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방역'의 성공에 취할 때가 아니라는 날선 비판이 의료학계로부터 쏟아졌다. 현 상태로 일선 병원이 더는 코로나19 방역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는 게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지금이 장기전에 대비한 체제를 만들 골든타임임에도 정부가 이를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시국에 정부와 여당이 원격의료와 같이 방역과 상관없는 정책에 몰두하느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실상 현 생활 속 거리두기를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의료진 뿐만 아니라 방역당국자 입에서도 같은 의견이 나왔다. 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한 현장 의료인들과 의료 석학들은 장기전에 대비한 대대적인 체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최보율 한양대 예방의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전영일 통계개발원 원장,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의 발제로 진행됐다. 조성일 서울의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경희 서울 성동구보건소 소장,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대응본부 실무단장,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 김석찬 가톨릭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허탁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 원장(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당초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예정된 토론회는 국회의원들의 축사로 2시 35분경 시작돼 5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K-방역' 샴페인 너무 일러...전반전도 안 끝났다"
의학자들은 현 코로나19 상황이 적어도 내년 말까지 이어진다는 데 입을 모았다. 백신 등을 기대할 상황이 전혀 아닌 만큼, 방역 체계를 신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아무리 낙관하더라도 코로나19 상황이 내년 말까지는 갈 텐데, 그 경우 이제 24개월 중 5개월이 지났을 뿐"이라며 "전반전도 안 끝난 상황에서 'K-방역'을 수출하자는 얘기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지난 시기 한국 정부의 대응이 과연 훌륭했는지도 다시 따져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언론의 평가보다 더 신랄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 교수는 "메르스 사태를 겪은 후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했음에도 대구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으므로 예측 능력에 문제가 있었고, 현재 감염자 추적은 오직 시스템 내 발생 환자만 가능하므로 모니터링 역량에서도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메르스 사태 후에도 충분한 보완이 되지 않아 사태 초기 의료 공백이 발생한 데서는 학습의 부족함도 꼽아봐야 한다고도 질타했다. 이 교수는 다만 "확진자를 신속히 추적해 추가 전파를 차단하고, 드라이브스루와 생활치료센터를 신속히 정비해 환자 분류를 초기에 성공한 점 등 위기 대응 능력은 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지난 5개월을 되돌아보고 장기전에 대비해 부족한 방역-의료 체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참가자들이 입을 모은 부분이었다.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은 "지금이 장기전에 대비할 골든타임"이라며 "특히 임상자원을 신속히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이사장은 지난 5개월 간 코로나19 환자 대응에 국가 의료 시스템이 집중함에 따라 비 코로나19 환자 치료가 쉽지 않았던 점을 돌아봐야 한다고 짚었다. 백 이사장은 "대구에서 신천지 발 집단 감염이 터진 당시 의료 공백이 심각했지만, 돌아보면 대구 인구의 겨우 0.28%만 감염된 것으로 그 같은 상황이 초래됐다"며 특히 정치권을 향해 "(생각보다) 정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호인력 태부족...병원 못 버틴다"
백 이사장은 구체적으로 △현재 의료기관과 보건소에 분산된 선별진료소를 보건소로 일원화해 의료기관의 비 코로나19 환자 치료 능력을 키우고 △등교가 시작된 만큼 다시 대량선별진료소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백 이사장은 또 정부가 수도권-호남-영남-중부-제주 등 5개 권역에 설치하기로 한 권역별감염병전문병원 수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과 같이 인구가 과밀한 지역에는 추가 병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아울러 △국가지정격리병상 확충 필요성이 매우 시급해졌으며 △해당 병상은 음압중환자실-음압수술실-음압분만실-음압검사실 등으로 나눠 전문적 진료가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하고 △특히 감염전문의, 중환자전문의, 중환자간호사, 감염관리간호사, 역학전공자가 태부족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족한 의료진으로 인해 이미 한국의 의료 대응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은 구체적 사례와 함께 제시됐다. 김석찬 가톨릭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제 병원 내에서도 의사들이 호흡기 감염 환자를 보기 꺼려하기 시작했고, 해당 의료진을 병원 바깥에서 꺼리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며 "과연 이 상태로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 호흡기내과와 중환자를 돌볼 전문의가 부족하고, 특히 중환자진료를 담당할 수 있는 간호 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며 "대구동산병원 사례에 따르면, 의료진보다 간호사 업무량이 3~4배 많아 그만큼의 확충이 필요한데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간호인력이 부족하고, 관련 지원도 태부족하다는 지적은 이미 일선 현장에서 수차례 쏟아졌다. 의료진의 노력을 추켜세우고 끝내기 이전에, 제대로 된 지원과 수가 보상이 더 절실하다는 평가다. (☞관련기사: "2차 팬데믹 위기, 의사와 간호사가 없다")
"의료수가 두배 책정도 부족...병원이 환자 기피할 것"
민간병원이 의료 수가가 맞지 않아 환자를 더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고충도 나왔다. 의료관련 시민단체 등은 사태 초기부터 공공병원 태부족 현상으로 인해 코로나19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왕준 대한병원협회 코로나실무단장은 코로나19에 감염자 중 맹장염이 발전해 복막염 수술을 한 사례를 설명하며 의료계 요구가 과장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해당 환자를 음압수술실에서 수술하고, 수술 후 소독 처치하는 데만 10시간이 걸렸다. 이 수술을 위해 의료진 23명이 동원됐다. 맹장수술 하나 하는데도 23명의 인력이 총동원돼 대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데도 관련 수가는 일반 맹장수술과 같다. 이 상황이 시스템상 유지 가능한가. 이제 어느 병원도 코로나19 환자를 받지 않으려 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폭탄 돌리기' 상황이 오게 된다. 시스템이 자폭할 수 있다. 정상 환자를 돌보면서 코로나19 환자도 체계적으로 돌볼 '투 트랙' 시스템이 신속히 갖춰져야 한다. 일본은 코로나19가 터지자마자 코로나19 환자 수가를 두 배 올렸다."
일본의 경우 일선 병원이 높은 수가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환자를 꺼린다는 현지 시민의 주장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기된 바 있다. 돌려 보면, 두 배의 수가도 민간병원에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민간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상 한국이 단시간 내에 수월한 대응을 하기 매우 어려운 부분으로 읽힌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도 "대부분 병원이 손실을 입어도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상 청구 방법이 너무 복잡하고, 보상심사위원회 통과를 기다리는 상황은 마치 감사받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비해 관련 장비를 사라'고 하지만, 구입액이 일정액을 넘어가면 자부담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격의료 도입할 때냐...미국 보라"
의료 현장이 체감하는 상황은 여전히 위중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이어졌다. 발제자로 나선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은 지난 5개월에서 특히 우리 사회가 지나친 점이 일반 환자의 사망률이 급증했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시간이 그만큼 엄중했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1분기 서울에서 6.5%, 대구에서 10.6%, 경북에서 9.5%의 사망자가 전년 대비 초과 사망자로 집계됐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응급실 문제 등으로 인해 그만큼 사망자가 더 나온 점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아울러 한국이 과연 다시 환자가 집중되는 상황이 올 경우에 대비한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고 있는지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아울러 한국의 방역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중 특히 윤리적 문제(인권 침해 문제)를 되짚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은 한편 정치권을 향해 "최소 올해만은 의료계가 방역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정치권이 도입하려 하는 원격의료도 좋다. 그런데 지금이 원격의료에 집중할 때인가. 원격의료의 성지라고 할 미국이 어떻게 됐는지 보라. 의대생 확충을 정책으로 내놨는데, 이들을 지금 양성해도 10년이 지나야 활동한다. 제발 쓸데없는 논쟁을 일으키는 정책은 내년 이후로 미뤄 달라. 정부가 뉴딜을 얘기하는데, 보건의료뉴딜부터 출발해 달라. 지금은 방역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다."
사회적 거리두기 돌아가야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되돌아가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 시스템 지원도 절실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조성일 서울의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미 2차 유행이 시작한 것 아닌가 걱정된다"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여러 일 중 단 한 가지만 꼽는다면 '어떻게 거리두기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사람 간 접촉을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경제적 문제 등으로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분들이 동참 가능한 사회·경제적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생활 속 거리두기로 지침을 변경한 후 물류센터, 교회 등을 중심으로 발병원을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줄을 잇는 가운데,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이를 위해 취약계층을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평가로도 읽힌다. 엄중식 가천의대 감염내과 교수도 "방역당국이 '아프면 사나흘 쉬자'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에 동참할 수 없는 분들이 많다는 게 물류센터 유행으로 드러났다"며 생활 속 거리두기로 이행이 너무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방역관련 물품이 이런 직업 현장에 충분히 공급되는지, 이 경우 시간당 어느 정도의 물류를 처리할 수 있는지,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물류 업무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지, 이 경우 (물류) 배송시간은 얼마나 더 걸리는지, 이 상황을 소비자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생활 속 거리두기 체제로 이행했어야 한다. 여러 기업이 확진자 발생 후 대처 매뉴얼은 갖고 있다. 하지만 확진자 발생 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이런 상시 체제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유행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
의료 현장의 따가운 질책이 쏟아진 가운데, 방역당국 최고 책임자 중 하나인 권준욱 방대본 부본부장 역시 위기 상황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부본부장은 "현 상황이 정말로 아슬아슬하고 엄중하다"며 "(기존 방역) 전략을 숙고하고, 다시 고민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권 부본부장은 특히 지금 수도권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매일 늘어나고 있다"며 "이 의미가 남다른 만큼, 방역 전략을 전환하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때문에 다시금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갈 수 있다"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고 하소연했다. 방역당국이 사실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밝힌 셈이다. 정은경 방대본 본부장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정 본부장은 지난 달 29일 방대본 브리핑에서 '2주간 일 평균 확진자 50명, 원인을 알 수 없는 환자 비율이 5%일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전환을 고민하겠다'는 중대본 입장을 두고 "유행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만큼, 2주를 보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강화하는 것은 너무 늦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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