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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입을 막은 건,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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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의 입을 막은 건,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였다 [기자의 눈] 1991년의 '미투', 2018년의 '미투'
'미투'(#MeToo) 운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란을 보며, 지난해 개봉됐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감독)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지난 2007년 있었던 미국 의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한국의 김군자, 이용수, 네덜란드의 얀 러프 오헤른 등 세 명의 피해자가 직접 증언을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모델로 한 영화 속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평생 주위에 알리지 않고 살았다. 하지만 원래 의회 증언을 준비하던 친구(손숙 분)가 치매로 증언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다. 옥분 할머니가 미국 의회 증언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정부 쪽에서는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증거가 없다며 '거짓 증언'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한국 정부와 수많은 국민들이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가 맞다고 증언하고 서명했지만, 일본 측은 '급조된 문서'라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음모론'이며, '공작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지만 상당수의 미국 국회의원들이 일본 주장에 동조했다.

이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며 증언대에 선 옥분 할머니는 주저하다가 자신의 옷을 올려 배를 드러내 보여준다. 칼자국과 낙서 자국이 난자한 할머니의 몸은 '공작'이라고 주장하던 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옥분 할머니는 “증거가 없다고? 살아있는 내가 증거요”라며 자신의 끔찍했던 전쟁 당시 피해 경험에 대해 증언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했다. 실제로도 세 할머니의 증언은 미국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채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1년 전 미국 의회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통과됐었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한-일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한국인들은 드물다. 하지만 일본인이나 미국인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럴듯한 '음모론'을 제기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식민지 경험에 대한 공감대가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경험한 고통과 상처에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며, 또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잘 보여준다.

옥분 할머니를 50년 동안 입 다물게 만든 건 한국 사회다

옥분 할머니는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고, 일본 정부를 향해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사과를 하라"는 당연한 요구를 했다. 영화는 피해생존자의 '증언'이 갖는 '정치적 힘'을 보여준다.

영화는 또 피해생존자가 오랫동안 자신의 상처와 고통에 대해 '침묵'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기제가 무엇인지도 잘 드러내 준다. 옥분 할머니가 평생 위안부 경험을 숨기고 산 것은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남동생을 포함한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며 평생 가슴에 묻고 살라고 했다. 영화에서 남동생은 옥분 할머니와 사실상 의절하고 미국으로 이민 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경험에 대해 '공개 증언'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주요 정치적, 외교적 의제로 떠올랐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헌병과 경찰을 앞세워 30여만 명의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 정부는 교묘한 태도로 강제 동원 사실을 부인해왔다. 강제 동원된 여성 상당수가 현지에서 군인들의 폭력과 학대, 성병 등 질병, 자살 등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여성들도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증언하는 일은 스스로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영화 속 옥분 할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대부분의 가족들이 전쟁터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딸을 품에 안고 상처를 보듬어주기보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힐까 두려워 '침묵'을 강요했다.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50년 가까이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사회였다.

'미투', '위드유', 공감의 정치학

영화 속 옥분 할머니는 '프로불편러'로 나온다. 할머니는 구청에 각종 민원을 제기해 공무원들과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다. 옥분 할머니가 이런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는 '다름'과 '차이'를 느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영화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해 남성들은 대수롭지 않게 성적 농담을 던지고, 성추행을 하고, 더 나아가 성폭행을 한다. 그런 말과 행동이 피해 여성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다. 그러니 성추행에 대해 '너도 좋지 않았냐'는 황당한 해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동안 피해 여성들에게 강요된 '침묵'은 '동의'로 해석해왔다. '건강한, 남성, 이성애자'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장애인 등도 마찬가지로 차별적 언어와 행동을 경험해야 한다. 이런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차별적 경험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순간, 그는 '프로불편러' 취급을 받게 된다.

'미투' 운동은 '건강한, 남성, 이성애자'들의 성적 감수성에 여성들은 동조할 수 없으며, 당신들의 '쾌락'이 상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뜻의 '위드유(#With you)' 운동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공감과 연대를 표하고 있다. 이런 공감과 연대는 기존의 사회 질서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이 된다. 일본군의 만행에 대한 50년 가까운 '침묵'을 깨고 용기 있게 나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2018년 한국 사회가 일본을 향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힘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미투' 운동이 '더 많은 민주주의'로 한국 사회를 이끄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차이가 차별로 귀결되지 않도록 이끄는 민주적 사고와 행동은 아직 너무 낯설다. 이제라도 터져 나온 여성들의 다른 목소리, 그 불편함을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귀 기울이면서 한국 사회가 변화로 한 걸음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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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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