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 이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논쟁에 동참했고, 박원순 서울시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각자의 생각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시작됐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이후, 국내 학계는 정치권 논쟁 훨씬 이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찬반양론을 전개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 대표와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재진 연세대 교수, 유종성 가천대 교수 등이 각자의 기본소득 철학을 이미 <프레시안>을 통해 전한 바 있다. 지난 2017년에도 이 같은 논란을 정리한 <프레시안>이 다시금 기본소득 찬반과 관련한 입장을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으로 묶어 중계하는 까닭이다.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 묶음 바로 보기)
<프레시안>은 앞으로도 기본소득에 관한 기고를 적극적으로 받을 예정이다. 기고를 희망하는 분은 이메일 [email protected] 으로 글을 보내주시면 된다. 편집자.
최근의 기본소득 논쟁에서 어찌 보면 가장 강하게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양재진 교수나 이상이 교수 등은 기본소득이 권리라는 관점은 갖고 있지 않고, 계속해서 '기본소득은 충분성이 핵심'이라고 부당 전제한다. 그에 따라 제약된 예산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효과가 크지, 모두에게 주는 것(기본소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무조건적 반대자들과의 논쟁은 별로 생산적인 결실을 얻을 것이 없으니,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고 여겨진다.반면에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바로 보기 :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다)은 기본소득이 권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먼저"라고 선후 관계를 논하고 있으니, 함께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 필자도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참사를 맞아 허술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기존 고용보험제도를 확대·개편·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에 동의한다. 임금 기반이 아니라 소득 기반으로 전 취업자(국민이 아니라)를 포괄하고, 아울러 실업부조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남 부연구위원의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위의 무조건적 반대자들과 마찬가지로 충분성과 예산제약이라는 프레임은 공유하고 있다(그는 기본소득의 "5가지 원칙"을 거론하면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충분성, 정기성, 현금지급"의 6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오타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국제적으로 공인되지 않은 '충분성'을 넣어보고자 하는 욕구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리하여 그는 당장 급한 전 국민 고용보험만 해도 10조 원 이상의 큰 재정을 필요로 하는데, 그보다 훨씬 큰 재정이 필요한 기본소득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강조한다. 정말인지 좀 구체적으로 따져보자.전 국민 고용보험에 돈이 많은 드는가?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이 과연 그렇게 재정이 많이 필요한 일인지부터 따져 보자. 2020년 실업급여 중 구직급여 예산은 본예산이 약 9조5000억 원이다. 얼마 전에 편성한 3차 추경에서 약 3조4000억 원이 추가되어 합하면 약 13조 원이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이 예산의 성격을 정확히 보아야 한다. 기본소득 반대자들이 강조하는 재정 또는 예산을 일반 국민은 조세로 충당되는 일반회계로 인식한다. 그리하여 국민은 또 세금을 왕창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고용보험 예산은 조세가 아니라 고용보험기금이 재원이며, 고용보험기금은 노사의 고용보험료로 조성된다. 물론 일반회계에서 고용보험 사업에 일부(2020년 본예산 5802억 원) 지원을 하지만, 그것은 모성보호 사업과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 사업 지원이지, 구직급여 지원이 아니다. 이는 본예산뿐 아니라 추가경정예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경의 경우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차입하는데, 그것도 추후 고용보험기금이, 즉 보험료로 갚아야 한다. 심지어 차입금 이자도 고용보험기금이 갚아야 한다. 따라서 실업이 증가하거나 제도를 확대할 경우 우선은 현재 1.6%(노사가 절반씩 부담)인 실업급여 보험료율 인상으로 대처해야 한다(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인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꾸준히 인상되어 왔으며(표 참조), 16개 선진국의 평균 실업보험료율이 2.6%(Asenjo & Pignatti, 2019)임에 비추어볼 때,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추가 인상도 필요하다.기본소득에 돈이 많이 드는가?
기본소득 반대자들은 기본소득에는 고용보험보다 훨씬 큰 금액이 소요되어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하는데, 과연 그런가? 이들 말대로, 기본소득 지지자들 중 일부가 월 30만 원을, 심지어 기본소득당의 경우 월 60만 원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지금 당장 이렇게 하자는 것이라면, 필자도 비현실적이라는 데 동의한다. 대신 필자는 그 주장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본소득의 완성된 형태라고 이해하며,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가 충분성을 기본소득의 특징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왜냐하면, 다시 강조하건대, 기본소득은 권리이기 때문이다. 투표권은 인간 모두의 권리니까 그것이 권리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부터 당장 모두에게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산을 가진 귀족들에게만 허용되다가 남성으로, 흑인으로, 여성으로...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더 확장되어 왔다. 이렇게 현실에서 권리는 서서히, 그것도 기득권자들과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신장된다.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토지를 예로 들어보자. 토지가 인간의 공유자산이어서 모두가 그 수익의 일부를 배분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한들, 현재 수익을 독점하고 있는 토지 소유자들이 순순히 수익의 일부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납부할 것인가? 토지=공유자산에 대한 국민의 권리 의식 크기와 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투쟁의 크기에 따라 공동의 몫, 즉 기본소득의 금액이 결정될 것이다. 국토보유세를 처음 주장한 전강수 교수의 견해처럼, 기본소득 금액은 사회적으로 재원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만큼 확대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고,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다. 그런 만큼, 기본소득 예산이 비현실적이니 하지 말자(또는 나중에 하자)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기본소득도 급하다
이렇게 볼 때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은 선후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추진될 수 있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나아가 기본소득도 전 국민 고용보험 못지않게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환경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환경도 공유자산이기 때문에 그 오염에 대한 벌금(환경세)을 모두에게 배분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얘기하는 것은 너무 한가하다. 코로나19도 근원적으로는 환경파괴로 인해 발생하는 인수공통의 바이러스라는 지적이 있고, 현재의 기후위기는 이미 치유할 수 있는 단계를 넘었다는 주장도 많다. 여름 날씨는 해마다 더워지고 있으며, 겨울과 봄뿐 아니라 이 한더위에도 때때로 몰려드는 미세먼지를 생각해 보라. 지금이라도 강력한 환경세 부과를 통한 오염방지가 매우 시급하다. 그런데 환경세 부과는 세 부담에 대한 저항 때문에 환경배당, 즉 기본소득과 결합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스위스는 환경부담금을 생태배당으로 국민에게 배분하고 있으며, 2017년 2월에는 무려 27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4명의 전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명의 전임 재무부 장관도 포함하여 미국 역사상 최대인 3508명의 경제학자들이 "탄소세의 공정성과 정치적 존속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입은 동일한 금액으로 모든 미국 시민에게 직접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어떤가? 기본소득이 고용보험이 완비되고 복지국가가 완성된 다음에 실시될 문제인가? 그때는 도대체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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