 운동 토론회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미투(#Me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루 새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고백에 사람들은 분노를 넘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폭력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만일 미투 운동이 없었다면, 수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은 '교수', '배우'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쓰고 오늘도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유린했을 터였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는 성폭력이 만연한 이 사회의 처참한 현실을 매일 확인하는 중이다. "이게 나라냐?" 촛불 광장에서 외쳤던 이 구호를 다시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6일 여성 단체들이 긴급 개최한 토론회 이름도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외친다. 이게 나라냐!'였다. 전국 28개 여성 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라운지에서 토론회를 열고 미투 운동의 의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미투 운동 열기를 증명하듯 토론회장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고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감독, 오성화 성폭력 반대 연극인행동·연극기획자,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새로운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투 열풍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 사회를 구조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할지 등 논의에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Q&A 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프레시안(서어리)

Q. 한국의 미투 운동은 왜 외국에 비해 늦게 시작됐나.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 이후 주요 언론에서는 한국의 미투 운동이 난생처음이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도했지만, 바로 1년 전에 문화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 있었다.

#미술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여성 신진 작가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던 모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해고되었으며,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고양예술고등학교 실기교사로 근무했던 당시 상습적인 성폭력을 저질렀던 배용제 시인이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연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남배우 A 성폭력 사건'의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2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신희주)

"여성계,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왜 손 놓고 있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여성계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다. '장자연 리스트', 여성계가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제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김영순)

Q.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과거에도 있었음에도 왜 지금까지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어진 것인가.

"2월 20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계 전 분야에 걸친 실태조사 실시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내 신고 센터 설립, 성폭력 의혹이 있는 예술인의 보직 임용을 막고 지원 배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문체부가 발표한 정책은 작년 2017년 2월 저희 여성문화예술연합이 문체부에 이미 전달했던 정책 제안서의 일부다. 1년 동안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저희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연극계의 심각한 연쇄적이고 집단적인 성범죄가 알려지고 나서야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문체부는 '지난 2월에 여성단체와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논의하고 성폭력 실태 임시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지난 1년간 저희의 항의에 대해 문체부는 소 귀에 경 읽기 태도를 보여왔다. 만약 문체부가 지난 1년간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에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지금 미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피해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신희주)

Q. 피해 고발 사례를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무엇인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바로 상담한 경우, 보다 참고 견디다 한계에 이르러 상담을 진행하는 사례가 많다. '잘릴까 봐 두려워서', '취직하기 어려운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라', '경력이 짧아 이직이 어려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하기 힘들어', '내 나이에 어디 가서 이 월급 받을 수 있을까 싶어', '남편이 아파 내가 일해야 하는데, 얘기하면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 또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거나 '오히려 나한테 피해가 올까 봐'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을 문제제기했을 경우,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보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중 피해자에 나쁜 소문, 피해자 유발론, 꽃뱀이라는 낙인,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폭언 또는 폭행, 업무상 불이익, 피해자에 대한 징계나 해고 등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 조치를 경험한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김명숙)

Q. 여론을 보면, 피해자들의 고발은 환영하면서도 익명 제보는 배격하자는 분위기도 있다.

"왜 한국 미투 운동은 익명으로 하냐고, 미국처럼 이름도 얼굴도 드러내야지, (익명으로 하면) 가짜 아니냐, 이런 질문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익명으로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꿔서 물어야 한다. 우리가 그간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왔나. 피해자 자격 운운하고 비난하고 역고소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얼굴 공개 안 하니까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하느냐 묻는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노력해왔는가. 여기에 대해 대답을 똑바로 할 수 없으면서 피해자들에게만 100% 순결한 진실을 요구할 수 있나."(송란희)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성폭력) 생존자들의 말하기대회를 여는 게 꿈이었는데, 2003년 처음으로 성공했다. 원래 기획한 것은 피해자들의 얼굴을 잡지 표지에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도저히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당일이 될 때까지도 참가자를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적처럼 15명 정도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날것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때 조건이 있었다.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가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중들 휴대폰을 다 뺏어달라, 이렇게 해서 겨우겨우 했던 것이다."(권김현영)

Q. 미투 운동에서 드러난 여러 사태의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권력의 문제인가, 성별 문제인가?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흠결의 문제로 축소하는 악마화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위장된 안도감'을 제공하고 문제의 일시적인 봉합을 꾀할 뿐이다. 특수한 피해자의 문제로 축소해 '피해자의 자격'을 질문하고, 사생활을 캐고 신상털이를 하며 인격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동은 성차별의 구조적 원인을 심화시킨다. 적반하장 식 책임 전가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가장 오래된 적폐가 성차별적 구조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이나영)

Q. 성 인식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에 대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 "탁현민 사건의 경우 미투 운동을 통해 벌어지는 직접적인 성적 폭력과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한 생각은? (☞관련기사 : 임종석 "탁현민은 이윤택과 다르다")

"성폭력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 관계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강간이 갑자기 등장하는 게 아니다.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가 어떨 땐 강간이 되고 어떨 땐 성추행이 되는 것이다. 성차별의 전체적인 문제를 지적하는데 그렇게 지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송란희)

Q. 방송인 김어준 씨도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관련기사 : 김어준 "미투, 공작 사고방식으로 보면…" 발언에 여야 정치권 비판)

"수많은 여성 시민들은 보수 세력에 저항하며 계급 부정 이외에 다른 영역에 무감한 진보 세력들과도 쟁투해왔다. 이 세력들이 진영을 넘나들며 형성한 팔로센트리즘, 남성중심문화(성별+학벌+혈연+지연에 기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진영논리(예: 홍준표 vs. 민주당 인사들, 혹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김어준 vs. 금태섭, 금태섭 vs. '지니'들)는 그래서 놀랍지도 새삼스럽지도 않다."(이나영)

"미투 운동을 공작이라거나, 진영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난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송란희)

Q.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방안은?

"우선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폐지돼야 한다. 고소를 진행하다가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게 되면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로서 가졌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피해자로서 사법제도를 끝까지 밟을 때까지만이라도 무고로 기소하는 것을 유예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송란희)

"법의 문제가 중요하다. 몇 년 송사를 거쳐도 남는 게 별로 없다. 미국에서 성희롱 성폭력 문화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게 된 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는 게 도입이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망한 회사에도 배상금을 물게 한다. 한국 대기업 담당자들이 구직자들에게 결혼했는지 임신계획 있는지 물어보면 안 되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묻는다. 외국에선 하지 않는다. 왜냐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문제 이전에 이러한 아주 강력한 형태의 사법적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법적인 문제론 다 해결할 수 없다. 굉장히 많은 문제가 범죄가 아니라 문화랑 관련돼있는 부분이다. 법적 변화와 함께 사회 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공직 사회에서 기용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수 있다. 사회규범, 연성규범 차원에서 정말로 성평등하게 바뀌어야만 '강간 문화'가 바뀐다."(권김현영)

"안태근부터 성폭력 가해자 리스트가 20명이 넘어가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처벌받는지가 중요하다. 홍준표는 지난 대선에서 완주하고 2등을 했고, 탁현민은 우리가 그렇게 문제제기를 했는데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적 성폭력과는 구분돼야 한다'고 한다. 이런 속에서 지금 고발되는 사건들이 여전히 그런 식으로 넘어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송란희)

"피해자의 요구와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중요하다. 아울러 특정 사안의 제3자이자 동조자, 방관자인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행한 자신의 가해자성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회 전반이 남성에 의해 장악되어 왔고, 남성들의 이익에 영합해 왔으며, 이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도구였음을 계속 드러내야 한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부정의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존재감은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이나영)

Q.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대응하라고 할 수 없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이게 실화냐'라는 말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는 '노(No)'라고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사실은 '위 세이 노(We Say No)'라고 해야 한다. 피해자보다 목격자나 사회가 (가해자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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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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