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간 서울 시내에서 매력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첫 번째는 재벌기업인 대한항공이 소유한 송현동 땅이다. 송현동이라는 지명이 낯설다. 송현동은 경복궁 동측 편 도심 요지에 위치한 3만7141.6제곱미터(㎡)의 광대한 미개발 토지다. 2002년 대한항공이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 원에 사들였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로 인하여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자금마련을 위하여 이 땅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토지에는 대체로 1종일반주거지역, 교육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상 상대보호구역,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 문화재보존영향 검토대상구역 등의 각종 제한이 걸려 있다. 토지의 소유자인 대한항공은 한옥 호텔 건립을 추진하였으나, 인접한 덕성여중 등의 학교시설로 인하여 무산되었고, 교육청과의 행정소송 결과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 종전 소유자였던 삼성생명 또한 송현동 부지에 미술관을 건립하려다 각종 규제로 인하여 포기하고 대한항공에 매각했다. 송현동 토지는 1종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 150%를 적용받는다. 송현동 토지의 남측 도로 건너편 토지들이 용적률 800%(역사도심 600%)를 적용받는 일반상업지역인 것과 비교할 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행정적 제한 사항에 따라 개발가능 여부와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규모에서 큰 차이가 난다. 2020년 현재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당 900만 원(평당 2700만 원)정도다. 서울시는 4670억 원의 보상금을 책정해놓았다고 한다. 해당 토지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역사문화 공원에 포함되어 강제 수용대상이 된다면 감정평가사는 어떤 기준으로 보상액을 산정하게 될까?
송현동 부지 시세는 결정 불가능
토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핵심이 바로 행정적 요인이다. 송현동 토지의 경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는 땅인지, 저층 건물만 짓는 땅인지 결정된다. 용도지역의 차이로 인한 행정적 규제는 행정법상 용어로 ‘개별적 제한’과 대비되는 ‘일반적 제한’이라 하는데, 토지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다. 감정평가사는 동일한 용도지역을 갖는 인근 지역의 표준지를 선택하여 비교하고, 동일한 용도지역 토지의 이용 상황 및 이에 따른 거래가격 등을 고려하여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감정평가사가 보상가격을 결정할 때는 불법적인 이용 상황, 불법 형질변경, 무허가건축물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해당 사업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개발이익은 배제하고 보상액을 평가한다. 이 부분은 모든 보상평가에서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다. 임야, 전답 등에 적법한 허가절차 없이 건물을 지어 사용하는 경우 건물은 보상대상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해당 토지도 불법 형질변경이므로 대지로 인정받지 못한다. 수년전 한 수도권 신도시 지역의 보상가격 감정평가 시에 있었던 일이다. 보상 지역은 공장용도로 건축허가를 받기 어려운 지역이라서 대부분 '축사' 용도의 건축물로 허가받은 후에 사실상 공장이나 창고로 이용하는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건축물대장상 '축사' 용도이나, 사실상 '공장, 창고' 등으로 이용되고, 거래됐다. 이 같은 용도에 따라 시세가 형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평가 시에는 불법 이용 상황으로 인정되어 '공장, 창고' 용도를 기준으로 거래되는 가격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또한 보상목적의 감정평가는 개발 사업으로 인한 가치상승분, 즉 개발이익을 배제하고 보상금액을 산정한다. 예컨대 원래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상업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변경된 경우, 사업에 편입되기 이전의 용도지역인 개발제한구역을 기준으로 감정평가해 땅 판매자의 개발이익 취득을 방지한다. 토지소유자의 노력과 관계없이 발생한 지대는 재산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보상가격은 투자가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가격이다. 투자자의 수익은 위험이 클수록 함께 커진다. 큰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는 개발허가 불확실성이 큰 토지를 매입해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결과적으로 개발허가를 받게 되면 투자자는 큰 수익을 누릴 수 있을 테고, 투자자의 기대치가 높다면 당연히 적법한 이용 상황이나 통상적인 매매가격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매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상 감정평가 시에는 이러한 불법성, 불확실성 등은 모두 배제된다. 현재 해당 토지가 받는 공법상의 제한, 앞선 송현동 부지 사례의 경우 인접 학교로 인한 제한, 문화재보존 검토대상구역으로 인한 제한 등이 모두 감정가격에 반영된다. 공법상의 여러 제한이 많은 토지일수록 개발이 어려워 쓸모가 없거나, 빈번하게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유사한 매매 사례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몇몇 언론은 송현동 부지의 시세가 5000억 원이니, 7000억 원이니 하지만, 시세가 있을 리 만무하다. 대상 토지의 최유효이용, 즉 적법한 이용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체가 가능한 인근 지역에서 정상적으로 이용이 가능한 토지들을 기준으로 여러 각도에서 검토하고, 대상 토지와 개별성 비교를 통하여 적정선을 찾아 감정평가사가 적정한 가치를 결정하게 된다. 송현동 토지는 각종 행정적 제한이 없었더라면 진작 초고층빌딩으로 개발되었을 토지이나, 역설적으로 토지가 갖고 있는 각종 행정적 제한으로 인하여 미개발지로 남을 수 있었다. 서울도심 한복판에 미개발지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개발, 이용이 불가능하여 정상적인 매매가격이 형성될 수 없는 토지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개발과 이용에 많은 난관이 있는 토지의 경우에도 반드시 그 위치에 있는 그 부동산을 소유하여, 개발해보고 싶은 사람의 욕망과 그가 갖고 있는 돈의 크기에 따라서 토지의 가치가 결정된다. 바로 부동산 고유의 특성인 개별성과 고정성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가격은 특정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주관적 욕망의 크기와 비례하여 결정될 수 없다. 대한항공은 송현동 토지의 매각으로 최소 1500억 이상의 양도차익을 얻을 예정이지만, 양도수익은 법인의 소득에 합산 후 귀속된다. 대한항공의 영업손실이 양도차익 이상 발생하는 경우에는 양도차익에 따른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다고 하니, 대한항공으로서는 쓸모없는 토지를 매도하여 경영자금을 확보함과 동시에 세금까지 아낄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4600억? 5000억+알파? 송현동 땅 둘러싼 대한항공-서울시 기싸움, 대한항공 시세차익 최소 1600억 넘을 듯... 하지만 세금 안 낼 수도. 2020.6.15. 오마이뉴스, 신상호). 오히려 재벌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소유에 대한 특혜라는 시각도 있다(논밭임야는 강제수용, 재벌 땅은 시세매입? 2020.6.12. 경실련).
용산 정비창부지, 공공을 위해 개발돼야
두 번째는 공기업인 코레일이 소유한 용산정비창 땅이다. 용산정비창부지는 오랜 기간 철도시설의 부속 토지로 이용되었다. 2007년경 서부이촌동 일대와 묶여 용산 국제업무지구로 개발이 추진되어 오다가 무산되었으며, 오랜 소송을 통하여 코레일이 소유권을 돌려받은 상태다. 삼성물산이 2009년 사업시행자 지위를 포기하면서 롯데관광개발이 사업시행자 지위를 양도받았다. 묘하게도 송현동 부지가 삼성생명으로부터 대한항공이 매수한 토지이듯, 용산정비창 부지 또한 삼성물산이 시행자 지위를 갖고 있다가 롯데관광개발에게 양도한 토지다. 삼성 관련 회사들이 발을 담갔다가 빠져나온 토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대에 이르는 대규모 부동산 관련 사업에 관여할만한 투자자 집단이 극소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잠자고 있던 용산 정비창부지는 지난 5월 6일 국토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강화방안에 등장함으로써 다시 세상에 나왔다. 국토부는 용산역 정비창부지의 개발 사업을 통하여 8000가구 규모의 미니신도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용산정비창부지는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당시 한강르네상스, 용산국제업무지구 추진으로 인하여 일대의 땅값을 폭등시킨 전력이 있으며, 2018년 박원순 시장이 용산, 여의도마스터플랜을 언급했다가 일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바람에 부랴부랴 개발계획을 전면 보류한 해프닝이 있었던 땅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토부의 용산정비창부지 개발 계획 발표와 동시에 매물이 사라지고, 가격 폭등 조짐이 나타났으며, 정부는 일대를 곧바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처럼 용산정비창부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시한폭탄과 같은 곳이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잘 다루지 않으면 불쏘시개가 될 확률이 크다. 부동산 시장은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이 상승하는 측면보다는, 불로소득을 유발하는 공급이 투기 수요와 투기 심리를 자극하여 가격이 상승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산정비창부지는 코레일이라는 일개 공기업의 이익극대화를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사회적 가치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발이익과 불로소득을 최대한 차단하면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개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책부터 선행되어야 할 곳이다. 용산 정비창부지는 애초부터 철도시설의 유지 관리라는 공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용도가 제한되는 공법상 제한을 받고 있었기에 미개발지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따라서 종전의 용도제한을 풀고 개발 사업을 수행하려는 경우에는 새로운 공공 개발 사업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개발이익을 배제하여 토지가격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발이익 배제의 원칙은 공공목적사업으로 인한 토지수용보상 시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공기업인 코레일의 만성 적자문제 해소를 위한 방편으로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의 용도제한을 풀고 토지가격을 높여 민간자본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은 일반적인 보상원칙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높아진 토지가격으로 인하여 분양가와 임대료를 높이고, 주변 부동산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반면, 개발사업 대상 토지의 취득 원가가 낮으면 개발 후의 부동산을 운용,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임대료 수입 등을 통한 투자수익률을 높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대신 개발이익을 통제함으로 인하여 발생한 투자수익이 민간 자본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공공목적에 이용되고 공공에 귀속되도록 설계해야 명분이 있다. 부동산을 최대한 높은 가격에 분양하고 매각한 후에 털어버리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오랜 기간 상생하면서 관리해나갈지에 더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용산정비창부지에 토지임대부 건물분양방식의 공급 제안은 불로소득 차단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용산 정비창에 '불로소득 차단형' 주택을 공급하자, 2020. 05. 14. 오마이뉴스, 남기업). 토지 등의 부동산은 속성상 온전히 사유재산권의 대상일 수 없다. 공공 목적을 위한 행정적 제한을 통하여 용도와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 헌법 23조 또한 사유재산인 동시에 공공성을 갖는 재산권의 이중적인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20년의 대한민국 부동산은 과거의 가치와 결별해야 한다. 부동산이 사유재산권의 대상으로서 가치의 저장수단이 되고, 이로 인한 자산 격차와 빈부 격차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현실, 우리 미래 세대가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 외에는 자기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현실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와 코레일의 철도정비창부지를 통하여 토지가 갖는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개발, 이용, 수익의 모델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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