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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서도 '미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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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유럽에서도 '미투'가 진행 중이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북유럽 성 평등 모델과 ‘미투’ 캠페인의 정치학
핀란드에서 박사 유학을 마치고 2018년 2월 28일 한국에 돌아온 뒤 한 달이 지났다. 한반도와 서울의 시계는 과연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그것보다 빠르고 다이내믹했다. 남북 그리고 북미 간 정상회담 합의 소식에서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혁안 발의까지 중대하고 굵직한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다.

뉴스들 가운데서도 압도적 사건은 미투 운동으로 제기된 성폭력 고발들이었다. 원로로 추앙받던 시인의 행태에 대한 폭로에 이어 연극계와 영화계 등에 만연한 성폭력 관행과 구조의 폭로는 내가 지금 어디로 다시 돌아온 것인지를 속으로 되묻게 했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관한 뉴스들은 정치적 이념과 진영, 세대를 막론하고 한국의 엘리트 정치인들 상당수가 내면화하고 있는 가부장제적 권위주의와 권력 지상주의에 대해 새삼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개별 사건 이면의 오래된 구조와 관행과 문화, 그 부패한 사회 정치적(!) 권력 관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과 사회적 반응

이런 상념은 나를 북유럽의 미투 운동과 담론의 현황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국가와 더불어 높은 수준의 성 평등으로도 국제적 명성을 누려왔기 때문에 최근 전개되는 미투 캠페인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국제적 운동의 영향을 받아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도 최근 미투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특히, 스웨덴에서 미투 캠페인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됐는데, 이 과정에서 TV, 라디오, 영화산업 등에 종사하는 일부 가해자들이 퇴출되는 일도 벌어졌다. 또, 6000명의 여성 변호사들이 단체로 서명해 법조계 내의 성적 학대와 차별 행태에 '무관용'(zero-tolerance) 정책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연극, 영화, 오페라 분야에 종사하는 천여 명의 여성 배우와 가수들도 집단 서명해 해당 산업에서 성희롱(sexual harrassment)를 영구 추방하고 관계 기구들의 정책 실패를 서둘러 바로잡으라고 촉구했다.

핀란드에서도 최근 미투 캠페인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큰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특히, 유명한 영화감독 아꾸 로우히미에스(Aku Louhimies)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여배우들에게 모욕적이고 위험하며 심지어 가학적(sadistic) 방식의 연기를 강요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TV 등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그는 2017년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Tuntematon sotilas'('이름없는 병사들'이라는 뜻, 20세기 핀란드 문학의 거장 바이뇌 린나Väinö Linna가 핀란드의 대소 전쟁을 다룬 소설을 원제로 한 것임)의 감독을 맡았다. 영화는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아 핀란드 영화사에서 최고로 기록됐다.

▲스웨덴의 미투 캠페인 모습, 왼쪽 아래 사진은 스웨덴 평등부 장관 Åsa Regnér의 Me Too 집회 연설 모습 (출처: Me Too Sweden 페이스북 계정)


논쟁이 진행되면서 로우히미에스는 자신의 행위가 부적절했으며 자신이 감독으로서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의도와 촬영 진행 과정의 합의를 강조하던 그는 감독과 배우 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 속에서 피해자들과 주변 스탭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와 성 평등 모델: 특징과 성취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높은 수준의 성 평등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 모델과 높은 수준의 성 평등 시스템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됐는지를 살펴보고, 그 바탕 위에서 최근 미투 캠페인을 둘러싼 논쟁의 맥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흔히 보편주의 혹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로 분류되는 북유럽 모델은 (1)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다당제 정당체계와 의회 중심 대의민주주의, (2) 민주적 코포라티즘(democratic corporatism)과 합의적 정책 결정 시스템, (3)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 체계 등을 핵심 제도적 기둥들로 삼아 진화해왔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또한 가장 여성 친화적(feminine) 사회 문화를 발전시켜왔는데, 일부 학자들은 아예 성 평등(gender equality)을 북유럽 모델의 네 번째 핵심 요소로 간주하기도 한다.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성 평등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던 핵심으로 두 요소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높은 수준의 여성 정치 참여율이다. 북유럽은 비교적 일찍부터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19세기에 활약한 당시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초기 사회 개혁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여성 참정권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핀란드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노동계급의 형성과 시민사회의 성장, 그리고 여성 운동의 발전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점이 관찰된다.) 1906년 의회와 선거법 개혁을 통해 핀란드에서는 여성들을 포함한 만 24세 이상의 성인 모두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여성 참정권 보장은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것이었고, 여성의 피선거권까지 보장한 것은 세계 최초다. 오늘날 북유럽 의회들의 여성 의원 비율은 대체로 40% 내외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여성할당제를 적용하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에 속한다.

둘째,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의 공급을 통한 높은 수준의 여성 노동시장 참여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여성의 사회경제적 권익과 지위 향상이 가능했다. 1930년대의 노사정 대타협과 사민당-농민/자유당의 연합 정치를 통해 북유럽 복지국가의 기초가 세워졌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1980년대까지 보편적 복지국가 서비스와 사회보험을 완비함으로써 오늘날의 북유럽 모델이 완성됐다. 시장 중심의 영미식 자유주의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가구(households) 단위의 제도 설계와 자산 조사(means test)를 통한 자격 인증 방식으로 인해 결혼한 주부 여성들의 경우 사회보장 수급권 자격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남성 노동자의 임금 고용 중심 사회보험 체계를 발전시킨 독일 등 중부 유럽의 보수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돌봄 영역에서 가족과 교회의 역할이 강조됨으로써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제약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북유럽 등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자산 조사 없이 전 인구계층을 포괄하는 보편적 사회보험이 발달했다. 나아가 건강, 교육, 주거, 아동과 노인 돌봄 등 제반 사회적 권리의 영역에서 보편적 공공 서비스의 공급이 이루어졌고, 이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 증진으로 이어졌다. 남성 부양자 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을 벗어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2인 소득자 모델(Dual breadwinner model)로 이행한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 이래의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 개혁 흐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은 EU나 OECD 등의 성 평등 지표(Gender Equality Index) 조사에서 여전히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를 나타내고 있다.

68혁명 50년, 대안적 젠더 규범과 문화의 확립을 향하여

그러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미투 캠페인은 북유럽 사회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차별의 관행이 존재함을 드러내며 급진적 성찰과 대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예술 문화 산업 전반과 학교 등 교육기관, 법조계, 그리고 의회 등 정치권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남성 상사들의 권력 남용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직업 문화가 지배적인 영역이나 불안정 노동과 비정규적 형태의 고용 계약이 일반적인 분야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도드라진다. 곧, 한국이나 북유럽이나 미투 캠페인이 공통되게 제기하는 것은 젠더(gender)를 매개로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파생시키는 억압적 인간관계의 시정 요구인 셈이다.

문화혁명으로 불리는 1968년의 참여 민주주의적 글로벌 사회 운동은 전후 구축된 안정된 복지국가 체계의 성공이 불러온 역설적 결과였다. 북유럽의 맥락에서 보자면, 그 뒤 50년 만에 전개되는 미투 운동의 흐름도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사회의 현실을 더욱 급진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후기 근대적 민주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대안적 성적 규범과 문화의 확립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 관련 의회 토론을 주도한 사민당의 Tuula Hatainen 의원. 2018년 1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민당 후보로 출마해 성 평등과 소수자 인권 신장을 핵심 의제로 캠페인을 벌였다. (출처: Hatainen 의원 페이스북 계정)


핀란드의 미투 캠페인 과정에서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의회와 정부, 공영방송 등 공신력 있는 대표 기구들과 노조 및 경영자협회 등 노동시장 대표 행위자들이 적극적으로 실태 파악과 공론화 과정에 나선다는 점이다.

2017년 12월 12일 핀란드 의회는 사민당 의원 뚜울라 하따이넨(Tuula Hatainen)의 발의로 성희롱과 성적 학대를 주제로 한 본회의 토론 세션을 90분 간 진행했다. 의원들은 소속 정당을 초월해 학교와 직장 등 모든 영역에서 성적 괴롭힘에 대한 적극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핀란드 산업 분야의 이익을 대표하는 EK(핀란드 산업연맹)과 여러 분야의 노동조합들도 실태조사를 벌여 결과를 공개하면서 직장 내 성적 괴롭힘을 근절하고 평등한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서현수 핀란드 땀뻬레대학교 정치학 박사는 서울대학교 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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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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