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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충고'로 수습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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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의 충고'로 수습된 4.19 [한반도문제와 미국의 개입] 4월 혁명과 미국의 개입 (4)
5. 허정 과도정부와 미국의 내정간섭

4월 27일 이승만이 물러나자 미국의 내정간섭은 더욱 다양해지고 심해졌다. 그날 즉각 국무부는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문을 보내 허정 과도정부가 일본과 관계 개선을 꾀하고 미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송요찬 장군이 한국의 안정과 안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의 데모 방지를 위해 힘쓰도록 당부할 것을 주문했다.

4월 28일 허정 외무부장관은 대통령 대행으로서 매카노기 주한 미국대사를 초청해 미국의 내정간섭을 자청했다. 이틀 전 경무대에서 대사 신분으로 주재국의 노련하고 완고한 대통령을 위압적으로 굴복시킨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그는 미국의 실체와 위력을 분명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허정은 매카노기에게 미국과 밀접하게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모든 적절한 방법으로" 자신을 지지하고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4월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은 어떠한 종류의 간섭도 절대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 그는 미국의 행위가 내정간섭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적절한 충고"였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은 "미국의 충고와 도움"에 지속적으로 의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했다.

또 미국이 지난 날 한국의 많은 문제에 대해 "충고"를 해왔지만 이승만의 완고함 때문에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은 미국의 "충고"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것은 물론 그러한 "충고"를 간청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명백히 밝히기도 했다.

허정은 나아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를 즉각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첫째, 곧 발표할 내각 구성과 관련해 매카노기의 의견을 물으며 그 인선이 만족스럽다면 미국이 호의적 견해를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 둘째, 계획 중인 경찰과 군대 및 방첩대의 개편과 관련해 미국의 경험에 근거한 즉각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셋째, 이승만 정부가 반대한 한일 수교와 관련해 자신은 미국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며 누구보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특별히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가는 것을 일본 정부가 막는 데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매카노기는 "충고와 도움"에 관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지만, 미국이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대한 이익이 걸려있는 한국에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한국 정부를 돕는 것은 당연해도 내정간섭으로 비추어지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는 허정에게 "한국의 반공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빨리 공표하도록 촉구했다. 신속한 질서 회복을 위해 이승만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인사들에 대한 처벌은 신중하게 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허정은 매카노기의 "충고와 도움"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5월 3일 다음과 같은 ‘5대 시책’을 발표했다. (1) 반공주의 정책을 더욱 견실하게 추진한다. (2) 부정선거 처벌 대상자를 책임자 등으로 제한한다. (3)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단행한다. (4) 4월 혁명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 운운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한다. (5)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

결국 4월 혁명이 "유산"되거나 "미완"으로 흐른 데는 혁명적 방법이 불러올지 모를 혼란이 한국의 안보와 미국의 이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미국의 "충고와 도움"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카노기는 허정이 한편으로는 과단성과 진취성 그리고 지도력과 조직력이 부족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실하고 신중하며 객관적이고 침착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의 "충고와 도움"을 요청하는 진지함에 감동받고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에 고무되어, 한일 국교 정상화에 실질적 진전을 꾀할 수 있는 진정한 기회가 왔다고 국무부에 보고했다. 매카써 주일미국대사 역시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를 이용해야 한다고 국무부에 권고했다.

5월 초까지 한국 정세는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국회 해산을 요구하는 학생데모와 아울러 어용교수 퇴진 등을 위한 학원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국무부는 한국에 "또 다른 폭발"이 발생할 경우 1958년 9월 쿠데타를 통해 버마의 과도정부 수반이 된 "네윈 유형의 잠정적 통제 (Ne Win-type of interim control)"가 필요하다고 주한미국대사관에 지시했다. 한국의 안보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중혁명의 발전을 강력한 군사독재로라도 저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국무부는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문을 보내 미국이 한국 내에서 한미관계 및 한일관계를 통해 커다란 이득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허정에게 명확히 알리라고 했다. 아울러 미국이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 쓰도록 강조했다.

5월 초부터 진보 세력의 정당 결성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허정은 매카노기에게 다가오는 총선거에서 "좌익분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선전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다음 국회에서는 상당한 세력이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남북한 정부 간 협상을 제안할" 것 같다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실시되면 "좌익분자들"이 정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징후에 몹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무부는 미국과 자유 세계의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좌익분자들이나 진보 세력"의 권력 장악을 막으려면 총선거가 될수록 늦게 실시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매카노기에게 전했다.

한편, 그 무렵 자유당 일각에서는 국회에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재추대하려는 은밀한 움직임이 있었다. 국무부는 그가 여전히 정부의 일에 개입하며 심복을 통해 허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보고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5월 말에야 풀릴 수 있었다. 5월 25일 그의 부인 프란체스카가 매카노기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승만과 자신이 미국 군용기편으로 하와이에 망명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승만이 지지자들과 동료들로부터 정계에 재진출하도록 "커다란 압력"을 받고 있는데, 그는 그러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이유였다.

다음날 매카노기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허정은 이승만 때문에 정국이 동요되고 정권이 약화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가급적 빨리" 한국을 떠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승만 부부가 한국의 법이나 사법절차를 회피하는데 미국이 도와준다는 오해를 받을 만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싶지 않다는 매카노기에게 허정은 그들의 출국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전적인 책임을 지겠노라고 했다.

국무부는 매카노기의 의견대로 이승만 부부에게 초청장과 비자는 연장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교통편은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이승만 부부는 5월 29일 전세기편으로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제2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할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6월 1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6월 15일 통과되자, 허정 과도정부는 6월 27일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7월 29일 실시한다고 공고했다.

국무부는 이 헌법 개정안의 통과를 예상하고 이미 6월 11일 선거 개입 전략을 마련해 주한미국대사관에 하달했다. 국무부는 1인 독재 지배를 받아온 한국인들이 원할 뿐만 아니라 뚜렷한 지도자가 부각되지 않고 있으므로 내각책임제를 시험 삼아 실시해 볼 만하다고 믿던 터였다.

내각책임제는 지도자들을 전면에 부상시켜주고 제도를 다시 개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며, 미국은 국회에서의 "정치적 책략"을 통해 한국의 발전 과정을 관찰하고 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온건 지향적 다수파"가 필요한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은 민주당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민주당이 다수파가 되도록 지지하되 미국의 개입에 대한 증거나 소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무부가 이상적으로 삼은 한국 국회는 온건 지향적 민주당이 다수파가 되고, 보수 그룹이 소수파가 되며, 공산주의자들이 아닌 진보 그룹이 제3세력으로 구성되는 것이었다. 보수 그룹은 나중에 정부가 교체될 경우 옛 자유당 의원들을 포함한 야당 의원들을 포용할 수 있고, 진보 그룹은 사회주의 지향적인 사람들에게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주어 그들이 지하로 잠복하거나 열사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도였다. 특히 이 진보 그룹은 공산주의자들의 명확한 목표가 될 것이므로 보안 감시의 초점을 편리하게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7월 29일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자유당과 혁신 세력은 참패했다. 미국의 선거 개입 전략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선거 결과는 미국의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 넘었다. 7월 초 매카노기는 민주당이 민의원 233석 가운데 약 120석을 얻어 겨우 다수당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고 국무부에 보고했는데, 177석이나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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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이재봉 교수는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년 현재 '남이랑북이랑'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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